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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화제인 옥류관 냉면을 중국 베이징에 있는 옥류관에서 두어 번 먹어봤는데 기대에 미치진 못했다. 칡냉면이라 색이 검고 국물도 시큼했다. 얹어서 나오는 다대기 양념을 풀면 약간 달기까지 했다. 먹어본 분들이 왜 그렇게까지 열광하는지 잘 이해하지 못하겠다. 지난 10년 평양냉면을 먹어본 바에 따르면 그 진미는 역시 메밀로 뽑은 면발과 고기육수에 있다.

을밀대, 을지면옥, 필동면옥, 남포면옥, 정인면옥, 우래옥, 봉피양 등등 명가라 불리는 식당을 두루 섭렵해봤는데 내 입맛은 을밀대 쪽이다. 을밀대의 특징은 진한 고기육수다. 살얼음이 낀 고기육수를 한 모금 머금었을 때의 그 풍부한 맛이란. 을밀대의 면발은 다른 냉면집에 비해 쫄깃하다. 녹말의 비중이 높기 때문일 것이다. 명품 평양냉면일수록 메밀 비중을 높인 순면을 강조하는데 순면은 국수가 힘이 없고 툭툭 끊어진다. 나는 녹말 비중이 높은 쫄깃한 면이 더 좋다. 그 이유는 저작활동을 열심히 할 수 있고, 많이 씹어 메밀향이 입안 가득 퍼지기 때문이다. 한참 씹다 보면 콧김으로 메밀향이 밀려나온다.

우래옥도 고기육수가 강한데 국물을 내는 고기의 부위가 을밀대와 좀 다른 것 같다. 육향이 좀 낯설다. 을지면옥과 능라도는 내 지인의 표현에 따르면 하드코어다. 국물이 맑고 감칠맛은 깊이 숨겨져 있다. 면도 얇고 잘 끊어진다. 흔히 말하는 무심한 맛이라 하수들에겐 고명하게 다가온다. 옛날 사람들도 순면으로 먹었을까? <음식디미방>을 보면 정제한 메밀의 껍질을 벗겨 불린 녹두와 섞어 갈고 더운 물로 눅게 반죽한다고 되어 있다. 그 외에도 시면가루(녹말가루)로 만든 국수가 몇가지 등장한다. 역시 조선시대에도 국수의 쫄깃함을 즐겼음을 알 수 있다.

면(누들)은 전 세계적으로 보편적인 음식 형태이고 역사가 오래되어 보이나 인류 발달단계에서 보면 비교적 최근에 나타난 음식 형태다. 고고학 발굴 결과로 보면 우리 민족의 탄수화물 섭취는 낟알을 맷돌에 갈아 가루로 만든 미숫가루 형태에서 시작했다. 그러다가 벼농사가 개시된 청동기시대에 곡물을 증기로 쪄서 먹기 시작했다. 이는 청동기시대 유적에서 시루가 발견된 사실로 알 수 있다. 시루가 쓰이던 시대에는 쌀을 가루 내어 시루에서 찐 떡, 혹은 쪄낸 떡을 돌확에서 친 떡이 평상시의 음식으로 상용되었다. 그러다가 무쇠솥이 개발돼 주방에 걸리면서 본격적인 밥의 시대가 열린다. 상용음식으로서 떡과 밥의 역전은 시루에서 무쇠솥으로의 용기 변화에서 살펴진다. 국수는 고려, 조선시대에나 와서야 먹기 시작했다. 일상식은 아니고 주로 제례음식이었는데 국수의 면발이 길기 때문에 장수와 해로를 바라는 의미에서 생일상, 잔칫상에 올랐다. 양반들이 고량진미로 술을 마시고 입을 개운하게 해주는 마무리 음식으로도 애용했다. 그러던 국수가 현대로 넘어오면서 본격적인 한끼 음식으로 거듭났다. 집에서는 라면과 소면을 먹고 밖에 나오면 칼국수나 자장면, 냉면, 파스타 등을 다양하게 사먹는다. 나도 면을 너무 좋아해 하루에 한끼 이상을 면으로 해결하는 것 같다.

면이 이처럼 우리의 입맛을 사로잡은 이유는 무엇일까. 범박한 추측으로는 촉각과 청각이 한몫하지 않을까 한다. 면은 입술에 닿는 대표적인 음식이다. 밥은 숟가락으로 떠서 혓바닥으로 직행하지만, 면은 혀로 물어 입술을 스치며 빨려 올라가며, 그 과정에서 그 미끈한 면발과 입술이 아주 길게 마찰되는 과정이 있다. 그리고 빨아들일 때 나는 후루룩 소리는 듣기만 해도 군침이 돌게 하여 식욕을 유지시킨다. 마치 꼬리가 달린 것처럼 국수의 끝이 코끝을 때리기도 한다. 밥에 비해 국수는 오감적 차원의 만족감을 높여주는 음식인 셈이다.

떡이나 밥에 비해 곡물 음식의 후발주자이자 미식의 개척자인 국수는 왜 상용음식의 자리에 오르지 못했을까. 가끔 내 머리를 스치던 궁금증이다. 우선 국수는 배불리 먹어도 배가 빨리 꺼진다. 치명적인 약점이다. 대부분의 국수는 밀가루이기 때문에 쌀에 익숙해진 한국인의 소화능력에 부담을 안겨주기도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먹고 남은 국수를 처리하는 일의 난감함이 클 것이다. 국수든 냉면이든 자장면이든 모든 국수는 불어터진다. 양을 딱 맞게 하지 않으면 버려야 하는 난감함이 있는 것이다. 이것이 면의 치명적 약점이다.

같은 밀가루라도 빵은 그렇지 않다. 뜯어먹다가 내던져둬도 나 먹어줘 하며 기다린다. 그러니 짧게 피었다 지는 꽃 같은 면은 가정집 식탁의 지배자가 될 운명은 아닌 것이다. 그래서 면식가들의 더욱 애틋한 사랑을 받는 것일 수도 있고 말이다.

<강성민 | 글항아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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