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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에서 독거노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보도를 봤다. 서울 장안동의 다가구주택이었다. 주검을 수습할 이들에게 남겼을 것으로 추정되는 쪽지엔 “고맙다. 국밥이라도 한 그릇 하라. 개의치 말고”라 써 있었다. 빈곤의 바닥으로 또 하나의 목숨이 푹 꺼졌다. 그런데 ‘스스로 끊었다’는 말이 오랜 시간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스스로라니. 모순이지 않은가. 목숨은 스스로 끊는 게 아니다. 극단으로 몰린 이들이 어쩔 수 없이 벼랑으로 떨어지는 과정일 뿐이다. 송파 세 모녀도 집단으로 벼랑으로 몰린 예가 아니던가. ‘스스로’라는 말은 그저 남은 자들의 면피처럼 읽혔다. 이들의 죽음이 주목된 이유는 그들이 남긴 짧은 글이었다. 노인은 ‘고맙다’는 말을 남겼고 송파 세 모녀는 ‘정말 죄송합니다’라고 했다. 가느다란 신음 같은 말이다. 무엇이 고맙고 무엇이 죄송하다는 것인가. 질식해가는 이들은 큰소리조차 낼 수 없다. 기절과 탈진을 반복한 이들이 남기는 마지막 말은 그래서 언제나 낮고 가늘다. 말할 힘까지 소진했기 때문이다.
유서가 없었다. 궁금했고 한편으로 화가 났다. 단서라도 남기지 않았을까 싶어 집안 구석구석을 찾아 헤맸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유서는 끝내 발견되지 않았다. 억울하다는 말이 담긴 유서를 흔들어대며 회사 멱살이라도 잡고 싶었지만 그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6년 동안 침묵의 죽음만 이어졌다. 그 숫자가 25로 바뀌었다. 이들은 왜 조용하게 숨졌을까. 난리라도 한번 치고 죽지 왜 그렇게 하나같이 조용하게 죽어갔을까. 궁금함보다 원망스러움이 컸다. 다투고 싸우는 것도 그들에겐 그저 번잡스러움이었을까. 의문이 완전히 가신 건 아니지만 이해는 조금씩 넓어졌다. 체념과 극단의 좌절이 불러온 죽음은 소리가 없다. 뚝뚝 끊기며 가늘게 이어지던 소리는 죽음 주변에 맴돌았다. 그러나 주파수가 달라 우리가 듣지 못한 것이다.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과 가족들이 근로자 지위 확인 가처분소송 판결을 10여일 앞둔 2일 쌍용차 평택공장에서 평택지원까지 3보1배를 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2000일.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이 정리해고에 맞서 싸운 시간. 다가오는 11월11일이다. 까마득한 시간이 하얗게 머리 위에 내려앉았다. 정리해고를 막겠다며 겁 없이 경찰 특공대의 진압을 온몸으로 막아섰던 시간들이다. 한여름 공장 옥상에서 최루액을 몽땅 뒤집어쓰고, 사회적으로 빨갱이라 불렸다. 집 밖 나서기가 두려웠고 이어지는 동료의 부음에 오금 저렸다.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이 한국 사회를 향해 던진 질문에 사회는 응답했다. 정리해고 폐해와 비정규직 남용의 문제가 대선 시기 공약으로까지 밀어올라간 것이다. 사회적 논의는 불이 붙었고 뭐라도 될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러나 또 제자리걸음이었다. 무겁게 밀어올린 돌덩이가 다시 산 아래로 굴러 떨어지는 체념의 반복이었다. 운명으로 받아들이기엔 비탄스럽기만 한 세월이다. 취업의 문은 막혀 있고 해고의 문은 여전히 활짝 열려 있다. 격차는 더욱 벌어졌고 지난 과정의 반면교사들은 등을 돌렸다.
쌍용차 문제는 재난의 문제다. 인간이 만든 해고가 인간 삶을 부수는 인간 재난이 극단의 형태로 드러난 정치적 사건이다. 정치권이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하는 이유다. 그러나 해결 의지는 보이지 않고 여전히 낙인찍기 의도와 편가르기 소재로만 삼고 있다. 화재가 나면 119 소방차가 출동하고 사람들은 길을 열어준다. 불 끄는 것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2000일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길을 열었지만 정작 정치 난전판은 길 한가운데 떡 버티고 서 있었다. 요란하게 울리는 재난 경보음을 정치권만 듣지 않았다. 쌍용차 문제 해결의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정치권의 이 같은 행태는 중단돼야 한다. 소복하게 쌓여만 가는 인고의 시간 앞에 정치가 답을 찾고 해법 마련에 나서야 한다. 소리 없는 죽음이라지만 귀를 열면 들리는 죽음이며 막을 수 있는 죽음이었다. 사건 이후 요란 떨 게 아니라 그들의 가늘고 작은 신음 소리에 주목해야 재난은 방지할 수 있다. 더는 이대로 살 수 없지 않은가. 2000일이 두렵다.
이창근 | 쌍용차 해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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