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세계 최대의 책 잔치라 일컬어지는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에서는 상업적인 저작권 거래도 활발하지만 출판인들을 대상으로 한 회의들도 많이 열린다.

출판의 현황이나 새로운 경향을 읽으려는 사람들을 위한 콘퍼런스도 이루어지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기 위한 전략을 논의하는 모임도 열린다. 그리고 출판산업의 구조를 뒷받침하는 모임도 열린다.

지난주에 열린 2017년 도서전에서 도널드 트럼프 시대의 출판산업에 대한 발표를 비롯해 프랑스, 영국, 인도, 동남아시아, 미국 시장에 대한 분석이 있었다. 출판의 근간에 대한 고민을 하면서 국제적인 협력을 도모하는 국제회의들도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국제출판협회(IPA)의 분과 모임들과 총회가 열렸다. 이 단체에는 우리나라의 대한출판문화협회를 비롯해서 70여개국의 출판협회가 정회원으로 가입되어 있고 준회원, 후원회원 등 다양한 수준의 회원들이 있다. IPA가 추구하는 가장 큰 목표는 ‘출판의 자유’이다. 예를 들어, 올해 6월에 당선된 이탈리아 베로나 시장 페데리코 스보아리나가 학교와 도서관에서 동성 부모를 다룬 책들을 학교와 도서관에서 몰아내기로 결정했을 때 출판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보고 크게 항의했다. 8월엔 케임브리지대학 출판부가 중국 정부의 압력에 맞서 중국과 관련된 학술 정보에 대한 온라인 접근을 재개했을 때도 앞장서 지지를 보냈다. 국가 권력이 사람들의 생각과 학술적인 연구 결과의 유통을 왜곡하는 데 반대를 하는 것이다.

IPA는 우리나라에서 국정교과서 파동이 일어났을 때도 출판의 자유를 침해하지 말라는 성명을 내려 했다고 들었다. 하지만 그때는 한국의 출판인들이 도움을 받을 준비를 갖추지 못했다.

우리나라는 매년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리는 IPA의 총회에는 꾸준히 참석해 왔지만 개별 분과 회의에 참여하거나 활동을 한 적이 없다. IPA의 분과 회의에서는 정책 개발, 출판 자유, 저작권, 교육 출판, 시장 연구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이번 프랑크푸르트에서 협의를 통해 저작권과 교육 출판 그룹에 대한출판문화협회가 지명한 위원들의 활동을 바로 시작하기로 했고 다른 그룹들에서도 내년 봄 런던 회의부터 활동을 시작하도록 조치를 할 예정이다. 이런 그룹 활동이 중요한 이유는 총회가 최종 결정을 하지만 IPA의 실질적인 활동은 분과 회의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출판계에는 공공기관의 상업 출판의 문제나 저작권을 구성하는 데 판면권 등을 어떻게 정의하고 적용할 것인가 등의 현안들이 있고, 프랑크푸르트에서 IPA 회장 미클 콜만(네덜란드)과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이들도 같은 고민을 깊게 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런 고민들을 공유하고 함께 풀어 나갈 수 있는 바탕이 마련된 셈이다.

뿐만 아니라, 중국 정부가 한국의 출판물들을 번역이든 수입이든 모두 허락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 출판의 자유를 심각하게 저해하고 있다는 데 대해서도 IPA 집행부가 의견을 함께했다. 우리는 정식으로 이 상황에 대한 보고서를 내고 IPA가 채택해서 우리가 도움을 받을 길을 모색하고 있다. IPA 부회장 위고 세처(브라질)는 2008년 서울에서 열렸던 IPA 총회 이후로 한국과 끊겼던 관계가 회복되어 기쁘다고 했다. 한국 출판계가 한 단계 더 성숙해서 세계 출판계의 일원으로 지식과 사상의 자유로운 유통을 위한 노력을 함께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IPA가 양복 입고 만나는 공식적인 교류 자리였다면 전 세계 도서전 디렉터들과 함께한 모임은 넥타이 풀고 만나는 즐거운 파티였다. 과달라하라 도서전을 대표하는 데이비드 윙어(멕시코)가 주관한 이 자리에 30여개 도서전의 디렉터들이 모였다. 프랑크푸르트, 파리, 볼로냐 같은 서유럽뿐만 아니라 보고타, 부에노스아이레스, 프라하, 바르샤바, 예루살렘, 모스크바, 타이베이, 예테보리 등에서 온 친구들도 축제를 만드는 사람들답게 유쾌했다.

공식적인 모임 다음날 있었던 와인 파티는 자정을 넘겨 길게 이어졌다. 이 모임에서 보고타와 예테보리에서 한국을 주빈국으로 초청하는 일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도서전 중에 열린 한국관 파티에 참석한 자카르타와 마닐라 도서전 쪽에서도 한국을 주빈국으로 초청했다. 모두 다 갈 수는 없는 일이니 이젠 어디를 가서 교류를 할지 순서를 정해야 한다.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조직위원회 측과 서울에서 아시아 출판시장을 대표하는 저작권 시장을 함께 여는 것에 대한 논의도 시작했다.

한국의 출판, 콘텐츠가 세계의 흐름 속에 발을 맞추어 보고 있다.

<주일우 | 이음출판사 대표>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