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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9월1일 오전 11시58분44초. 진도 7.9의 강진이 도쿄와 인근 간토지역을 흔들었다. 목조주택이 붕괴되었고, 그나마 멀쩡하던 집은 때마침 점심을 준비하려던 아궁이나 풍로가 넘어지며 일어난 화재에 불타버렸다. 도쿄에서만 187곳에 화재가 발생했다. 불은 바람을 타고 순식간에 번졌다.
사람들은 살기 위해 정보를 찾았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지! 그때, 조선인이 방화를 했고, 우물에 독을 풀었다는 이야기가 입에서 입으로 확산되었다. 그날 저녁부터 광기에 사로잡힌 일본인들은 조선인을 죽이기 시작했다. 평범했던 이들이 학살자로 돌변했다. 일본도, 쇠갈고리, 톱, 도끼, 낫, 죽창을 들고 무차별적으로 조선인을 잡아 죽이기 시작했다.
하급관리들은 떠도는 괴담을 적극적으로 유포했다. 계엄령이 내려지고 난 뒤 군인들이 나서 조선인을 학살했다. 1919년 3·1만세운동이라는 조선인들의 강력한 저항을 기억하던 관료와 군인들은 의도적으로 괴담을 확산시켰고, 계엄령 이후 학살에 개입한 것이다. 그들은 조선인 폭동과 사회주의자를 엮었다. 조선인과 함께 사회주의자들도 살해당했다.(강덕상 <학살의 기억, 관동대지진> 역사비평사 참조)
2014년 우리나라에도 공포와 혐오를 자극하는 불안의 광기가 떠돌아다닌다. 공포와 혐오는 인종차별 심리와 가장 파괴적인 상호작용을 낳는다. 불법체류자들이 애만 낳으면 돈을 지원하고, 추방도 하지 않는 법을 입법한다는 앞뒤 없는 괴담은 일 년 내내 다양한 방식으로 게시판을 돌아다니고 있다.
그보다 더 자극적인 이야기도 있다. 조선족들이 사람을 납치해 장기를 적출한다는 괴담은 다양한 버전으로 확대, 재생산되는 중이다. 아마 수원 사건 이후 이런 게시글을 SNS에서 더 자주 만나야 될 것 같다. 괴담에서는 악의 축이지만, 사실 우리나라에 체류하는 외국인들의 범죄가 우리나라의 평균 범죄 발생건수보다 특별히 높지 않다. (궁금하면 e나라지표에서 확인하면 된다.) 하지만 오늘도 게시판과 SNS에서는 다양한 괴담들이 판을 치고 있다.
지금도 인터넷 게시판과 SNS에서는 국내 체류 외국인에 대한 괴담과 불신이 끊임 없이 확산되고 있다. (출처 : 경향DB)
일본에서 재특회(재일특권을 허용하지 않는 시민모임) 등이 주도하는 한국에 대한 차별, 혐오시위를 보며 분노하지만, 똑같은 차별논리로 한국 내에서 퍼지는 인종차별의 논리에는 둔감하다.
일본의 인종차별주의자들도 온라인에서 확대, 재생산된 괴담을 진실로 믿고 마침내 거리로 나서기 시작한 것이다. 외국인 체류자에 대한 차별의 감정과 유사한 형태를 보이는 종북몰이 혹은 종북사냥은 온라인에서 나와 거리로 진출했다. 우리나라를 움직이는 건 사실상 종북세력이라는 그들의 주장이 끊임없이 확산되면 나라가 망할 수 있다는 공포와 종북이라 지목받은 이들에 대한 혐오와 증오를 낳는다. 마침내 고교생이 황산테러를 자행했다. 그건 다르다고? 다시 간토대지진을 보자.
간토대지진에서 벌어진 관민 일체의 대학살은 조선인에 대한 적대적 감정 때문이다. 그 적대 감정은 조선의 식민지 저항 운동에서 시작되었다. 알고 보니 그들도 저항을 했다는 기저의 공포와 우리와 다른 불량선인들에 대한 혐오와 증오는 괴담을 확증하고, 극단적 행동을 낳았다. 조선인을 죽이지 않으면, 우리가 죽는다는 불안이 없었다면, 학살도 없었을 것이다.
당시 자경단들은 조선인으로 의심되는 이들을 붙잡으면 ‘15엔50전’을 말해보라고 시켰다. 조선인에게 어려운 발음이었는데, 이 말을 제대로 못하면 그 자리에서 죽였다.
우리 사회는 ‘15엔50전’ 대신 ‘김정일 김정은 개새끼’를 해보라 묻는다. 이미 수년 전의 일이다. 그뿐인가, 신문과 종편 뉴스는 치고받으며 끊임없이 종북의 뇌관을 자극한다. 91년 전 폐허가 된 도쿄에서 손에 피 묻은 죽창을 들고 돌아다니는 야만이 2014년에 우리가 반복해야 할 일인가 진짜 묻고 싶다.
박인하 청강문화산업대 교수 만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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