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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라는 분야가 있다. 이 분야는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경제발전과 더불어 빠르게 성장했다. 초기만 해도 A분야의 부흥사들은 선진국의 성공 사례들을 들고와 해당 분야가 고부가가치의 상품을 생산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라고 선전했고, 기업들은 수출과 내수 시장에서 상품의 경쟁력을 강화할 목적으로 A분야에 주목했다. 기업 입장에서는 연구·개발 및 시설투자 비용이 상대적으로 덜 소요된다는 점, 그리고 비교적 단기간에 투자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점에서 A분야가 꽤 매력적이었다. 뛰어난 역량을 가진 전문 인력의 양성과 고용이 A분야의 핵심이었던 것이다. 부흥사들도 이런 ‘저비용 고효율’의 특성을 세일즈 포인트로 삼았다.

실제로 A분야는 단군 이래 최대의 호황을 누리던 1980년대 중반부터 고도성장의 기운이 잔존하던 2000년대 초반까지 전성기를 구가했다. 기업들은 A분야 관련 부서를 조직 내부에 설치해 관련 분야의 대졸자들을 앞다퉈 채용했고, 기업을 상대하는 컨설팅 업체들 역시 자사 나름의 독특한 문제 해결 비법을 간판으로 내세우며 시장 경쟁에 뛰어들었다. 그 시절, 대기업의 사업을 수주한 업체 일부가 그 수익으로 건물 한 채를 매입하는 일은 드물지 않았다. 실제로 부동산은 비용 절감과 자산 증식,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는 가장 안정적인 투자처였다.

한편 A분야의 성장은 관련 교육산업의 성장을 견인해냈다. 일자리의 증가세를 반영해 대학에 관련 학과들이 속속 생겨난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A분야 교육산업의 정점은 1990년대 중후반이었다. 1995년, 대학 설립 요건이 완화되자 이후 전국 각지의 산비탈에는 대학 건물들이 지어 올려졌고, 그 대학 건물들에는 어김없이 A분야의 관련 학과들이 자리를 잡았다. 이 분야의 석·박사 학위 소지자들이 어렵지 않게 교직에 진출할 수 있던 호시절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당시 A분야는 학문적으로 아직 미성숙의 단계에 머물러 있었는데, 바로 그렇기 때문에 학문적 체계화를 목표로 내건 대학원 과정이 여기저기 개설되었다는 점이다. 그런데 더욱 흥미로운 점은 이 시기에 A분야의 업무와 직능을 성공적으로 체계화한 것은 한국의 대학원이 아니라 태평양 건너 북미 대륙의 소프트웨어 개발업체들이었다는 것이다. 물론 학문적이 아니라 기술적인 방식이었지만 말이다.

그 시기, 일군의 북미 엔지니어들은 방법론의 체계화를 통해 A분야의 업무를 일종의 문제해결 프로세스를 자동화하려고 시도했고, 벤처기업을 설립해 그 성과 일부를 전문가용 컴퓨터 프로그램 개발에 적용했다. 이전까지 도제식으로 전수되던 전설의 노하우 비법들은 메뉴판의 수많은 기능들로 정리되고, 최상의 결과물을 추구하던 전문가의 미세한 손동작은 모니터의 화살표 움직임으로 대체되었다. 업무 과정의 반자동화는 A분야의 진입장벽 상당 부분을 허무는 결과를 가져왔다.

문제는 저성장 시대 진입 이후 상황이다. 시장 위축과 일자리 감소에도 불구하고 전문 인력은 대학을 통해 계속 배출되고, 여기에 낮아진 진입 장벽까지 더해져 임금은 제자리걸음을 반복한다. 그리고 마침내 30대 중반의 경력직 평균 임금이 대도시 4인 가구의 평균 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상황에 도달한다. 이제 어떤 일이 일어날까? 소득의 양극화? 그런데 한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내 남녀 임금 격차 1위의 가부장제 사회라는 점을 상기해보자. 젊은 대졸 여성을 인력 수급의 대상으로 삼는 ‘성차별적인 분업화’가 진행되리라 예측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이 지점에서 좀 더 명확한 사태 파악을 위해 1970년대 경공업 여성 노동자들의 고용구조에 대한 사회학자 구해근의 지적을 경청해볼 만하다. “여러 가지 이유로 여성들은 결혼 후 공장생활을 계속할 수 없었다.…높은 노동강도, 장시간의 노동과 초과근무가 기혼여성들이 공장에서 일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었다.…고용주들은 나이 든 노동자들을 임금비용을 줄이면서 새롭고 젊으며 다루기 쉬운 노동자들로 대체하는 것을 선호하였다.”

박해천 동양대 교수 디자인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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