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이승만 정부 이래 역대 정부에는 대북정책이 있었다. 그러나 전두환 정부 이전에는 딱히 대북정책에 이름표를 달지 않았었다. 노태우 정부 때 북방정책이 있기는 했지만, 그건 대북정책이라기보다는 대 중·소 관계개선 정책이었다. 김대중 정부가 처음으로 대북정책에 화해협력 정책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남북관계를 개선하고자 했다. 그 후 노무현 정부는 평화번영 정책, 이명박 정부는 비핵·개방·3000 정책, 박근혜 정부는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정책이라는 이름표가 붙여진 대북정책을 추진했다.

분단국가인 우리나라에서 대북정책은 국민의 지지를 받아야 힘을 받을 수 있다. 상대인 북한에 메시지도 전달하고 국제사회의 협조도 끌어내야 한다. 국민의 지지와 동의를 구할 필요가 없는 독재국가라면 몰라도, 국민과 더불어 국가목표를 달성해 나가야 하는 민주국가에서는 정책 방향과 기조를 밝힘으로써 정책의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 그런 점에서 대북정책에 이름표를 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으로 정권이 교체될 가능성은 100%에 가깝다. 정권이 교체되면 정책교체는 당연한 일이지만, 남북관계의 현실 때문에도 차기 정부는 대북정책 면에서 이명박·박근혜 정부와는 방향과 기조를 달리하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 북핵·미사일 문제 해결의 전기를 마련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 9년 동안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착각과 오판에 근거한 대북정책으로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 고도화·다양화라는 재앙을 초래했다. 따라서 차기 정부는 보수정부가 9년 동안에 초래한 북핵·미사일 능력부터 정지시키고 비핵화까지 달성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그리고 그걸 국민들에게 분명히 알리기 위해서 대북정책의 내용에 걸맞은 이름표를 달아야 한다.

차기 정부는 민주정부 10년 동안의 대북정책 방향과 기조를 복원해야 하지만, 그동안 변화된 국제정세와 북한실정에 맞게 대북정책의 새판을 짜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은, 정책의 이름이 주는 메시지와 이미지일 것이다. 김대중 정부의 화해협력 정책과 노무현 정부의 평화번영 정책은 정책의 방향과 기조를 분명하게 밝힘으로써 대내외적 설명력은 컸다. 그러나 성과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손해도 만만치 않았다. 퍼주기 정책, 유화 정책, 안보외면 정책이라는 비난과 공격을 받았다. 결과적으로 정책의 막대한 성과가 묻히는 아쉬움을 남겼다.

그런 점에서 차기 정부의 대북정책 준비 팀은 이런 비판과 공격을 사전에 차단하면서 대내외적으로 확실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쉬운 말로 대북정책에 이름표를 달아야 할 것이다. 정책의 내용 못지않게 이름이 그 정책의 이미지를 좌우하기 때문이다.

국민의 바람에 맞게, 차기 정부는 안보를 튼튼히 하고 남북협력도 증진시킴으로써 한반도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겠다는 정책 비전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통일은 그 다음 문제라는 것도 솔직히 인정한다. 시대정신과 미래비전이 반영된 융복합적 표현이면 더욱 좋다. 박근혜 정부는 말로는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로 남북 간 신뢰를 구축해 나가면서 북핵 문제도 해결하겠다고 했지만, 실제 행동은 통일준비라는 미명하에 흡수통일을 준비하면서 북핵·미사일 문제는 방치했다. 그 결과 북한의 핵보유라는 재앙만 초래했다. 차기 정부는 이전 정부의 이 같은 잘못을 지적하고, 안보부터 다지고 남북협력을 증진시킴으로써 북핵·미사일 문제 해결의 전기를 마련해 나갈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차기 정부 대북정책에는 ‘안보강화·협력증진 정책’이라는 이름표를 다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대외용으로는 ‘Peace Keeping & Making Initiative’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평화 지키기(Peace Keeping)를 토대로 남북협력을 증진시켜 나가고, 그걸 기초로 평화 만들기(Peace Making)를 함으로써 궁극적으로 북핵·미사일 문제 해결의 토대를 마련한다는 의미에서 말이다.

황재옥 | 평화협력원 부원장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