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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합격 통지를 받고 나서 가장 먼저 했던 일이 첫 학기 등록금 납부였다. 합격의 기쁨은 잠시 접어두고 500만원이 넘는 등록금에 대한 걱정부터 해결해야 했다. 내야 할 돈은 400만원 가까운 수업료와 학생회비, 100만원 안팎의 입학금이었다. 입학식에 연예인도 오고, 대형 폭죽도 쏘고, 고급스러운 만찬과 입학 기념품이라도 주는 것일까.

그렇다고 해도 입학 사무를 위해 필요한 것치고 한 사람당 100만원이라는 비용은 터무니없이 높았다.

어디에 쓰이는지 궁금해도 전혀 알 길이 없었다. 입학금은 등록금에 산입되어 별도의 회계로 관리되고 있지 않았다. 입학금 징수를 위한 산정 근거조차 없었다. 모두 대학 재량대로 책정됐다. 그렇다고 입학금을 내지 않으면 입학 자체가 불가능했다. 대학과 교육부의 논리대로라면 그동안 신입생은 학생증을 100만원 안팎의 돈을 내고 구입한 것밖에 되지 않는다. ‘선배들이 이룩해놓은 유무형의 대가를 치르는 것이라 생각하라’ ‘특정 용도로 사용하라는 규정이 없으니 괜찮다’ ‘대학사회의 일원이 되기 위한 멤버십 비용이다’라는 대학 당국과 교육부의 말은 학생을 이용해먹기 쉬운 손님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고서야 할 수 있는 말이 아니었다.

할 수 있는 일부터 하나씩 시작했다. 34개 대학에 입학금 사용 내역과 관련한 정보공개 청구를 하고, 8000여명의 대학생에게 입학금 폐지 서명을 받았다. 1만여명이 모여 입학금 반환 청구 소송에 들어갔다. 그리고 꾸준히 기자회견과 토론회를 진행했다.

이러한 고생을 조금은 알아주기라도 하듯 교육부에서는 입학금 폐지 TF를 구성했고 국공립대는 내년부터 입학금을 폐지하기로 했다.

입학금은 반값등록금과 함께 제기되어왔던 오랜 이슈다. 반값등록금을 위한 문제에 지난 몇 번의 정권은 매번 오답만 내왔다. 미래를 담보해 지금을 버티게 하는 학자금 대출이 그렇고, 누구에게 등록금 반값만큼의 액수를 지급하는 건지 모를 국가장학금이 그렇다. 학자금 대출을 갚기 위해 일하러 가는 지하철 안에서 국가장학금 예산이 늘어 반값등록금은 이미 실현되었다는 교육부의 광고를 보았을 때는 헛웃음이 나왔다. ‘진짜 반값등록금’은 모든 대학생의 등록금 고지서에 반값으로 찍혀 나와야 하는 것이지 일정하지 않은 기준으로 산정되는 소득분위에 따라 학생 간 차등을 두어 받는 장학금이 아니다. 입학금 폐지는 비정상적으로 높은 고등교육비를 낮추는 당연한 과정 중 하나일 뿐이다. 그다음 단계는 ‘진짜 반값등록금’이 되어야 한다.

‘4000이 뉘집 개냐 땅파면 나오더냐 개발에 땀나게 뛰어 죽도록 일해서 번 돈 눈먼 돈이 아니야…♪’ 내가 초등학생일 때 유행어이자 노래였던 김숙의 ‘4000만 땡겨주세요’ 가사 중 일부다. 어렸던 그때엔 그저 개그 코너에서 시도 때도 없이 4000만원만 땡겨달라던 그를 보며 한참을 웃고 친구와 따라 했더랬다.

지금도 1년에 두 번씩, 2월과 8월마다 그 유행어를 따라 한다. ‘500만원만 땡겨주세요, 이번 학기 등록해야 하거든요. 죽도록 벌어서 갚을게요.’ 그렇게 나는 학자금 대출로 지금까지 3000만원을 땡겨받았고 앞으로 1000만원을 더 땡길 예정이다.

적어도 내게 대학은 지식을 쌓은 상아탑이 아니라 빚으로 쌓은 우골탑이다.

민선영 | 청년참여연대 공동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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