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도 전에 권리금 5000만원 주고 들어왔어요. 그 돈이라도 받고 나갈지 모르겠어요.” 지난 14일 서울 용산 한강로2가 먹자골목 고깃집 주인 ㄱ씨 목소리에서 느낀 건 ‘체념’이었다. 먹자골목은 공원으로 편입된다. 세입자 보상 기준이 어떨지, 영업보상금이 얼마일지 아직 모른다. “1억~2억원은 나오려나요.” 세상 물정 모르는 질문에 ㄱ씨가 헛헛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 정도라도 나오면) 팔자 고치는 거죠.” 이날은 정부의 9·13 부동산 종합대책 발표 다음날이다. 용산 먹자골목 일대 부동산도 폭등했다. 주상복합아파트 한 채에 수억원씩 올랐다. ㄱ씨에게 폭등이나 대책은 남의 나라 일이다. “있는 사람들하고 우리는 다르죠. 그게 현실이죠.” 계획도 못 세웠다. “(얼마라도 받으면) 그걸 갖고 어떻게 ..
지난달 말 용산참사, 백남기, 쌍용자동차, 밀양, 강정 대책위 관계자 10여명이 한자리에 둘러앉았다. 경찰의 과거사 진상조사위원회 구성을 앞두고 피해 당사자들의 의견을 경청하는 자리였다. 당초 모임 장소는 남영동 경찰인권센터. 하지만 장소는 옮겨졌다. 당사자들이 경찰 근처로 가는 것조차 거부감이 든다고 토로했기 때문이다. 쌍용자동차 노조간부가 입을 열었다. “경찰을 보면 부들부들 떨려요. 보기 싫을 뿐만 아니라 분노마저 치밀어 오릅니다. 2009년 평택공장 점거 파업 때 물과 음식물을 차단하더군요. 대신 2급 발암물질이 섞인 최루액을 뿌리고, 대테러 진압용인 테이저건을 마구 쏘았어요. 그러고선 진압 때 경찰특공대가 사용했던 기중기 수리비 등 16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습니다. 파업에 참가했던 동료와 가족..
정말 읽고 싶지 않았다. 밀쳐냈고, 모른 척했다. 그래도 난 아마 읽게 될 것이다. 책 이야기다. 먼 곳으로 출장을 가기 전, (창비)에 삽화로 참여한 동료가 책을 건네주었다. 책을 손에 쥐었을 때, 딱딱하게 굳어진 내 감정들이 그 순간 파르르 살아나 책을 쥔 손끝으로 향하는 것 같았다. “도저히 못 읽겠네. 울 것 같아요.” 내가 이렇게 말했다. “나도 힘들었어.” 그가 말했다. 감정이 화석이 된, 때론 그 단어만으로 혐오의 대상인 중년 남성들이 눈물이라니. 정신없이 떠돌다, 이제 더 이상 뿌리내릴 곳 없어 겨울가지처럼 말라가는 중년 남성들에게 눈물이 있을 리 있을까? 휴우, 깊은 한숨 내뱉고 감정과 ‘그 책’을 구석으로 밀어놓고 출장을 떠났다. 낮밤이 바뀐 그곳에서 일을 보고 지난 5일 한국으로 돌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