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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명한 가을날. 하늘은 높고, 바람은 선선했다. 미안하다며 빨리 공장에 돌아와 함께 일하자는 공장 안 동료들의 응원에 힘을 얻어 시작한다. 세 발 내딛고 한 번 절하는 3보1배다. 쌍용차 평택공장 앞에서 평택 법원까지 매일 아침 9시에 출발한다. 몇 걸음 뗐을 뿐인데 벌써 숨이 차고 온몸이 땀으로 젖는다. 뼈마디가 쑤시고 무릎관절까지 아파온다. 감옥 수발은 물론 가족 생계를 책임져온 해고자 아내들이 현수막을 들고 지친 남편들을 이끌며 앞서나간다. 이렇게 한 시간쯤 절하고 걷노라면 자동차 소음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무아지경에 이른다. 근육과 뼈도 감각이 사라진 듯하다.

2009년 쌍용차 정리해고 발생 6년. 세월이 훌쩍 지났다. 오는 11월 11일은 3000명의 노동자가 정리해고, 계약해지, 징계해고, 희망퇴직, 무급휴직이란 이름으로 쫓겨난 지 2000일이 되는 날이다. 작년에 무급휴직자 340여명만 복귀했을 뿐, 해고자는 여전히 거리 위에 있다. 파탄난 가정과 줄 잇는 이혼이 부지기수다. 생때같은 자식들을 뒤로하고, 하루하루 날품팔이 노동시장을 전전하는 동료들. 평택역에 알량하게 써 붙인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고용알선’은 먼 나라 얘기일 뿐이다. 정부 정책이라며 ‘해고자 우선 고용’을 하겠다는 말도 현실에서는 거짓말이 되고 있다.

해고당한 노동자에게 생존권 보호장치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곳이 대한민국이다. 지난 6년 동안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이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쌍용차 해고사태는 대량해고가 노사문제에 그치지 않고, 어떻게 사회적 문제로 악순환되는지를 잘 보여준 대표적 사례다. 좁게는 지역 전체의 고용불안을 부추겼다. 일시에 쏟아져나온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은 기존의 노동시장을 위협했다. 대리기사와 일용직 건설시장이 넘쳤고, 망하는 것을 뻔히 알고도 가게를 열었다. 기존의 고용과 일자리를 위협하거나, 자식뻘인 청년들의 일자리까지 빼앗는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한 것이다.

2일 오전 평택 쌍용자동차 노동조합 해고 조합원들이 근로자 지위확인 소송 가처분 신청 결과를 기다리며 쌍용자동차 평택공장에서 법원 평택지원까지 삼보 일배를 하며 가고 있다. (출처 : 경향DB)


지난 2월7일 서울고법에서 쌍용차 정리해고를 ‘부당해고’로 판시했다. 진실을 향한 몸부림과 노동자 자존심을 건 지난한 5년간 투쟁의 결실이었다. 그러나 회사는 아무런 답변 없이 7개월을 버티고 있다. 지난 5월 쌍용차 해고자들은 근로자 지위보전 가처분 소송을 평택 법원에 냈다. 이제 곧 그 재판 결과가 나온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다. 법원은 부당해고 판결에 따른 해고자 복직 및 후속조치를 회사가 즉시 이행할 수 있도록 강제해야 한다. 그것은 즉각적인 판결임과 동시에 공명정대한 판결이어야 한다. 이 간절한 바람이 매일 3보1배로 법원까지 해고자들과 아내 그리고 노동자, 시민들이 걷고 절하는 이유다.

쌍용차 정리해고는 조작된 회계감사 보고서가 그 밑바탕이었다. 그러나 자본주의 시장질서를 근본적으로 흔들었던 회계법인은 물론 쌍용차와 감독 소홀의 책임이 있는 금감원은 아직까지 어떤 사과도 하지 않고 책임도 지지 않고 있다. 그사이 억울한 노동자들만 죽음으로 내몰리고 있다. 이번 가처분 재판이 상식과 정의를 따를 것으로 믿는다. 그러나 이번 판결 또한 완치가 아닌 상처 치유를 위한 첫출발일 뿐이다. 너무나 억울해 처자식 먹여살리기 위해 “함께 살자” 몸부림친 수백의 노동자가 폭도로 몰려 짧게는 1년, 길게는 3년씩 감옥살이를 해야 했다. 평생 노예처럼 일해도 갚을 수 없는 천문학적 손배, 가압류에 목숨까지 압류 당하고 있는데 승리라는 수사를 어찌 붙일 수 있단 말인가?

우리에게 덧씌워졌던 정리해고는 부당한 천형이었다. 그 운명적 고행의 길을 서로가 부둥켜안고 6년의 시간을 달려왔다. 재판부의 현명한 판결, 진심으로 바란다.


한상균 |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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