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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리대는 하루 7.5개씩 한 달에 7일간 평생’ 사용해도 안전하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지난 9월28일 발표한 ‘생리대 휘발성 유기화합물 전수조사 결과’의 핵심 내용이다. 시중에 제조, 유통 중인 666개 품목에 대해 휘발성 유기화합물 10종을 조사했는데 문제가 없다는 것. 그런데 발표 내용을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까.

일회용 생리대에 관한 두 가지 분명한 팩트가 있다. 첫째, 여성들은 생리대로 인해 현재, 고통을 받고 있다. 여성환경연대가 확인한 한 생리대 제품의 경우, 이틀 만에 3000건이 넘는 건강 피해 사례가 접수됐다. 전체 가임여성, 제품의 시장점유율 등을 따졌을 때 1000명당 3명의 비율로 ‘의미 있는’ 수준의 이상 증상이 발생한 것이다. 생리량 감소, 생리통 증가, 생리 주기 변화와 질염 등 피해 유형도 다양하다. 여성 한 명은 40년 동안, 1만에서 2만개의 생리대를 사용한다. 시중에 유통 중인 생리대 품목은 600개 이상이다. 여성의 몸이 고통을 증거한다.

여성·환경단체 회원들이 28일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생리대 안전과 여성건강을 위한 공동행동’ 출범식을 가졌다. 출범식 참가자들이 기자회견을 마친 뒤 안전한 생리대에 대한 바람을 담아 독성생리대 모형을 가위로 자르고 있다. 여성·환경단체 회원들이 28일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생리대 안전과 여성 건강을 위한 공동행동’ 출범식을 한 뒤 생리대 모형을 자르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김영민 기자

그런데 정부는 일회용 생리대 유해성을 모르고 있다는 것이 두 번째 팩트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휘발성 유기화합물 10종에 한정해 조사했고 위해평가는 경구 섭취를 기준으로 삼았다. 정부가 올해까지 실험하기로 한 휘발성 유기화합물은 총 84종이다. 생리 이상의 원인이 휘발성 유기화합물 때문인지도 밝혀지지 않았다. 발암물질인 다이옥신과 퓨란, 잔류 농약, 내분비계 교란물질인 프탈레이트, 향료의 유해물질 등이 생리대에서 검출될 수 있다는 해외 보고서도 있다. 또한, 여성의 질을 통한 화학물질 흡수는 경구 섭취와 양태가 전혀 다르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안전’을 강조하기보다 오히려 피해는 있는데 원인을 모르는 ‘위험’을 투명하게 알렸어야 했다.

과학적으로 인과관계가 확실하지 않지만 심각한 건강 피해의 가능성이 있다면, 우리는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 생명, 안전, 식품 등의 영역에서 필요한 조치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국가와 행정도 ‘사전 예방의 원칙’을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생리대가 생산된 지 50년이 다 되었지만, 여성의 피해는 평생을 관통하면서 발생하고 있다. 우리 사회는 ‘모르쇠’로 일관하였다. 안전성이 증명되지 않은 의심 화학물질이 지금도 대책 없이 사용된다. 생리대 전 성분 표시제도 시행되지 못했다.

일회용 생리대에 관한 해법은 지극히 단순하고 명쾌하다. 여성의 고통이 존재하니 이유를 밝히고 대책을 마련하면 될 일이다. 생리대로 인한 피해 유형을 낱낱이 밝히는 일은 무엇보다 시급하다. 사전 예방의 원칙에 따라 생리대 안전성이 의심되는 모든 화학물질의 사용을 금지해야 한다. 기업은 생리대에 사용한 모든 성분을 표시하고, 유해 화학물질의 제조와 유통은 추적 가능해야 한다. 인체 위해평가를 넘어 범정부 차원의 역학조사도 필요하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생리대 위해평가와 그 대책을 주도하는 것은 역부족이다. 보건복지부와 환경부가 협업하고 국무총리실이 주도하는 ‘생리대유해화학물질대책반’을 빠르게 구성해야 한다.

지금, 국회에서는 국정감사가 한창이다. 그런데 본질을 호도하고 변죽만 요란하게 울리고 있다. 생리대 제조 기업의 매출이 감소하였다며 시민단체를 질타하는 분위기도 있다. 대한민국 여성의 건강 상태는 비상 상태다. 본질은 고통받는 여성의 건강권과 행복추구권이다.

<윤상훈 | 녹색연합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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