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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봄 어느 날로 기억된다. “진짜 모피아가 그렇게 자기들끼리 다 해먹나요?” 

“모피아는, 사실 뭐 그렇게까지 해먹지도 못해. 진짜로 자기들끼리 똘똘 뭉쳐서 끝까지 챙겨주는 건, 이피비(EPB- 옛 경제기획원) 사람들이야. 정말로 잘 뭉치더라고, 끈적끈적하게….”

이 얘기는 총리실에 근무하던 시절, 바로 직속상관이었던 산업심의관과 회식 자리에서 나누었던 내용이다. 그는 나에게 재경부 수첩을 보여주면서, 도대체 이 사람들이 무슨 돈으로 전부 다 이렇게 강남에 사느냐, 한탄스러운 얘기를 하기도 했다. 

2001년, 2002년이 내 기억으로는 실물경제를 담당하던 자리까지 모피아 출신들이 밀고 들어오던 그런 때였다. 별것도 아닌 한두 자리를 놓고서 부처들끼리 지독하게 싸우는 게 좀 한심해 보여서 결국 나는 공직생활을 정리했다. 당시 바로 그 상사가 지금 금감원장인 권혁세 원장이었다.

경제기획원이 경제합리화라는 이름으로 없어진 다음에, 경제계획 업무와 금융을 다루는 재무 업무가 통합되었고, 이번 정부 들어오면서 예산집행까지 기획재정부라는 한 부처로 통합됐다. 그리고 이와는 별도로 금융 행정과 감시업무를 다루는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이라는 두 개의 정부 부처가 운용되고 있고, 본원화폐를 다루는 한국은행의 의사결정을 하는 금융통화위원회라는 게 있다. 경제 혹은 금융도 다 사람이 하는 일이라서, 제도를 어떻게 만드느냐, 기구를 어떻게 구성하느냐, 이게 의미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정당과 시민ㆍ노동단체 외환은행 매각 무효 주장 기자회견 l 출처 :경향DB


돌아서 생각해보면, DJ, 노무현에 이르는 10년간의 민주당 정권이 국가를 운영했는데, 금융과 관련, 특히 사람이라는 눈으로만 보면 거의 바뀐 게 없다. 외환은행 매각 당시 실무국장이 바로 지금의 김석동 금융위원장이고, 주무부처 장관이 민주당 김진표 원내대표이다. 연말에 한·미 FTA로 거리로 나와 있던 민주당이 등원 협상하면서 마지막까지 테이블에 올라와 있던 건, 외환은행 국정조사 건, 농협 신경분리 건, 그리고 미디어렙 건이었다. 그중 유독 외환은행 국정조사 건이 불발되면서, 결국 최종합의가 흐지부지해진 적이 있다. 원칙대로라면 협상이 결렬되면 등원하지 않고 버티면서 문제의 해법을 더 찾아보는 게 맞는데, 등원은 했고, 외환은행 등 협상은 결렬되어서 지금까지 지지부진하고 있다.

상식의 눈으로 보면, 매각 당시 주무부처 장관이었던 사람이 야당 측 협상대표였으니, 자기 문제는 좀 덮고 넘어가려고 했었다거나, 아니면 모피아들이 법적으로 처벌받는 걸 피하려고 했었다, 이렇게 보이는 게 더 당연하지 않겠는가? 물론 본인이야, 그럴 리가 없다고 펄쩍 뛰겠지만, 모피아 음모론으로 이걸 해석하지 않으려고 하면 사건 자체가 전혀 설명이 안된다.

예전 권혁세 원장과 같은 방에서 근무하던 시절, 그 위의 국무조정실장이 바로 지금 김진표 원내대표였다. DJ 시절에 내가 정부에서 일했는데, 그 후 다시 10년이 지났고, 이명박 정부도 거의 끝나가는 지금, 너무 뻔한 사람들이 금융당국의 요직에 있거나, 심지어 야당 측 사령관이 되어 있는 상황에서 “진짜 모피아들의 세상이다!”라는 말이 절로 나오지 않겠는가?

외환은행은 감사원 감사, 국정조사, 심지어는 국감까지, 정치 절차로 아직도 풀 수 있는 수단들이 남아 있다. 론스타가 금융자본인가, 아닌가, 그것만 제대로 밝혀주면 일의 절반 이상은 풀린다. 그리고 작년까지 한나라당에서 인천공항 민영화 수단으로 제시하던 바로 그 국민주 방식으로 외환은행이 독자회생할 수 있는가, 그런 정책 수단이 검토되면 끝나는 일이다. 국민경제를 중심으로 생각해보면, 대통령 절친까지 일일이 고려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모피아를 중심으로 생각하면, 경제 공무원 아무도 다치지 않고, 책임지지 않게 하려니, 일이 이렇게 이상하게 꼬여가는 것 아닌가?

이러니 외환은행 문제를 푸는 게, 경제 민주화의 첫걸음이고, 꼬일 대로 꼬인 금융 민주화의 첫발이라고 하는 것이다. 정치적 민주화를 거쳤다고 하지만, 한국의 금융은 여전히 이헌재나 강만수 혹은 김진표 같은 대표적인 모피아들 손에 달려 있는 꼴이 아닌가?

정치가 아니라 경제 특히 금융의 눈으로 보면, 한국은 완전 모피아들의 나라로 전락한 것처럼 보인다. 자, 어쨌든 민주당의 김진표 원내대표까지 포함해서, 론스타 사건은 행정적으로는 일단락된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이것도 부당하든, 부당하지 않든, 행정행위일 뿐이고, 이 사건을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행정소송을 걸고, 그걸 근거로 론스타 매각 및 외환은행 합병을 일시 정지시키는 가처분 신청으로 들어갈 것으로 알고 있다. 10년 가까이 ‘모피아 사건’의 대표적인 상징처럼 드러났던 론스타 ‘먹튀’는 아직 끝난 것은 아니다. 금융당국의 손에서 법정으로 옮아가는, 또 다른 단계의 시작에 불과한 것 아닌가?

외환은행이 국민의 지지를 등에 업고 독자생존의 길로 걸어갈 수 있을지, 아니면 그냥 모피아들이 밀실에서 그렸던 그림대로 이렇게 끝이 날지, 결국 다시 법정으로 가게 되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외환은행 사건은 어영부영 반MB로 모였던 사람들이 다음 정권에서 보여줄 정책들의 ‘데자뷰’라는 점이다. 악몽이 이제 그만 끝나기를 우리 모두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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