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재난도 견디기 어려운데, 그 와중에 터진 반인륜적 범죄가 우리를 충격에 빠트렸다. 감염병 대유행으로 인한 물리적(사회적) 거리 두기로 서로를 고립시키더니 퍼질 대로 퍼져버린 반인권적 범죄가 우리의 정신을 마비시켜 버렸다. 인간의 존엄성을 최고의 가치로 선언한 헌법국가에서 인간 존엄성에 대한 도전이 은밀하게 벌어지고 있었다. ‘조두순’을 넘어 웹하드 카르텔, 버닝썬, 웰컴 투 비디오 그리고 이번 텔레그램 n번방 사건까지 끊이지 않는 추악한 범죄가 이제 음지로 파고들었다. 아동 성폭행범의 대명사 ‘조두순’ 사건이 벌어진 지 1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그 시간에 머물러 있는 느낌이다.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직접적인 성폭행·강제추행이라는 전통적 젠더폭력에서 성착취 영상을 제작·유통·소지하는 새로운 ..
오늘은 오랫동안 미뤄왔던 주제에 대해 도전해 보려 한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 6월 초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은 뇌물과 성접대를 받은 혐의로, 건설업자 윤중천은 강간치상과 사기 등 혐의로 각각 구속 기소되었다. 유력 검사와 건설업자 간의 불법 커넥션, 김학의 이외 고위층 남성들의 리스트를 거머쥔 ‘윤중천 리스트’, 호화 별장과 성접대, 2013년 검찰수사와 재수사에서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 논란, 마약류를 먹인 후 성폭력을 했고 불법촬영으로 협박했다는 증언까지, 이른바 별장 성접대 사건에는 한국 사회의 비리와 음험한 권력의 결탁이 파노라마처럼 담겨 있다. 김학의, 윤중천의 구속 기소는 사건을 공개하고 증언한 피해여성들의 용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런데도 검찰은 두 차례나 증거 불충분으로 무혐의 결정을..
‘버닝썬 게이트’에 대한 경찰 수사가 지지부진하다. 수사에 착수한 지 두 달이 넘었으나, 핵심 의혹에 대해선 별다른 성과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경찰은 조직의 명운을 걸겠다고 여러 차례 다짐했지만 수사 성적표는 초라하다 못해 참담할 지경이다.버닝썬 사태는 당초 김상교씨(28)가 지난해 11월 이 클럽에서 여성을 보호하려다가 클럽 관계자와 경찰에 폭행당했다고 주장하며 촉발됐다. 논란이 커지자 경찰은 지난 1월30일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를 전담수사팀으로 지정하고 150여명의 대규모 인력을 투입해 수사에 나섰다. 사건은 각종 성범죄와 마약, 연예인과 경찰 고위직 간 유착, 탈세 등으로 번지며 게이트급으로 확대됐다. 그러나 수많은 의혹 가운데 어느 정도 수사 성과를 거둔 부분은 전 빅뱅 멤버 승리 등 연예인들의..
버닝썬과 황금폰. 해리슨 포드 주연의 할리우드 액션 어드벤처 영화 제목에 어울릴 것 같은 이 두 단어는 현재 우리 사회 상층부 남성 권력의 정치·젠더 폭력의 실체를 표상하는 기표들이다. 하나는 불타는 청춘의 욕망을 상징하는 클럽의 이름이고, 다른 하나는 뭔가 중대한 내용을 저장한 비밀 휴대폰을 지칭하는 이름이다. 두 기표는 이제 남성 상층부의 가부장 권력을 말할 때, 서로 분리할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가 되었다. 이 관계는 역사와 세대를 거쳐 재생산된다. 권번과 교방에서 요정과 궁정동 안가에 이르기까지, 버닝썬은 역사적으로 재생산된 정치·젠더 폭력 놀이방의 최신 버전이다. 정치·젠더 폭력의 놀이 장소로서 버닝썬은 간판만 다를 뿐이지, 과거 대원각, 궁정동과 동일 업소다. 이 업소에 등장하는 등장인물들도 ..
가수 정준영씨가 불법 촬영한 성관계 동영상을 ‘빅뱅’ 멤버 승리 등이 포함된 카카오톡 단체대화방에 올린 사실이 드러났다. 피해 여성만 10명이 넘는다고 한다. 승리가 사내이사로 있던 ‘클럽 버닝썬’ 내 폭행 사건이 마약류 유통, 약물을 이용한 성폭력, 성매매 알선, 경찰 유착 의혹 등으로 꼬리를 물고 이어지더니 불법 동영상 유포 범죄까지 확인된 것이다. 최악의 막장 드라마가 현실로 옮겨진 듯한 ‘버닝썬 사태’에 시민은 충격과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정씨 등의 ‘단톡방’ 대화를 보면, 동료 연예인들 사이에서 불법촬영물 공유가 일상적으로 이뤄져왔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들이 피해자를 둘러싸고 나눈 대화는 차마 지면에 옮기기 어려울 만큼 혐오스럽다. 자신들의 행위가 범죄임을 인식하고 있었다는 점은 더 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