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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작은책’ 사무실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백남기씨가 사망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백남기씨는 지난해 11월14일 민중총궐기대회 도중 경찰이 쏜 물대포를 맞은 뒤 중태에 빠져 316일 동안 의식을 잃고 인공호흡기에 의존해 오고 있었다. 경찰이 서울대병원의 모든 출구를 봉쇄했다는 소식들이 속속 올라오고 있었다. 검찰이 시신을 부검하겠다고 강제로 침탈할지도 모른다는 소식도 올라왔다.

시신을 부검하려는 이유는 뻔하다. 물대포를 맞아서 죽은 게 아니라고 발뺌하려는 거다. 수술할 때 이미 담당 의사들이 외부 충격에 의한 출혈이라고 진술했는데 뭘 부검하겠다는 건지 모르겠다.

지난해 11월14일 '민중총궐기 투쟁대회'에서 물대포를 맞고 쓰러진 백남기씨. 공무원U신문

아니 수많은 시민이 물대포를 쏘는 장면을 보지 않았는가. 캡사이신을 섞은 물대포를 그렇게 직사했는데 어떤 사람이 버텨내겠는가. 무엇보다 살인한 자들이 살해당한 사람을 부검하겠다는 게 도대체 말이 되는가.

경찰이 시신을 탈취할 가능성도 있다. 1991년 안양에서 경찰이 영안실 벽을 해머로 부수고 들어가 박창수 열사의 시신을 탈취해 자살로 결정내리고 화장을 해버린 적도 있다. 또 2005년에는 경찰폭력으로 희생된 전용철, 홍덕표 농민에 대해서도 결정적인 증거가 나올 때까지 ‘두 농민의 사인이 직접적인 폭력이 아니라 평소에 앓던 지병 탓’이라고 주장한 적도 있지 않은가. 이번에도 “수백명의 사복형사들을 군사작전 하듯 장례식장에 투입”한 걸 보면 그럴 가능성이 농후하다.

사무실에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조문’하겠다는 사람을 설마 경찰이 막을까 하는 마음으로 서울대병원으로 갔다. ‘우리의 경찰’은 ‘나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세상에 병원 문을 이렇게 틀어막은 정권은 유례가 없었다. 장례식장 앞에도 경찰이 5중, 6중으로 완전히 틀어막고 있었다. 어제 병원으로 들어온 시민들이 안쪽에서 못 나오고 있고, 이쪽에서는 장례식장으로 못 들어가고 있었다. 경찰 너머로 노회찬, 박주민, 표창원 의원이 보인다. 지인을 만나 얘기를 들어보니 지난 24일 오후 9시쯤부터 장례식장 앞에 사복경찰 100여명이 들어왔고, 병원 내부에도 사복경찰 10여명이 들어왔다고 한다.

“조문하겠다는데 왜 막는 거야?” “경찰 물러나라!” 시민들이 항의하면서 경찰과 몸싸움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시민이 한 명 다치고 점점 흥분하기 시작했다. 한 시간가량 몸싸움을 하는데 경찰이 방송을 한다. “경찰 병력을 철수시킬 테니 조문하세요.” 시민들이 소리 질렀다. “니들이 뭔데 조문을 허락하냐?” 경찰이 막고 있던 문에서 물러났다.

나는 시민들과 함께 장례식장 안으로 들어갔다. 벌써 길게 줄이 서 있었다. 한참을 기다려 조문을 했다. 백남기씨는 나하고는 한번도 만나본 분도 아니고 어떠한 인연도 없다.

그런데 푸근한 인상으로 싱긋이 웃고 있는 영정 사진을 보니 울컥했다. 사실 백남기씨는 평범한 농민이 아니었다. 박정희 때부터 민주화운동을 했던 분이다. 1980년 서울의봄 때도 계엄 포고령 위반으로 징역을 살기도 했다. 그 뒤 고향으로 돌아가 가톨릭농민회 전국 부회장도 역임했고 우리밀살리기운동본부 광주 전남본부의 창립을 주도하며, 1994년에 공동의장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박정희, 전두환 때도 치열하게 싸우면서 살았던 분인데, 어떻게 이 정권의 물대포에 허망하게 가실 수가 있단 말인가. 참담했다.

조문을 끝내고 1층으로 내려가 봤다(장례식장은 돈화문 쪽 길에서 보면 3층이다). 학생들, 시민들이 드문드문 복도에 자리를 잡고 있었고, 입구에는 200여명이 모여 집회를 하고 있었다. 주차장과 길 앞에 있는 정문 앞뒤로는 경찰들이 들어오지도 못하고 나가지도 못하게 몇 겹으로 막고 있다.

장례식장에 참석한 세월호 유가족인 유경근씨는 이렇게 말했다. “여기에 추모만 하러 온 것이면 안된다. 추모에만 머물러서는 안된다. … 언제까지 미안하다고만 할 것인가. … 그건 사람이 사는 방식이 아니다. 이제 떳떳하게 살자. 이 자리에 몇 시간 있다 간 걸로 자기 스스로를 합리화하지 말자.”

뜨끔했다. 나한테 하는 소리다. 이제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안건모 | ‘작은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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