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에서 독거노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보도를 봤다. 서울 장안동의 다가구주택이었다. 주검을 수습할 이들에게 남겼을 것으로 추정되는 쪽지엔 “고맙다. 국밥이라도 한 그릇 하라. 개의치 말고”라 써 있었다. 빈곤의 바닥으로 또 하나의 목숨이 푹 꺼졌다. 그런데 ‘스스로 끊었다’는 말이 오랜 시간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스스로라니. 모순이지 않은가. 목숨은 스스로 끊는 게 아니다. 극단으로 몰린 이들이 어쩔 수 없이 벼랑으로 떨어지는 과정일 뿐이다. 송파 세 모녀도 집단으로 벼랑으로 몰린 예가 아니던가. ‘스스로’라는 말은 그저 남은 자들의 면피처럼 읽혔다. 이들의 죽음이 주목된 이유는 그들이 남긴 짧은 글이었다. 노인은 ‘고맙다’는 말을 남겼고 송파 세 모녀는 ‘정말 죄송합니다’라고 했다. 가느다란 신..
청명한 가을날. 하늘은 높고, 바람은 선선했다. 미안하다며 빨리 공장에 돌아와 함께 일하자는 공장 안 동료들의 응원에 힘을 얻어 시작한다. 세 발 내딛고 한 번 절하는 3보1배다. 쌍용차 평택공장 앞에서 평택 법원까지 매일 아침 9시에 출발한다. 몇 걸음 뗐을 뿐인데 벌써 숨이 차고 온몸이 땀으로 젖는다. 뼈마디가 쑤시고 무릎관절까지 아파온다. 감옥 수발은 물론 가족 생계를 책임져온 해고자 아내들이 현수막을 들고 지친 남편들을 이끌며 앞서나간다. 이렇게 한 시간쯤 절하고 걷노라면 자동차 소음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무아지경에 이른다. 근육과 뼈도 감각이 사라진 듯하다. 2009년 쌍용차 정리해고 발생 6년. 세월이 훌쩍 지났다. 오는 11월 11일은 3000명의 노동자가 정리해고, 계약해지, 징계해고, 희..
“주께서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울지 말라 하시고” 성경 누가복음에 기록된 구절로, 예수가 죽은 아들의 관과 함께 나온 한 과부에게 한 말이다. 예수가 이 죽은 아들을 살려내는 기적을 행한 것으로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한국으로 향하는 전세기에서 가자지구 취재 중 숨진 기자를 위해 기도했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나이트클럽 화재 때는 당시 추기경이었던 교황이 누구보다 먼저 현장을 찾아 직접 구조에 참여하고 희생자 가족들을 위로했다. 교황의 관심은 생명이며 심장이 찢어지는 아픔을 겪는 이들에게 ‘울지 말라’고 하는 것을 사명으로 여긴다. 그래서 세월호의 비극을 뒤로하고 이제는 경제를 살려야 할 때라고 부르짖는 이 어두운 땅에서, 교황의 방한은 더욱 강한 빛으로 다가온다. 차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