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거래’(The Traffic in Women)라는 글이 있다. 제목을 들으면, 인류학자, 젠더이론가인 게일 루빈이 1975년에 쓴 페미니즘의 고전을 먼저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여성을 거래 대상으로 삼는 현실에 대한 분석적 고찰은 루빈보다 훨씬 이전에, 루빈이 참조하는 클로드 레비스트로스보다도 이전에 이미 이루어지고 있었다. 19세기 말부터 1940년 사망할 때까지 북미와 유럽에서 여성운동가이자 무정부주의자로 활동했던 옘마 골드만은 ‘여성의 거래’에서, 여성의 인신매매를 “백인 노예제”라고 부르던 당대 사회비평가들의 피상적인 도덕론에 반박하면서 사회적으로 열등한 여성의 지위, 현저히 열악한 여성 임금과 불안정한 고용조건 등이 여성의 성을 착취하는 거래를 낳는다고 주장했다. 골드만..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을 얻을 수 있지/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으로 살아갈 수 있지”(정호승 시, ‘산산조각’ 중에서). ‘미투’(#MeToo)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1994년 어느 서울대 교수에 대한 조교의 고발이 성희롱을 공론의 의제이자 사법 사안으로 만든 후, 권력관계 내 성폭력에 대한 고발과 성토, 개선책 요구가 지속됐다. 그러나 수없이 많은 직종의 여성들이, 각급 학교의 여학생들이, 다양한 방식의 성폭력에 노출되는 사건들이 반복되었고 폭로도 계속되었다. 2016년 봇물처럼 쏟아졌던 문단, 영화계, 예술계의 성폭력 폭로에 어떤 실효가 있었는지 의심하는 시선도 있었다. 하지만 피해자들의 폭로는 제도권이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에 대한 대안적 접근이자 최후의 수단으로 끈질기게 이어져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