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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17일은 강남역 여성살해 사건 2주기가 되는 날이다. ‘여성들로부터 무시를 당했다’는 이유로 여성을 선별해 살해한 사건이었음에도 당시 박근혜 정부는 ‘조현병 때문’이라며 엉뚱한 대책을 내놨다. ‘여성혐오 살해’라는 사건의 본질을 흐리고 제대로 된 정책적 대안을 마련하지 않은 채 2년이 지난 2018년, 우리 사회는 어떻게 변화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한국 사회는 더욱 심각하고 폭력적인 여성혐오의 장면들을 일상적으로 마주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일상의 민주주의가 사라지고 있다.

5월10일에는 작가 은하선씨의 강연이 취소됐다. 강연 주최자인 서강대 총학생회가 밝힌 취소 이유는 ‘연사들과 주최 측에 대한 혐오 발언과 백래시, 총학생회 구성원 개개인과 관련인을 향한 폭력을 더 견딜 수 없어서’였다.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았지만 그들이 겪었을 고통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지난 4월에는 한 게임업체 원화가가 여성단체의 SNS를 팔로우했다는 이유로 사장으로부터 사상을 검증받고 사과문을 쓴 사건도 있었다.이 사건을 계기로 한국여성민우회에서는 성차별적인 일상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고 행동한다는 이유로 사상검증, 불이익, 배제, 해고 등을 경험한 사례를 제보받았다.  불과 열흘 남짓한 기간 동안 수집된 사례는 총 182건이었고, 욕설 등 폭언을 듣는 것은 기본이고 심각한 노동권 침해사례도 14건이나 있었다.  그런데 피해를 입은 이유가 너무나 어이없다. “미투를 지지하는 의견을 내거나 여성인권에 대해 말해서”(62건), “카톡프로필을 ‘Girls can do anything’이라고 했거나 이 문구가 들어간 핸드폰케이스나 티셔츠를 입어서”(34건), “SNS에서 페미니즘 글을 RT 또는 마음찍기하거나 여성단체를 팔로우해서”(19건), “페미니즘을 공부하거나 책을 읽었다고”(15건), “페미니즘 동아리를 만들거나 홍보한다”(6건)는 등의 이유로 여성들은 “계약을 일방적으로 해지당하”거나 “아르바이트비를 받지 못하고 해고되”기도 하고, “독서시간에 책을 읽다가 선생님께 책을 뺏기”고, “동아리에서 강제로 쫓겨나고 행사 대관을 취소당하는”가 하면, “배지를 떼라는 선생님의 지시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교내봉사와 예정된 전시가 무산되는” 피해를 입었다. 여성들은 이런 얼토당토않은 이유로 ‘메갈’이라고 낙인찍히고 온갖 욕설과 혐오의 말,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되었으며 표현의 자유, 안전하게 교육받을 권리와 일할 권리를 침해당하고 있었다.

우리는 대통령이 페미니스트임을 선언한 시대에 살고 있다. 사회정의로서의 페미니즘과 성차별 구조 개혁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민주주의 과제이고 사회적 정의다. 그럼에도 아직도 ‘메갈’ 프레임을 씌워 여성들의 정당한 목소리를 지우고 기본적인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려는 시도들이 계속되고 있다. 이제 이에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 ‘메갈’ 프레임은, 과거 폭력과 인권 침해를 정당화하는 도구였던 ‘빨갱이’라는 말이 ‘메갈’이라는 단어로 대체된 것이고 대상이 여성으로 한정된 것일 뿐이다. ‘메갈’ 프레임은 허구이고 여성혐오이며 폭력이다.

강남역 2주기, 과거의 불행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모든 이의 일상에서 민주주의가 살아 숨쉬는 미래를 상상해 본다. 민주주의가 떠도는 말이 아닌 현실이 되는 것, 그것이 촛불혁명 이후 우리가 만들어갈 대한민국의 모습일 것이다.

<김민문정 | 한국여성민우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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