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국방부는 지난 토요일,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가 배치된 성주기지에서 전자파, 소음 측정을 강행하였다. 대구지방환경청에 접수된 사드 소규모 환경영향평가서에 대한 전문가 현장 확인을 위해서였다. 현장 확인 직후, 국방부는 사드 전자파는 인체 허용 기준 200분의 1에도 못 미쳐 안전하다고 발표하였다. 이로써 환경영향평가는 ‘탄력’받고, 사드 배치는 확정적인 분위기다.

문재인 대통령은 사드 배치에 대해 국내법에 따라 ‘절차적 정당성을 밟아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여기서 절차적 정당성이란 첫째 환경영향평가는 제대로 하고, 둘째 사드 공론화는 충분히 갖는다는 것. 미국도 이해할 것이라고 했다. 이에 대통령은 4기의 발사대가 비밀리에 추가 반입된 경위와 전략환경영향평가 회피 의혹에 대한 국방부 진상조사를 직접 지시하였다. 국민은 국가가 제안한 ‘절차적 정당성’을 믿었다.

잘 지켜지고 있을까. 아니다. 안보 논리에 밀려 절차적 민주주의는 상실된 듯하다. 대통령이 직접 사드 발사대 4기를 추가 배치하라고 지시하였다. 국내에 반입된 사실이 보고되지 않아 격노했던 바로 그 발사대이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중국 외교부장에게 사드 배치의 필요성을 설명하였다. 미국에도 ‘배치 이상 무’라는 메시지를 지속해서 보내고 있다. 지금의 정부는 사드 배치는 확정된 것이지만 환경영향평가는 철저히 하겠다고 한다. 이 무슨 궤변인가. ‘선 사드 배치, 후 환경영향평가’는 환경영향평가법을 위반한 절차상 불법이다. 환경부 장관도 모르지 않을 것이다. 대통령과 행정부 수장이 초법, 불법의 제일 앞줄에 서 있다.

국방부와 환경부가 추진 중인 소규모 환경영향평가는 그 자체로 불법이다. 지난 6월 청와대가 확인했듯이, 국방부는 미군에 공여할 부지 70만㎡를 둘로 쪼개면서 1단계 공여 부지는 33만㎡ 미만으로 지정하였다. 이는 전략환경영향평가 대신 소규모 환경영향평가를 하기 위한 불법 ‘부지 쪼개기’이다. 국방부는 박근혜 정부에서도 사드 2기 불법 반입과 가동, 주변 보완공사 등 사전공사 금지를 위반하였다. 이것도 사법 처리의 대상이다. 사드 배치의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려면 소규모 환경영향평가를 폐기하고 사드 장비 가동을 중단, 철수한 후 전략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하는 게 순서다. 국방부의 불법을 투명하게 조사하는 게 먼저다. 환경영향평가법은 투명한 정보 공개와 민주적 의사 수렴을 통해 사회적 합의를 이끌기 위해 도입된 제도다. 그런데 사드 배치 과정의 각종 자료는 모두 한·미 2급 비밀로 묶여 있다. 공동실무단 운영결과보고서, 사드 배치 군사적 효용성 근거 자료 등은 확인할 길이 없다. 심지어 사드 소규모 환경영향평가서도 3급 군사비밀 문서로 비공개 사항이다. 이번 전자파, 소음 측정에도 거리 정보 외에는 레이더 출력과 주파수 정보가 공개되지 않았다. 사드 환경영향평가에 대한 주민설명회, 공청회도 없다. 절차적 정당성의 두 번째인 ‘사드 공론화’는 어디에도 없다.

공론화의 공간을 열어야 한다. 어려운가. 그렇다면 차라리 절차적 정당성을 포기하는 게 현명하다. 국방부 장관과 환경부 장관이 협의해 환경영향평가를 생략하는 게 더 낫다. 치욕의 끝을 보는 것보다 사드 환경영향평가를 포기하는 것이, 사드 공론화 방침을 철회하는 것이 덜 비참할 것이다.

윤상훈 | 녹색연합 사무처장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