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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적으로는 이론과 현실은 같은 거야. 아, 물론 현실적으로는 다르지.” 이론과 현실의 차이에 대한 유명한 농담이다. 이 차이를 이해하지 못해서일까. 이미 15년 전에 94세로 세상을 떠난 미국의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이 2021년 한국에서 뜬금없는 고생을 하고 있다. 그것도 양쪽에서.

일단 한쪽부터 보자.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부친이 선물한 밀턴 프리드먼의 저서 <선택할 자유(Free to Choose)>를 읽고 감명을 받았고, 그것이 ‘자유민주주의’를 향한 그의 신념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고 말한 바 있다. 이 책의 1장은 ‘시장의 힘’이고 2장은 ‘규제의 폭압’이다. 편의점 최저임금이나 부동산, 대기업 구내식당에 이르기까지 국가가 개입하는 문재인 정부의 정책은 ‘규제의 폭압’으로 읽혔을 것이고, 그에 맞서 ‘자유민주주의’를 회복해야겠다는 신념으로 승화되었을 법도 하다. ‘120시간 노동’이나 ‘부정식품’ 발언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가 된다. 그는 국민들을 주당 120시간 강제노동을 시켜야 한다고 한 적도 없고, 가난한 사람에게 부정식품을 먹여야 한다고 한 적도 없다. 본인들이 원한다면 ‘선택할 자유’를 주어야 한다는 것이고, 실제로 그렇게 해야 시장원리를 통해 사회 전체의 후생이 극대화된다는 것은 경제학개론을 들은 사람이라면 알아야 정상이다. 같은 말을 했는데 누구는 노벨상을 받았고 누구는 비난을 받았다. 이론적으로는 그는 억울하다.

프리드먼은 신자유주의 정책의 양대 지도자라 할 수 있는 로널드 레이건과 마거릿 대처의 경제 자문이기도 했다. 신자유주의는 팬데믹이 불러온 거대 정부의 등장으로 ‘바람과 함께 사라졌다’는 평가가 대세인데, 이 시기에 프리드먼의 경제 철학이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다. 프리드먼은 미국에서 징병제도를 철폐하는 데 역할을 한 것이 가장 자랑스럽다고 했고, 의사면허제도와 마약 규제 또한 철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프리드먼의 후계자인 게리 베커는 한술 더 떠서 대부분의 죽음은 자살이라고까지 주장했다. 가용한 자원 중 더 많은 부분을 자신의 생명을 연장하는 데 썼더라면 더 오래 살았을 수도 있는데, 사람들은 과식하고 술 마시고 위험한 행동을 하다가 죽고 만다. 죽음을 ‘선택’한 것이다. 그는 어디까지 동의하는 것일까. 120시간과 부정식품까지인가, 신자유주의의 부활까지인가, 징병제와 마약규제 철폐까지인가, 아니면 죽음과 자살의 등치 가능성까지인가.

이제 다른 쪽을 보자.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밀턴 프리드먼도 기본소득 주창자였다고 강조한다. 이재명 지사 본인이 프리드먼을 직접 언급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그는 마크 저커버그와 일론 머스크는 끌어들였고 좌파정책이 아니라 시장주의 정책이라고 주장했다. 우파 경제정책의 조상인 프리드먼이나 오늘날 자본주의 시장의 최대 승자인 저커버그 혹은 머스크나 그 상징 효과는 비슷하다고 하겠다. 사실 프리드먼은 기본소득이 아니라 ‘마이너스 소득세’를 주장했다. 구체적 내용은 많이 다르지만 일정 수준의 소득보장이라는 측면에서는 같다.

그러면 시장주의의 최고봉인 프리드먼은 왜 소득보장에 찬성했을까. 기존의 복지제도를 위해 쓸데없이 팽창한 정부 조직과 기능을 줄이는 것이 하나이고, 기존 복지제도하에서 일을 하면 오히려 복지를 빼앗기는 인센티브의 왜곡을 방지하고 사람들이 시장에 나가 일하게 만들려는 것이 다른 하나다. 한마디로 시장의 기능을 극대화하기 위해 소득보장에 찬성한 것이다. 따라서 프리드먼의 마이너스 소득세를 받아들이려면 기존의 복지제도는 모두 포기해야 한다. 이 지사도 이론적으로는 억울하다. 그는 기본소득이 성장정책이라고 강조해왔기 때문이다. 기본소득이 어떻게 해서 30년째 하락 중인 성장률을 반등시키는지에 대한 믿을 만한 설명은 아직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런데 요즘은 기본소득은 부동산정책이라는 설명도 내놓고 있다. 국토보유세를 매겨서 기본소득 재원으로 쓰면 투기가 잡힌다는 논리다. 그러면 부동산정책이라고 내놓고 말하고 국민의 평가를 받아야 한다. 이 지사에게는 프리드먼의 <선택할 자유>보다는 존 로머의 <패배할 자유(Free to Lose)>를 권한다. 자본주의의 소유관계를 바꾸지 않으면 어떤 사람들은 계속해서 패배할 수밖에 없음을 설파한 유명한 책인데, 부동산정책으로서의 기본소득을 설명하기에는 훨씬 잘 맞는다.

프리드먼은 현실적으로 억울하다. 갑자기 여의도에 끌려와서 한 적도 없는 말로 이리저리 휘둘리는데 정신이 없을 것이다. 서울이 어디 만만한 곳이더냐. 눈 뜨고 코 베이는 비정한 밀턴 프리드먼 상경기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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