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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훈 타이거 픽처스 자문·경제학 박사


‘시민운동 몇 어찌’라는 제목으로 경향신문에서 매주 연재를 한 것도 이제 어느덧 1년이 되어간다. 이제 슬슬 마무리를 지어야 할 시점이 되었다. 이 기간 내내, 나는 한나라당이 결국 질 것이라는 점, 이름이야 어떻게 되었든, ‘시민의 정부’가 결국 출범하게 될 것이라는 점을 의심해본 적이 없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겠지만, 나 역시 예전의 민주당 혹은 민주통합당이 뭘 엄청나게 잘할 것이라고 믿어본 적은 별로 없다. 그렇다고 통합진보당이 갑자기 많은 국민들의 대대적 관심을 받으면서 2012년 판세를 완전히 끌고나갈 것이라고 생각한 적도 없다. 다만 내가 주목한 것은 MB라는 이름을 중심으로 형성된 거대한 혐오라는 에너지….

지금도 나는 한나라당이 정상적인 정당으로서 잘해주기를 바라고, 그래야 계급적 정체나 이념적 정체가 모호한 민주당을 중심으로 힘을 모아야 하고, 또 그러니까 어떻게든 정권부터 바꿔보자는 1987년 이후의 오래된 틀을 깰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에서 보여준 한나라당의 실력은, 그들이 제대로 국가를 운영할 능력이 없음을 너무 여실히 보여준다. 게다가 ‘국가의 것과 개인의 것’을 전혀 구분하지 못하는, 그래서 사적인 집단으로 전락해버린 전형적인 제3세계 지배그룹의 유형을 여실히 보여준다. 뭐가 진실인지, 역사 속에서 실체적 진실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당장 이번주만 보더라도, 정봉주 전 의원은 감옥에 있는 동안 건설사 비리로 문제가 된 사람들은 대거 사면복권되었다. 게다가 전혀 합리적 이유가 설명되지 않는 KTX 분할 매각은 그냥 강행된다고 하고…. 

경향신문 DB

 

이명박 정권과 함께 지낸 4년 최선, 차선, 차악과 같은 고상하고 계량적인 사유는 우리 모두에게 어느 정도는 마비된 것 같다.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지금 한국의 정치를 움직이는 힘은 ‘혐오’가 아닌가? 혐오라는 감정은 그렇게 좋은 감정은 아니지만 정책은 물론이고 선관위 해킹 사건과 돈봉투 사건 등 제 정신을 가진 정치집단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 1주일이 멀다하고 벌어지는데, 여기에서 혐오 외에 다른 감정을 가질 수 있겠는가? 

이 사건들의 안 좋은 점은 아무도 “내가 문제였다”라고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는 점이다. 그리고 더 나쁜 점은 이런 황당한 일을 내부에서 벌일 때 “그건 아니지!”라고 말려줄 동료그룹도 없었다는 점이다. 재발방지 대책? 그걸 누가 믿나? 이렇게 4년간 쌓이고 쌓인 혐오라는 에너지가 지금 불안정하고, 사실 근본을 따져보면 한나라당 의원들과 개개인이 그렇게 달라보이지도 않는 민주통합당을 중심으로 모여드는 힘의 실체 아닌가?
이것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서 증폭되고 과장되고, 때때로 길을 잃고 헤매기도 한다. 어쩌면 우리는 이명박이라는 아주 독특한 캐릭터의 대통령과 지난 4년간 모두 헤맸던 것인지도 모른다. 4대강을 다 틀어막고, 여차하면 한 마리도 남기지 않고 소들을 죽이겠다고 하던 이 황당한 시기에 제 정신을 유지하기도 힘든 일이다. 국제중학교를 도입하고 초등학교 때부터 입시교육을 도입하면 중학교도 전쟁터가 된다고 이미 여러 사람들이 지적했었다. 다, 자기 맘대로 한 것들 아닌가?

종편의 0%대 시청률을 가만히 살펴보자. 최근의 미디어렙법 날치기에, 수정까지, 종편은 정말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다 했다. 저조한 시청률에 대해서 자기 맘대로 분석하고 싶은 종편 측에서는 ‘킬러 콘텐츠’의 부족과 같은 것을 이유로 대는 것 같다. 한나라당이 빠진 혐오의 덫과 종편이 빠진 덫은 사실상 같은 성격이라고 볼 수 있다. 아예 안 보겠다는 사람들 앞에서 콘텐츠와 방송의 질은 부차적인 문제이다.
연전에 정용진이 “님은 소비도 이념적으로 하십니까?”라고 그랬다. 종편에 대한 시청자들의 거부반응이 이념적인지는 모르겠지만, 혐오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도대체 ‘19번 채널’이 뭐냐? 어떻게든 19금을 풀고 나가려는 게 영상 마케팅의 기본인데, 알아서 19번으로 들어갔으니 나올 길이 쉽게 보이지가 않는다. 

중앙일보 종편인 JTBC뉴스(경향신문 DB)



한국의 우파는 ‘유능’ 혹은 ‘명품’이라는 이미지를 지금까지 달고 있었고, 반면에 좌파는 ‘무능’ 그리하여 경멸당하고 멸시받는 존재였다. 이런 기존의 이미지에 ‘보수=혐오’라는 이미지 하나가 확실하게 더해졌다. 

자, 지금 당장 편의점에 가보시라. 거기에 한국 청춘들의 삶이 23.8평짜리 공간에 녹아있다. 이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무슨 당을 지지할 것이고 한국의 정치에 무엇을 바랄 것인가? 한나라당의 할아버지들이, 그들과 한번이라도 정식으로 말을 섞어본 적이 있을까?
아마 한나라당은 앞으로도 당분간 혐오와의 긴 싸움을 하게 될 것 같다. 난 그 해법이 편의점 알바들에게 과연 무엇을 약속해줄 수 있는가, 거기에 있다고 본다. 그들에게 어떤 세상을 펼쳐보여줄 것인가? 5년 전으로 시계를 되돌려본다면, 한나라당에는 집권 전략은 있었지만 통치 전략은 없었다. 이 통치 전략은 여전히 박근혜의 비대위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보수냐, 아니냐,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누구와 같이 정치할 것이냐, 이게 더 중요한 일이다. 편의점의 20대 알바들에게 인정받지 못한다면, 한나라당은 당분간 혐오의 굴레에서 나오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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