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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도 전에 권리금 5000만원 주고 들어왔어요. 그 돈이라도 받고 나갈지 모르겠어요.” 지난 14일 서울 용산 한강로2가 먹자골목 고깃집 주인 ㄱ씨 목소리에서 느낀 건 ‘체념’이었다. 먹자골목은 공원으로 편입된다. 세입자 보상 기준이 어떨지, 영업보상금이 얼마일지 아직 모른다. “1억~2억원은 나오려나요.” 세상 물정 모르는 질문에 ㄱ씨가 헛헛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 정도라도 나오면) 팔자 고치는 거죠.”

이날은 정부의 9·13 부동산 종합대책 발표 다음날이다. 용산 먹자골목 일대 부동산도 폭등했다. 주상복합아파트 한 채에 수억원씩 올랐다. ㄱ씨에게 폭등이나 대책은 남의 나라 일이다. “있는 사람들하고 우리는 다르죠. 그게 현실이죠.” 계획도 못 세웠다. “(얼마라도 받으면) 그걸 갖고 어떻게 해봐야죠.” 목소리에 한숨이 배어 나온다.

더 이상 물어보기 미안했다. 옆 가게로 가다 6월 붕괴된 건물 펜스에 나붙은 현수막이 눈에 들어왔다. ‘생존권 보장 세입자 보상대책 마련하라! 굶어 죽는다!!!-세입자 대책위원회.’ 현수막 맞은편으로 영어로 쓰인 ‘용산 센트럴파크 해링턴스퀘어’ 간판을 내건 모델하우스가 보였다. 분양가만 최하 16억원(92㎡)에서 최대 23억원(135㎡)가량이다. 

박원순은 7월 “여의도는 맨해튼, 용산은 센트럴파크처럼 돼야 한다”고 했다. 부동산값만 따지면 용산은 미국 뉴욕 맨해튼의 센트럴파크를 실현했다. 해외부동산 사이트를 보면, ‘센트럴 파크 뷰’를 자랑하는 이 지역 아파트나 콘도 한 채 매매가는 90~100㎡에 100만~160만달러(11억~18억원) 선이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8년9월17일 (출처:경향신문DB)

‘한국의 센트럴파크 아파트’는 ‘용산4구역’에 들어선다. 철거민 5명과 경찰관 1명의 목숨을 앗아간 용산참사가 벌어진 곳이다. 14일 참사 현장 남일당 자리엔 업무동 공사가 한창이었다. 참사 분향소도 이 자리에 마련됐다. 2009년 5월5일 종교 담당을 할 때 분향소에서 진행된 ‘길거리 미사’를 취재했다. 신부들이 매일 ‘생명평화미사’를 열었다. 문정현 신부는 이곳에서 먹고 자며 미사를 이끌었다. 그가 미사 뒤 산책이나 하자며 주변 공터로 이끌었다. 문 신부에게 왜 이곳에 있는지 물었다. 그가 주변 빌딩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게 15억, 20억 가는데 여기서 장사하는 사람들이 저길 어떻게 들어가나. 수십년간 이뤄왔던 삶의 공동체를 파괴하는 극소수를 위한 개발 논리가 너무 뼈저리게 느껴졌다.” 문 신부 눈가엔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용산참사는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개발 폭주를 비극으로 보여줬다. 2009년 1월 참사 때 여러 경찰관이 “인화성 위험물질이 있는데 왜 ‘인내대응’을 안 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집회에 부정적인 경찰관이 봐도 진압작전은 위험했다. 경찰청 인권침해 진상조사위는 최근 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참사 원인으로 ‘경찰 지휘부의 안전조치 미비 진압 강행’을 꼽았다. 철거용역들은 이곳에서 철거민에게 폭력을 휘둘렀지만 경찰은 계도 등 미온적인 대응만 했다. 정작 무법을 저지른 자들에게 관대했다. ‘이명박 개발·토건 정권’의 소수 이익을 위해 그 전위대로 나선 경찰이 작동시킨 ‘법과 원칙’이 빚어낸 참사였다.

그 파괴와 논리는 한때 극악한 시절에 관한 옛이야기가 아니다. 곳곳을 폐허로 만들며 그 논리를 강화하고 생명을 위협한다. 6월 용산 먹자골목의 ㄱ씨 가게 옆 건물 붕괴 사고 때도 주변 공사장 발파 공사 이후 건물과 주변 도로에 균열 등 위험 징후가 나왔다. 주민들이 알렸지만, 구청 대책은 ‘안전점검 권고’뿐이었다. 최근 금천구 아파트 인근 오피스텔 공사장 붕괴와 재건축 공사장 옆 상도유치원 붕괴 사고를 보면서 다시 재건축·재개발에서 무력한 생명과 안전 문제를 확인한다.

소수의 이익은 폐허와 추방의 땅 위에서 자라났다. 88명의 고위공직자가 지난 7월 현재 용산·여의도에 공시지가 기준 총 137건 812억원어치의 부동산을 소유한 게 통계로 확인됐다. 종합부동산세 내는 게 언감생심인 사람이 대다수인 사회에서 보수 야당·언론은 27만명의 종부세 대상자의 문제를 ‘국민 의제’로 이어간다. 수억원 뛴 아파트는 ‘호재’로, 그 아파트의 수십 또는 수백만원대 세금 인상은 ‘폭탄’으로 규정한다.

정부 대책은 최근의 광풍을 완전히 잠재우긴 힘들다. 집값을 낮출지도 미지수다. 분양원가 공개나 공시지가 정상화 대책은 빠졌다. 종부세 인상은 개인 아파트에 국한했다. 업무용 빌딩 등은 대상에서 제외했다. 9·13대책이 시작이 아니라 끝이라는 시그널이 나오면 언제고 광풍이 다시 불 것이다.

‘소수’의 불로소득은 계속 ‘우리’의 욕망을 자극한다. 9·13대책 이튿날 몇몇 신문에 나온 부동산 광고 타이틀은 ‘9·13 부동산 규제정책 수혜상품’이다.

<김종목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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