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몸통시신 사건’ 피의자 ㄱ씨가 지난 17일 새벽 서울 종로경찰서에 자수하기 전 서울경찰청을 먼저 찾아갔던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서울청 야간 당직자는 방문목적을 묻는 질문에 ㄱ씨가 “강력형사에게 얘기하겠다”고 하자, 종로경찰서로 가라고 안내했다고 한다. ㄱ씨가 자수했으니 망정이지, 마음을 바꿔 도주라도 했다면 상황이 지금보다 훨씬 복잡해졌을 가능성이 높다. 이와 같은 경찰의 초기 부실수사 사례는 일일이 열거하기도 어렵다. 전남편 살해·유기 혐의로 구속 기소된 ‘고유정사건’을 수사한 경찰은 실종신고 이틀이 지나서야 단서가 포함된 폐쇄회로(CC)TV 자료를 확보했다. 범행장소 확인이 늦어지면서 현장 보존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고, 부실한 압수수색 때문에 졸피뎀 등 증거물도 현재 남편이 제출해서야 확보..
수사권 조정안이 신속처리법안에 포함되자 검찰이 갑자기 포문을 열었다. 검찰총장은 외국 방문을 취소하고 급히 돌아왔다. 검찰은 문재인 정부 초기부터 진행했던 사법개혁 논의를 정면에서 거부하고 있다. 법무부 장관이 행정안전부 장관과 함께 정부 차원의 논의를 계속했고,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 차원에서의 논의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정부 차원이든 국회 차원이든 검찰이 의견을 개진할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다. 그러니 뜬금없는 반발이다. 법무부 장관과 청와대 민정수석까지 나서서 검찰의 주장을 경청하겠다고 했지만, 반발을 멈추지 않고 있다. 어떤 관료도 이렇게까지 오만한 적은 없었다.반발하는 내용이 뭔지도 잘 모르겠다. 동원인지 자원인지 모르겠지만 검찰 주변 인사들은 언론 기고 등을 통해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등을 거..
경찰이 독립된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려 백남기 농민 사망 사건 등 경찰의 과거 인권 침해 사건을 조사하기로 했다.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경찰개혁위원회가 권고한 것을 이철성 경찰청장이 수용한 결과다. 변화와 개혁의 출발은 자기 반성이다. 경찰개혁 역시 통렬한 반성에서 출발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 경찰의 최우선 과제는 시민과 약자의 인권을 무시하고 부패 권력에 부역했던 과거와의 단절이다. 경찰 과오를 조사하는 진상조사위원회의 생명은 객관성과 독립성이다. 경찰이 진상조사위 위원의 3분의 2 이상을 외부 인사로 충원하고, 조사 대상 사건 선정 권한까지 진상조사위에 일임한 것은 당연하다. 진상조사위는 백남기 농민 사건, 용산참사, 쌍용자동차 파업농성 진압,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운동 진압, 경남 밀양 송전탑 농..
새 정부의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역할을 하는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경찰청 업무보고에서 경찰이 수사권을 가지려면 인권 문제를 개선해야 한다고 밝혔다. 앞서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도 국가인권위원회 위상을 강화하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지시를 발표하면서 검경 수사권 조정의 전제로 ‘인권 친화적인 경찰’을 언급했다. 당연한 주문이다. 무소불위의 검찰 권력을 통제하기 위해 수사권 조정이 논의되고 있지만 ‘검찰 약화 방안’이 곧바로 ‘경찰 강화 방안’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 두 사안은 어디까지나 별개이며, 수사기관 간 ‘밥그릇 싸움’이 아닌 인권 신장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수사권 조정은 경찰의 오랜 숙원이다. 검경 관계가 수직적이다보니 20대 검사에게 아버지뻘인 경찰관이 모욕을 당했다는 얘기도 심심찮게 나온다. 그러..
처음엔 광화문 세종대왕상 앞까지였다. 청와대로부터 1.8㎞. 10월29일의 첫 번째 촛불집회와 11월5일의 2차 촛불집회까지는 그랬다. 매주 광장의 함성이 커질 때마다 시민들은 조금씩 청와대 근처로 갈 수 있었다. 3차 집회는 800m 거리인 내자교차로까지, 4차 집회는 400m, 그리고 지난 주말엔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까지 갈 수 있었다. 청와대 200m 앞까지 진출한 거다. 집회와 시위를 신고하면, 경찰은 금지하고 법원이 조금 더 허용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법원의 행진 허용은 경찰의 금지조치에 빗대면 전향적인 일이지만, 법원도 기본적인 입장은 경찰의 금지와 같은 맥락이다. 다만, 경찰보다는 조금씩 더 허용하겠다는 것뿐이다. 법원이 제시하는 허용의 단서도 웃긴다. 지난번 집회를 보니 질서를 잘 지키..
일요일, ‘작은책’ 사무실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백남기씨가 사망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백남기씨는 지난해 11월14일 민중총궐기대회 도중 경찰이 쏜 물대포를 맞은 뒤 중태에 빠져 316일 동안 의식을 잃고 인공호흡기에 의존해 오고 있었다. 경찰이 서울대병원의 모든 출구를 봉쇄했다는 소식들이 속속 올라오고 있었다. 검찰이 시신을 부검하겠다고 강제로 침탈할지도 모른다는 소식도 올라왔다. 시신을 부검하려는 이유는 뻔하다. 물대포를 맞아서 죽은 게 아니라고 발뺌하려는 거다. 수술할 때 이미 담당 의사들이 외부 충격에 의한 출혈이라고 진술했는데 뭘 부검하겠다는 건지 모르겠다. 아니 수많은 시민이 물대포를 쏘는 장면을 보지 않았는가. 캡사이신을 섞은 물대포를 그렇게 직사했는데 어떤 사람이 버텨내겠는가. 무엇보다 살..
백남기 농민이 세상을 떠났지만 달라진 것은 없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뭐가 잘못된 일인지,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느 것 하나 분명한 게 없다. 국가폭력이 시위진압을 위해 불가피했다는 낯 뜨거운 답변만 현실을 조롱하듯 허공을 맴돌고 있다. 사람이 죽었다고 꼭 사과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경찰청장의 말은 아마 2016 화제의 어록을 장식할 듯하다. 그의 사전에는 경찰이 물대포를 사용할 수 있다는 권한만 있지, 언제 어떤 조건에서 어떤 방법으로 그것을 써야 한다는 규칙은 없는 모양이다. 세상 물정 어두운 교수도 물대포는 사람에게 큰 위해를 줄 수 있기 때문에 그것을 사용하려면 상당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는 것 정도는 안다. 그리고 물대포를 실제 사용할 때는 특별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