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지난해 가을 개봉했던 다큐영화 을 기획할 당시, 난 산후우울증에서 비롯된 우울증상을 장기간 겪고 있었다. 대인기피증으로 외출도 쉽지 않았지만 죽기 살기로 몸을 일으켜 영화 소재를 찾아다녔다. 마침 후배가 일하는 출판사에서 한국전 당시 폴란드로 갔던 북한 전쟁고아들의 행적을 다룬 실화소설을 만났다. 1500명의 한국 고아들을 같은 전쟁의 상처를 지닌 폴란드 교사들이 사랑으로 품은 스토리다. 나는 극중 내레이션에서 이들을 “상처 입은 치유자”라고 표현한다. 교사들의 유년 시절은 참혹했고 6년간 지속된 홀로코스트를 경험했다. 시체 무더기를 밟고 학교에 가야 하고, 포탄 속에 가족이 죽는 모습을 지켜봤다. 이 상처가 매개가 되어 폴란드 교사들은, 한국 고아들에게 자신들을 ‘엄마, 아빠’라고 부르도록..
“빌리 필그림은 시간에서 풀려났다.” 커트 보니것의 소설 의 이야기는 이런 문장으로 시작된다. 어느날 외계인에 의해 납치되어 외계행성 트라팔마도어로 납치된 바 있던 빌리 필그림은 그들로 인해 시간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방법을 터득했다.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이동을 하는 걸 말하는 게 아니다. 과거로부터 미래로 일직선처럼 달려가는 시간 대신 그 시간 전체를 바라보거나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영화로도 만들어진 테드 창의 소설 에서 역시 미래는 과거를 딛고 만들어지는 시간이 아니다. 그것은 과거를 끌어안은 시간이다. 에서는 그 시간의 흐름을 언어의 문제로 변환하기도 한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순차적으로 발생하거나 원인과 결과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당신이 과거를 아는 동시에 미래를 볼 수 있다면, 그리고 그것..
교사이면서 독서운동가로 맹렬하게 활동하던 한 교사가 2월28일 스스로 학교를 떠났습니다. 가정에서 아이들과 함께 독서모임을 가졌던 경험을 정리한 과 가정 독서모임의 경험을 학교 현장에 접목해 실천했던 이야기를 담은 등의 책을 펴낸 바 있는 백화현 교사입니다. 1년만 더 교사로 일하면 명예퇴직의 자격을 얻지만 사태가 너무 엄중하다며 그마저 뿌리치고 서둘러 학교를 떠났습니다. 백 선생은 인간에게 ‘성적’과 ‘돈’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존재함, 그 자체’라고 말해왔습니다. “인간에게 가장 본질적이고 가장 중요한 것은 ‘존재의 소중함’을 깨닫고 인정하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학교 현장에서는 존재의 소중함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자신이라는 존재의 소중함을 모르는 아이들이 타인을 함부로 대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