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8월14일,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이었습니다. 27년 전, 고 김학순 할머니께서 강철보다 단단한 벽을 넘어 너무나도 어렵게 그러나 너무나도 당당하게 수많은 기자들이 모인 곳에서 자신의 경험을 밝힌 날이었습니다. 자연스러운 남성의 성욕이자 여성의 숙명으로 여겨져 피해자가 감추어야 할 정조에 관한 죄일 때, 가문의 수치이자 민족의 수치로 손가락질당할 때, 바로 그 일이 가부장제와 식민주의, 군사주의가 공모한 어마어마한 성폭력 범죄행위임을 낱낱이 전 세계에 알린 그날이었습니다. 가족과 공동체, 국가가 모두 외면하던 시절, 피해자가 생존자로 다시 활동가로 거듭나면서 수많은 다른 피해자들의 손을 잡기 시작한 그날, 전 세계를 돌며 ‘거리에서, 강연장에서, 법정에서’ 피해 사실을 알리고 진실을 규명하고자 ..
지난달 나는 4·3 발발 70주년 관련 행사 때문에 제주에 있었다. 공항에서 생활정보지를 집었는데, 어느 시인이 쓴 ‘거리의 복면가왕’이라는 글이 놀라웠다. 올레꾼의 복면(覆面) 복장을 비판하는 글인데, 마지막 부분이다. “스페인에서는 마스크를 쓰면 나병 환자 취급을 한다고 들었다. 오스트리아는 공공장소에서 부르카를 비롯하여 얼굴을 가리는 복장을 법으로 금지한다. 아무리 제 잘난 맛에 산다지만 보는 이들이 혐오감을 느낀다면 삼가는 것이 미덕 아닐까.”(‘교차로’ 6월25일자, 5569호). 일단, 위 내용은 사실이 아니다. 유럽에서 한센병 환자를 경원시하는 문화는 구약성서의 영향 때문이고, 복면 금지는 KKK단처럼 약자를 린치하는 집단을 단속하기 위해서였다. 부르카 금지는 보는 사람의 혐오감 때문이 아니..
오랫동안 감추어졌던 여성에 대한 폭력의 역사가 진실의 햇빛 아래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상처받은 피해자의 목소리가 또 다른 피해자의 목소리와 이어지며 부서지지 않을 것 같던 견고한 장벽을 조금씩 흔들고 있다. 모든 폭력은 가해자와 피해자의 권력 관계에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에 오랜 시간 동안 뿌리내렸던 가부장제와 남성 중심적인 권력구조가 가해자에게 압도적인 권력을 주었고, 피해자인 여성에게는 침묵을 강요해왔다. 지금 드러나는 수많은 폭력이 오랫동안 은폐된 가장 큰 이유다. 같은 이유에서 침묵을 강요당하는 피해자가 여기에도 있다. 한국에 머무는 많은 이주여성이다. 얼마 전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와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에서 실시한 ‘이주여성 농업노동자의 성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중 12.4%가..
# 문단_내_성폭력 1차 파동이 일던 2016년 가을, 한 여성 평론가에게 물었다. “요즘 문단 분위기 어떻습니까?” 매우 신중한 성격인 그녀는 약 5초간 침묵하다가 “문단이란 걸 아예 없애버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답했다. 그녀의 입에서 그런 단호한 말이 나오는 걸 들은 건 처음이었다. 어린 고교생 작가 지망생까지 성폭력의 희생자였음이 드러난 때였다. 문단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없앨 수도 있고 없앨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제도로서의 문단은 등단과 문학상, 문예지와 문학가 단체 등을 아우른 체계를 뜻하고, 비물질적인 측면에서 문단이란 문인들의 네트워크, 또 비평적·예술적 규범과 권위로 이뤄진 무정형의 공동체 같은 것을 뜻한다. 한국에서는 대표적인 문예지를 운영하는 출판사와 그 주변의 작가·비..
성폭력 피해자가 폭로 이후 겪는 과정을 보면 한국 사회의 조직 어디에나 적용할 수 있는 범용의 알고리듬이 있는 것 같다. 피해자의 입을 틀어막는 솔루션이 제공되는 알고리듬 말이다. 피해자가 젊은 여성일 경우, 솔루션은 ‘꽃뱀’이다. ‘꽃뱀’이란 솔루션을 써 먹기엔 피해자가 내성적인 사람이라면, 취할 수 있는 솔루션은 ‘조직생활 부적응자’다. 조직생활 부적응자라고 몰아가기엔 피해자가 평소 활달하고 업무성취도도 높았을 경우라고 해도 답이 없는 것은 아니다. ‘딴 야심이 있어서’거나 ‘인사를 뒤집으려고’ 폭로를 한 교활한 모사꾼으로 피해자에 대한 구설을 만들면 된다. 결정타는 가해자가 청구하는 민형사상의 명예훼손 소송이다. 한국에서 “나도 당했다(Me too)”라고 성폭력 사실을 알리며 가해자를 지목한다는 것..
여성들이 분노를 넘어 행동하기 시작했다. 성폭력 피해를 더 이상 숨길 수 없다는 피해자들의 용기 있는 결단이다. 피해자들이 불이익을 받는 구조적 문제와 사회적 편견을 없애야 한다고, 온·오프라인에서 ‘역대급’ 광풍이 불고 있다. 8년 만에 용기를 낸 서지현 검사의 발언이 여성들에게 힘을 준 결과이다. 서지현 검사의 성폭력 피해 사실이 세상에 나오는 데 8년이란 긴 시간이 걸린 것처럼 성폭력 피해자들이 피해를 말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미국발 미투(#Me Too)는 아니었지만 1983년 여성의전화 핫라인 상담전화를 통해 여성들은 납득할 수 없는 피해, 있어서는 안되는 일에 대해 이미 말하기 시작했다. 1991년 한국성폭력상담소가 개소했을 때 성폭력의 피해를 말하는, 계속 울려대던 전화 소리를 필자는..
대학원 다닐 때 들은 얘기다. 인문대 신임 교수가 술자리에서 성추행하는 장면을 목격한 대학원생들이 그 교수에게 찾아가 다시 이런 일이 발생하면 가만있지 않겠노라 경고했더니 그 다음부터 아예 술자리에 나타나질 않았단다. 그 교수가 누구인지, 그 후로도 문제가 없었는지는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30여년 전 흘려들었던 이 얘기가 여전히 기억에 남아 있음은 교수의 잘못된 행동에 즉각 응분의 조치를 취한 학생들의 행동이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리라. 당시 음대에도 성추행을 일삼는 교수가 있었다. 학생회가 이 문제를 공식 제기했지만 학교는 그를 잠시 해외에 나가있게 하는 걸로 무마했고 얼마 후 그는 다시 복귀했다. 실험실에서 벌어진 교수의 성희롱을 고발한 한 조교의 용기로 대학 내 성희롱 문제가 공론화되기 시작했으나, ..
“너무 무서워서 장독대 뒤에 숨었어요.” 검찰의 성폭력 사건 보도 이후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장면이 있다. 10여년 전, 한 단체가 ‘성폭력 생존자 말하기대회’라는 것을 열었다.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한 여성이 무거운 발걸음으로 앞자리에 섰다. 그녀는 초등학생 시절 동네 아저씨로부터 성폭력을 당했다고 했다. 어린 마음에도 뭔가 대단히 안 좋은 일이고 부모에게도 말하면 야단을 맞을 것 같았다. 너무나 무서웠던 그 어린 소녀는 뒷마당의 장독대로 기어들어가 한참 동안 부들부들 떨었다며 울먹였다. 여기저기 훌쩍이는 소리에 그녀는 자신의 말을 들어줘서 고맙고, 함께 울어줘서 곪은 상처가 일부 치유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검찰의 성폭력 사건을 접하면서 분노가 치밀었지만 다른 한편 착잡했다. 언론이 대대적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