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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닝썬과 황금폰. 해리슨 포드 주연의 할리우드 액션 어드벤처 영화 제목에 어울릴 것 같은 이 두 단어는 현재 우리 사회 상층부 남성 권력의 정치·젠더 폭력의 실체를 표상하는 기표들이다. 하나는 불타는 청춘의 욕망을 상징하는 클럽의 이름이고, 다른 하나는 뭔가 중대한 내용을 저장한 비밀 휴대폰을 지칭하는 이름이다. 두 기표는 이제 남성 상층부의 가부장 권력을 말할 때, 서로 분리할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가 되었다. 이 관계는 역사와 세대를 거쳐 재생산된다. 권번과 교방에서 요정과 궁정동 안가에 이르기까지, 버닝썬은 역사적으로 재생산된 정치·젠더 폭력 놀이방의 최신 버전이다. 

정치·젠더 폭력의 놀이 장소로서 버닝썬은 간판만 다를 뿐이지, 과거 대원각, 궁정동과 동일 업소다. 이 업소에 등장하는 등장인물들도 유사하다. 버닝썬 사건에 연루된 승리와 정준영, 그리고 그들을 비즈니스로 엮은 이문호 대표, 그들의 불법 영업을 눈감아 준 것으로 의심을 사고 있는 경찰 간부들은 궁정동 안가에 등장한 인물들과 흡사하다. 그리고 장자연 사건에 연루된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과 모 언론사 대표, 그리고 그들에게 원주 별장을 제공하고 집단 성매매를 제공한 윤중천, 그리고 그 사건을 덮은 검찰 수뇌부도 거의 속편의 영화를 찍는 다른 등장인물들이다. 영화 촬영지인 궁정동, 버닝썬, 원주 별장은 장소는 다르지만, 하는 짓은 동일하다. 그리고 그 장소에는 항상 연예인이 등장한다.  

성관계 동영상 불법 촬영·유포 논란을 빚은 가수 정준영(왼쪽)과 성 접대 의혹이 불거진 빅뱅 멤버 승리(본명 이승현)가 14일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지방경찰청으로 출석하고 있다. 이상훈 선임기자

그런데 단 한 가지 차이가 있다면 연예인의 위치이다. 버닝썬사건에서 연예인은 젠더폭력의 가해자로 등장하는 반면, 장자연사건에서 연예인은 피해자, 아니 희생자로 등장한다. 승리와 정준영과 장자연의 차이는 무엇일까? 전자는 남성연예인으로 불법으로 촬영한 성관계 동영상을 불법으로 서로 공유한 자들이고, 후자는 그 남성 젠더폭력의 가장 참혹한 피해자라는 점이다.

황금폰은 여성들에게는 이중 피해의 공간이다. 거꾸로 황금폰은 버닝썬에서 폭력을 행사한 남성연예인의 이중 폭력의 공간이다. 황금폰은 버닝썬의 정치·젠더 폭력의 연장선상에 있는 온라인 커뮤니티 공간이다. 그래서 황금폰은 버닝썬보다 더 심각한 남성 상층부 젠더폭력을 드러낸다. 그것은 이중의 폭력, 이중 착취의 가상공간이자, 권력의 관음증, 타자를 노예화하는 플랫폼이다. 어느 방송사의 예능 프로그램에서 거론되었던, 수많은 여성연예인들의 번호가 저장된, 그리고 그들과 카톡 메신저로만 사용된다는, 황금폰의 정체는 무엇일까? 황금폰의 의혹은 사실로 밝혀졌다. 그것은 불법 촬영한 성관계 동영상을 서로 공유한 남성연예인들의 젠더폭력의 전리품인 것이다. 

버닝썬과 마찬가지로 황금폰 역시 역사적으로 재생산된다. 핫라인, 대포폰, 밀수폰, 묻지마 카드 등이 황금폰의 다른 이름이다. 황금폰과 그 사용법은 연예인만 해당되지 않는다. 그것은 남성 상층부에 속한 정치인, 기업인, 언론인에게도 해당된다. 그들은 황금폰을 가지고 그들만의 비밀스러운 일들을 하고 싶어 한다. 그곳이 대개는 불법적인 행위이지만, 죄책감 없이 그들만의 비밀스러운 사교공간에서 자랑하고 위세를 떤다. 버닝썬사건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들은 불법 행위임을 알면서도 경찰과 검찰 권력을 운운하며 황금폰에서 더 자극적인 콘텐츠들이 유통되길 욕망한다. 그 콘텐츠들이 더 자극적이고 불법적일수록 황금폰의 은밀한 가치는 더 높아진다. 그들은 그렇게 놀기 원하는 자들이다. 버닝썬사건을 한국 아이돌 문화의 위기 혹은 추락의 증거로 한정하는 것은 좁은 시각이다. 

그것은 동료 여성연예인을 바라보는 남성연예인들의 바뀌지 않는 가부장적 젠더폭력이고, 한국 남성 상층부 권력의 젠더 착취의 가학적 증상의 전형이다. 버닝썬에서 황금폰으로 이어지는 젠더폭력의 과정은 단절과 우연이 아닌 연속과 심화의 과정이다. 그것은 미투 운동의 연장에 있으며, 장자연사건의 정치적 스캔들의 연장에 있다. 왜냐하면 버닝썬과 황금폰은 남성 정치·젠더 폭력의 짝패이기 때문이다.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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