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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세’라니, 세금이라는 건 버는 돈, 쓰는 돈, 가진 돈에 붙는 거 아닌가. 무슨 세금이지? 찾아 보니 고향세는 일본에서 먼저 시행하고 있는 제도라고 한다. 지방정부에 돈이 없으니까, 대도시에 사는 사람이 자기가 내는 세금 가운데 일부를 자기가 원하는 지자체에 보내는 제도이다. 일본에서는 제법 자리를 잡아 지방세보다 고향세를 더 많이 거두는 지자체도 있다. 우리나라도 곧 구체적인 방법을 정해 시행할 예정이라고 한다. 고향세 같은 아이디어를 내야 할 만큼 우리나라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자립도는 처참하다. 자기 살림을 늘 중앙정부에서 돈을 받아서 꾸려 나가는 입장이다 보니, 중요한 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할 때 자기 뜻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지자체장의 선거나 지역 국회의원 선거 자료의 핵심은 늘 “내가 중앙정부에서 돈을 이만큼이나 끌어왔다” 혹은 “그렇게 할 것이다”라는 것이다.
시골로 돈을 보내는 사업 가운데 농림축산식품부 주관으로 하는 ‘창조적 마을 만들기’ ‘농촌중심지 활성화 사업’ 같은 게 있다. 지역을 더 살기 좋은 곳으로 개발한다는 명목으로 해마다 전국 각지의 마을들을 선정해서 수십억원을 쓴다. 돈 쓰임새에 대해서는 농식품부에서 일정한 비율로 정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지자체 형편에 맞춰 필요한 일에 쓸 수 있다. 돈이 내려와서 어떻게 쓰이는지 시골 사람들이 쉽게 체감하는 사업이다. 작은 지자체 살림에 견주면 적지 않은 돈이 내려온다. 한데 이 돈을 어디에 쓰고 있는지 살펴보면, 정말 돈 없는 곳이 어렵사리 받아다 쓰는 것인지 맞나 싶다. 관광객을 위한 안내판, 편의시설, 공연장 같은 것을 짓거나, 도로를 내거나, 뜬금없는 문화사업 따위를 하거나. 심지어는 할매들 모여서 같이 밥해 먹고 쉬고 하는 마을회관에 값비싼 헬스기구 따위를 줄줄이 들여오기도 한다. 문화, 관광, 생활 시설, 경관 개선 등 여러 가지 명목이되 실제 내용은 한결같이 토목, 건축, 시설 구입 비용이다.
돈을 어디에 어떻게 쓸지는 지역의 정치 활동에 참여하는 몇몇 ‘장년층 남성’의 의견만으로 거의 모든 것이 정해진다. 마을 사람들이 함께 쓸 수 있는 공동의 농업 재산을 만들거나, 마을 살림의 기반이 될 농림어업을 꾸준히 이어갈 수 있는 길을 모색한다거나, 점점 기력이 없어지는 할매·할배들이 좀 더 수월하게 일할 수 있도록 돕는 것 등에 돈이 쓰이는 일은 거의 없다. 길을 새로 내더라도, 보행기를 끌고다니는 할매들이 안심하고 편히 다닐 수 있도록 하는 데에는 관심이 없고, 트럭과 농기계들이 좀 더 빨리, 편하게 다니는 데에만 신경을 쓴다. 면에 하나쯤 있는 초등학교에 다니는 몇 안되는 아이들이 지내는 것을 돌아보는 일도 그리 눈에 띄지 않는다.
아마도 지방정부는 돈이 더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다달이 어디에선가 열리고 있는 지역축제들은 행사 수익으로 충당하는 비용이 평균 30% 안팎이라고 한다. 70%의 돈을 해마다 퍼부으면서 빚을 내서까지 지역축제를 하는 것이다. 돈을 더 마련해서, 지방자치를 활성화하는 것은 당연히 밀고나가야 할 일이겠다. 하지만 돈을 더 마련하는 것보다 중요한 일은 돈 쓰는 방식에 대해 지방정부가 지역의 시민들과 훨씬 민주적인 절차를 거치고, 몇몇 사람들만의 의견으로 세금이 쓰이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이다.
어쨌든 고향세는 마음을 움직이는 세금이 될 것이다. 돈을 보내고 있으니, 들리는 소식이 있으면 한 번이라도 더 귀를 기울이고, 더 발걸음을 하고, 대도시와 지방이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을 조금은 더 생각하게 될 것 같다. 그야말로 지방정부에 대해 보는 눈이 많아지겠지. 다행히 일본에서 10년쯤 이 일을 하면서 우리도 비슷하게 겪을 여러 문제들을 미리 보여주었다. 굵직한 잘못 몇 가지는 피해갈 수 있을 터이다. 중앙정부는 어느 때보다 믿음직스럽게 일을 해 나가고 있다. 지방정부도 살림과 운영을 바꾸기에 지금만큼 좋은 때가 없는 것 같다.
전광진 | 상추쌈 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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