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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2월, 국회 앞에서 1인 시위를 한 적이 있다. 각 정당이 4월 총선 공천을 준비할 때였다. 어느 당에서는 노동개악 입법을 주도하는 자, 사학비리에 연루된 자, 채용비리를 저지른 자, 청년정책에 막말을 쏟아붓는 자에게 공천 번호를 줄 기세였다. 그런 꼴을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을 수 없었기에 뜻 맞는 몇몇 동료 청년단체들과 피켓을 만들어 점심시간 동안 1인 시위를 진행했다. 닷새 동안 진행할 예정이었지만 둘째날이 지나자마자 선관위에서 경고장이 날아왔다. 왜? 후보자 사진과 이름을 피켓에 게시한 것은 선거법 위반의 소지가 다분하다고. 현실에 분노한 청년에게 선거를 앞둔 국회의원이란 보아서도 불러서도 안되는 <해리포터>의 악당 볼드모트와 같은 존재인가. 후보자의 사진과 이름을 볼드모트 사진으로 바꿔 다시 진행했다. 그렇게 하지 말라는 것 다 지켜가며 구호 하나 발언 하나 없이 피켓을 든 청년에게 날아온 대답은 ‘소송’이었다.

이례적인 일은 아니다. 선거법 90조(시설물 설치 등의 금지)와 93조(탈법방법에 의한 문서·도화의 배부·게시 등 금지), 103조(각종 집회 등의 제한) 등 대표적인 독소조항으로 불리는 것들이 유권자의 말할 자유에 천천히 독을 풀고 있다. 수많은 활동가와 시민들이 재판을 받았고, 대부분 벌금형으로 끝나거나 진행 중에 있다. 그들은 트위터로 당선되지 않았으면 하는 국회의원 이름을 거론했고, 서울시 무상급식 정책을 후보자에게 채택하라고 했으며, 유명 인사가 투표 독려를 위해 인증샷을 올렸을 뿐이었다.

1인 시위에서 후보자의 사진과 이름을 적은 피켓을 들고 있었다는 이유로 진행된 재판은 무죄 판결로 끝이 났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어떠한 형벌도 벌금도 치르지 않았으나 긴 시간 동안 이어진 재판에서 표현의 자유의 대가를 혹독하게 치른 듯했다. 이때의 후유증은 앞으로 수없이 치를 선거 때마다 우리를 괴롭히고 위축시킬 것이다.

선거법으로 규제할 것은 지나친 선거비용 정도이지 정치적 의사표현이 아니다. 선거법을 ‘돈은 묶고 입은 푼다’는 취지로 제정·개정한다지만 결국 선관위는 유권자의 ‘입도 묶기’ 위해 자의적으로 법을 해석하고 집행한다. 선관위 식대로 하자면 집회에서 마이크 들고 발언하기도, 현수막을 게시하기도, 손피켓 들기도 힘들다. 매해 대대적으로 투표 독려 캠페인을 하지만 정작 유권자가 각 후보자와 정당의 정책을 비교하고 이를 표현하면 이들의 양손을 묶어 법정으로 데려간다. 유권자를 투표 찍는 기계로만 보는 것이 아닐까, 의심스러울 정도다.

끝이 보이지 않던 광장에 대선이라는 새 국면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미 대선 후보자들은 예능 프로그램이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이미지 메이킹에 집중하고 있으나 시민단체에서 후보자 자질을 검증하는 자리를 마련하면 어물쩍 넘어가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선거법이 개정되지 않은 오늘날, 탄핵이 인용되고 선거운동 기간을 맞이한다 해도 가진 것이라고는 집회·언론·결사의 자유밖에 없는 시민들만 입과 손발이 묶일 것이다.

선거법 개정은 유권자의 정치적 의사표현의 자유를 확보하자는 말과도 같다. 후보자의 자질과 정책에 대해 꼼꼼히 비교하고 평가하고 함께 공유하자는 말과도 같다. 그래서 더 나은 시의원, 국회의원, 대통령을 뽑자는 말과도 같다. 지금의 광장을 지키기 위해 선거법 개정에 대한 국회의 의지와 유권자들의 감시가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민선영 | 청년참여연대 공동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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