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기억 속의 특성화고는 야구 잘하는 학교였다. 청룡기, 봉황대기, 황금사자기 등 봄부터 펼쳐지는 전국 고등학교 야구대회에서 박노준·김건우의 ‘선린상고’, 역전의 명수 ‘군산상고’, 부산·대구·광주의 야구 명문 ‘부산상고’ ‘대구상고’ ‘광주상고’ 등은 주말 TV 스포츠중계에서 자주 보던 전통의 강호였다. 또 하나의 기억은 ‘가난한 집 똑똑한 효자(효녀)’들이 다니던 곳이다. 특성화고는 실력이 높지만 가정 형편 때문에 일찍 생계를 꾸려야 하는 ‘기둥’들의 배움터였다. 실제로 학력이 아닌 실력으로, 졸업장이 아닌 성실함으로 이룬 특성화고 출신들의 성공 신화는 주변에서 자주 볼 수 있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고졸 신화’의 대표 격이다. 11세 때 아버지를 여의고 청계천 무허가 판잣집에서 살..
5월의 마지막 일요일 오후, 지하철 2호선을 탔다. 구의역에 가기 위해서였다. 날씨는 그보다 더 좋을 수 없이 맑았고, 초록 잎들은 빛났다. 이렇게 찬란한 5월에 살아 있었으면 스무 살이 되었을 청년의 1주기라니, 그 역설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구의역 9-4번 승강장 스크린도어는 말끔하게 치워져 있었다. 하루 전날인 27일 추모제가 열렸을 때는 김군을 추모하는 포스트잇이 스크린도어 여기저기에 붙고 바닥에는 흰 국화가 놓였다는데 28일에는 흔적도 없었다. 한적한 휴일 오후이다 보니 10-4번으로 끝나는 역사의 뒤쪽까지 지하철을 타기 위해 오는 승객들도 없어, 9-4번 승강장 앞은 고즈넉했다. 그래도 일부러 9-4번 승강장을 찾아온 사람들은 눈에 띄었다. “1호선을 주로 타고 다니는 중학생”이라고 밝힌 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