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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밀레니얼의 42%는 자본주의보다 사회주의를 선호한다고 말하지만, 사회주의가 무엇인지 정의할 수 있는 밀레니얼은 16%밖에 없다. 기성세대에게는 앞뒤가 안 맞는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에 있는 케이토 연구소의 여론조사 책임자인 에밀리 에킨스 박사는 이렇게 말한다. “그들은 인터넷이라는 풍요의 화수분 속에서 자란 사람들이다. 150개의 케이블 채널과 성적 정체성을 분류하는 50가지 방법, 그리고 31가지 종류의 아이스크림에 익숙하다. 그들이 어떻게 두 개의 정당에 만족할 수 있겠는가?” 기성세대의 눈에 앞뒤가 맞지 않게 보이는 것은 어쩌면 사람들의 태도를 분류하는 축이 부족해서일 수 있다.

이대남은 정치적으로 보수화했다고들 한다. 가로축에 연령, 세로축에 보수성향을 놓고 그림을 그리면 U자 형태가 나타난다. 20대는 60대와 생각이 같은 것일까? 아닌 것 같다. 고령층의 보수는 “ ‘니들’이 공산주의를 겪어봤어? 니들이 가난을 알아?”라는 삶의 경험에 그 뿌리가 있다. 이대남의 보수는 “니들이 경쟁을 알아?”라는 삶의 경험에 뿌리를 둔 것으로 보인다. 고령층의 보수와 이대남의 보수가 같아 보이는 것은 2차원 평면에 표시했기 때문이다. 3차원 그래프를 그린다면 이 둘은 확연히 다를 것이다.

그들은 베이비 부머와 그 앞세대에게 산업화를, 86세대에게 민주화를 선점당했다. 하지만 그들은 단군 이래 최고의 교육과 문화자본을 가진 세대다. 따라서 그들의 정체성은 문화적 영역에 있다. 이 세련된 문화소비자들에게 민주화 담론의 부산물인 과도한 정치적 올바름은 ‘극혐’의 대상이다. 그들에게 문화는 곧 정치다. 앤서니 그르진스키는 <해리 포터와 밀레니얼>에서 해리 포터를 읽고 성인이 된 밀레니얼의 정치적 선택은 그렇지 않은 이들과 체계적인 차이를 보인다는 점을 입증했다.

86세대 정치인들은 물러날 생각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판은 이미 바뀌고 있다. MZ세대 정치인의 약진은 이준석만의 현상이 아니다. 36세의 핀란드 총리 산나 마린을 비롯해 전통적으로 젊은 정치 지도자를 배출해온 유럽은 말할 것도 없고, 미국이나 동남아시아에서도 이들은 속속 도약하고 있다. 이들이 힘을 가지면 86세대에게 물러나라고 말할 필요가 없다. 그냥 그들의 자리를 차지하면 되니까.

요즘 미국 정치의 최고 스타는 31세의 민주당 재선 하원의원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다. 뉴욕 브롱크스에서 푸에르토리코계 3세로 태어났고, 어려운 형편을 딛고 뛰어난 학업성적으로 명문 보스턴대에서 국제관계와 경제학을 복수 전공하고 우등으로 졸업했다. 대학 재학 중에는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동생인 테드 케네디 상원의원의 인턴으로 일하기도 했다. 그런 그였지만 대학 졸업 후 건물 청소를 하며 생계에 허덕이는 어머니 곁으로 돌아가 웨이트리스와 바텐더로 일해야만 했다. 그가 다시 도약의 발판을 얻은 것은 2016년 민주당 경선에서 버니 샌더스의 조직 관리자로 이름을 알리면서였다. 2년 후인 2018년 29세의 오카시오코르테스는 민주당 경선에서 10선의 조셉 크롤리를 누르고 본선에서 공화당의 앤서니 파파스를 멀찌감치 따돌리며 의회에 입성했다.

오카시오코르테스의 깨달음 중 하나는 세상에 대한 자신들의 비판을 권력으로 무장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비판 그 자체는 무의미하다. 이겨야 한다. 선거에서는 앞세대라면 하지 않았을 무지막지한 전투를 피하지 않는다. 그들 세대의 경험칙은 ‘딱 한 걸음’만 잘못 디디면 절벽으로 추락한다는 것이다. 엘리트 교육을 받은 수재였던 오카시오코르테스는 2008년 금융위기 직전에 부친이 사망하자 곧바로 고향으로 돌아가 바텐더를 해야만 했다. 문화적 정체성을 권력으로 번역하는 것이야말로 MZ세대 정치인의 힘이다.

2017년에 문재인 후보에게 투표했던 밀레니얼이 돌아선 것은 그들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치적 올바름 때문에 내 편의 잘못에 눈감는 것은 투명성과 책임이라는 밀레니얼의 정치적 신념과 정면으로 상충한다. 그들은 스윙보터가 아니라 자신들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쪽으로 일관된 투표하고 있고, 이준석과 오카시오코르테스는 그들이 직접 권력을 장악하는 쪽으로 관심을 돌리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이준석과 박성민의 차이는 이것이다. 박성민은 기성세대 체제에 발탁됐고, 이준석은 기성세대 체제를 점령했다.

MZ세대는 왜 유튜브에서 춤추는 대선후보들에게는 싸늘하면서 전원일기와 이순재와 윤여정에게 열광할까. 오래된 것은 당당하게 그 자리에 있을 때 뉴트로의 대상으로 비로소 소비되기 때문이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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