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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민주화라는 개념으로 한국 현대사를 본다면 가장 기억에 남는 날이 언제일까? 물론 중요한 날이 몇 번 있겠지만, 나는 1998년 5월18일을 들겠다. 막 출범한 국민의 정부, 정치는 물론이고 경제 운용에서도 많은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물론 IMF 외환위기 한가운데라고 하지만, 한나라당에서 민주당이 정권을 찾아오면서 많은 변화를 기대한 것이 사실이다. 5·18 기념과 함께 이날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이던 김태동과 기획수석이던 강봉균이 자리를 맞바꾸는 아주 기이한 일이 벌어진다. 물론 교수 출신이라 능력부족 등 전해지는 설은 몇 가지가 있지만 본인도 아직 정확한 이유를 모르는 사건이다. 
 

출처: 경향DB


 
민주당 정부 10년, 그 후에 한나라당 정부 4년을 거치면서 모피아 혹은 그와 유사한 관료가 아닌 사람이 청와대 경제수석을 맡았던 유일한 경우가 바로 김태동이다. 그가 국민의 정부 출범 3개월 만에 경제 사령탑에서 물러나면서 이 자리는 사실상 모피아들이 가지고 노는 자리가 되었다. 김태동이 만약 1년만 더 그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면, 한국 경제의 전개과정은 전혀 다른 모습이 되었을 것이다. 이후 경제는 말도 안되는 윗목이 따스해야 아랫목이 따스해진다는, 그렇게 강자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몰아주는 방식으로 전개되었다. 

노무현 시절에는 경제수석 대신 그 위의 정책실장에게 힘이 실렸는데, 초대 경제수석인 이정우는 제대로 힘도 써보지 못하고 바로 밀렸다. 혼자 고립된 정태인 국민경제 비서관은 모함에 가까운 재판으로 송사에 휘말려서 그만두게 되었다. 흐름을 좀 바꾸려고 했던 변양균 정책실장은 신정아 사건으로 무장해제되었다. 노무현 시절, 산업자원부 장관으로 임명된 윤진식은 이명박 선거캠프에서 경제 담당으로 활동했고 결국 이번 정부의 경제수석과 정책실장을 역임했다. 배를 바꿔 탄 건지, 원래 모피아라서 그런 건지, 본인만이 알 일이다. 

시민의 정부가 출범하면 제일 중요한 자리는 바로 이 청와대의 경제팀을 제대로 꾸리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김태동이 물러난 1998년 5월18일 이후, 처음으로 제대로 된 팀을 갖게 되는 순간이다. 기본적으로 대통령실 경제팀은 8명으로 구성된다. 정책실장의 경우는 경제 혹은 행정 전문가가 보통 되는데, 경제 민주화가 다음 정부의 목표라면 정책실장도 출발할 때는 경제 전문가가 되는 게 맞다고 본다. 그 바로 밑에 국제경제보좌관이 있다. 자유무역협정(FTA) 등 통상의 기본 방향을 여기서 맡게 된다. 

정책실장 밑에 경제수석이 있고 그 밑에 다섯 명의 비서관이 붙는다. 두 가지가 중요하다. 첫째, 경제수석은 시민의 경제를 이해할 수 있고 시민단체의 의제들을 잘 받아낼 수 있는 사람이 가야 한다는 것이다. 어설프게 경제 전문가라고 이상한 사람 앉히면 노무현 정부의 경제 실패가 다시 반복된다. 둘째, 다섯 명의 비서관 자리도 관료로 채워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보통은 부처 간 업무조율을 위해서 각 부처에서 파견을 받는데 그렇게 하면 정책실장이나 경제수석 같은 사람들이 결국 관료에게 포위되어 고립된다.

순서대로 살펴보자. 경제금융비서관, 이 사람이 금융민주화의 사령탑이 되는 것이고 금융위, 금감원 등 모피아 논리대로만 움직이는 금융당국을 제어하는 키를 쥐게 된다. 이 자리를 모피아들에게 넘겨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지식경제 비서관, 이 자리는 실물경제와 함께 에너지 등 자원정책을 총괄하는 자리이다. 재벌 견제는 물론이고 탈핵과 같은 에너지 정책도 이 자리에서 대통령을 통해 움직여나간다. 이 자리를 넘겨주고 원자력 문제를 풀 방법은 없다. 중소기업 비서관, 신설된 자리이지만 한국 경제가 정상화되는 과정에서 반드시 필요한 분야이다. 

국토해양 비서관, 만약에 탈토건이나 토건족 정리를 생각한다면 절대로 국토해양부 공무원한테 넘길 수 없는 자리이다. 4대강 문제를 풀거나 주택시장 정상화가 다음 정권의 기조가 되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자리이다. 마지막으로 농림수산식품 비서관, 수년 동안 방치되어 있던 농업 문제를 풀고 농협 개혁 등 진짜 변화를 원한다면 반드시 다음 정부가 풀어야 할 분야가 이 분야이기도 하다. 

나는 관료가 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특정 이권이 걸린 경제 분야는 누군가 견제하고 제어하지 않으면 모피아나 토건족 혹은 교육 마피아처럼, ‘정부 내의 정부’ 현상이 벌어진다. 그걸 잘 견제하면서 정상적 관료들이 상식적으로 업무를 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경제 민주화로 가는 기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청와대 경제팀 8명에 대한 제대로 된 인선이 핵심이자 출발점이다. 이 8자리를 관료들에게 그냥 넘겨주거나 이익세력들에게 주면 다음 정부도 바로 시궁창으로 빠져버린다. 다행히도 한국의 시민사회나 진보정당이 제대로 할 사람으로 이 정도 채울 여력은 충분하다. 경제도 다 사람이 하는 일이다. 사람을 잘못 고르면 그냥 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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