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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말 용산참사, 백남기, 쌍용자동차, 밀양, 강정 대책위 관계자 10여명이 한자리에 둘러앉았다. 경찰의 과거사 진상조사위원회 구성을 앞두고 피해 당사자들의 의견을 경청하는 자리였다. 당초 모임 장소는 남영동 경찰인권센터. 하지만 장소는 옮겨졌다. 당사자들이 경찰 근처로 가는 것조차 거부감이 든다고 토로했기 때문이다.

쌍용자동차 노조간부가 입을 열었다.

“경찰을 보면 부들부들 떨려요. 보기 싫을 뿐만 아니라 분노마저 치밀어 오릅니다. 2009년 평택공장 점거 파업 때 물과 음식물을 차단하더군요. 대신 2급 발암물질이 섞인 최루액을 뿌리고, 대테러 진압용인 테이저건을 마구 쏘았어요. 그러고선 진압 때 경찰특공대가 사용했던 기중기 수리비 등 16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습니다. 파업에 참가했던 동료와 가족 일부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어요. 다수는 그때의 트라우마로 은둔 생활을 하거나 약을 먹지 않으면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합니다.”

옆자리의 용산참사 유가족 한 분과 진상규명 대책위 관계자가 말을 이어받았다. 유가족의 목청은 높고 카랑카랑했지만 떨림을 감출 수 없었다.

“우리는 힘없고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철거민들입니다. 그래도 지나가는 차 한 대, 사람 한 명도 다치게 한 적이 없어요. 그런데 경찰이 우리에게 어떻게 했습니까? 적절한 주거대책을 세워달라는 사람들을 농성한 지 하루도 되지 않아 특공대와 물대포로 무자비하게 진압했습니다. 집회·시위 현장의 법집행 매뉴얼을 하나도 지키지 않았어요. 세입자 5명과 경찰특공대 1명이 죽었는데 재판은 경찰관의 죽음만 다루더군요. 경찰과 철거민, 어느 한쪽에만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런데 판결은 다섯 분의 죽음은 싹 지워버렸고, 그 원통함을 완전히 무시했습니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경찰이 하루아침에 돌변하고선 믿어달라고요? 피가 거꾸로 솟을 뿐입니다.”

제주 강정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하던 한 주민의 얼굴은 이야기를 이어가는 동안 점차 굳어져갔다.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하는 주민대표를 경찰이 연행하자 이웃들이 일하다가 농기구를 들고 이를 막았어요. 그랬더니 국가 전복을 노린다며 경찰청장이 ‘공안사태’를 선포하고 일절 집회를 못하게 하더군요. 주민 2명만 모여도 불법집회라며 마구잡이 연행을 했는데 그게 무려 700여명이나 됐습니다. 구럼비 바위를 화약으로 파괴할 때 주민들이 팔짱을 끼고 인간 사슬을 만들었는데 망치로 팔을 때려 다친 사람이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습니다. 그러고선 주민들을 생떼 쓰는 집단이라고 매도하더군요. 이런 경찰을 어찌 공권력이라 할 수 있겠어요?”

밀양 송전탑 건설을 반대하던 할아버지 한 분은 “억울한 일이 너무 많아 말문이 막힌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 표정엔 슬픔과 절박함과 분노가 가득했다. 다른 주민 한 분이 감정을 억누르며 무겁게 입을 뗐다.

“공권력이 집중적으로 투입되던 2013년에는 약 9개월 동안 무려 연인원 38만명의 경찰이 농성장 아홉 군데에 투입됐습니다. 경찰의 숙식비만 모두 100억원이 들었다고 하더군요. 고령의 할머니, 할아버지 한 명당 30명의 경찰이 붙어 온갖 인권침해를 했어요. 경찰이 너무 무서워 할머니들이 알몸으로 저항하자 할머니들이 모여있던 천막을 칼로 푹푹 찢더군요. 칼날이 오가는 것을 알몸으로 바라보면서 ‘죽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답니다. 그 일을 겪고 할머니들이 정신과 진료를 250회 정도 받았고 항우울제 없이는 생활을 못하는 경우도 많아요.”

이야기를 들으면서 미안함과 부끄러움과 무거운 책임감이 동시에 몰려들었다. 그 깊은 슬픔과 분노를 스치듯 느껴온 무신경함에 대한 자책으로 말을 건네기도 힘들었다. 넬슨 만델라 대통령이 당선된 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진실화해위원회를 운영했다. 극심한 인종차별과 국가범죄를 조사하고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서였다. 이때 인권침해를 당한 희생자들의 증언을 텔레비전을 통해 직접 중계했다. 피해자들이 일차적으로 간절히 원했던 것은 진실을 말할 기회와 그들이 겪은 고통을 누군가 알아주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조만간 경찰의 인권침해 사건에 대한 과거사 진상규명위원회가 발족될 예정이다. 2005년 유엔이 채택한 ‘인권피해자 권리장전’은 진실에 대한 권리, 책임자 처벌을 포함한 정의에 대한 권리, 배상에 대한 권리를 해결원칙으로 정하고 있다. 피해자들의 감정을 이해하고 그 슬픔과 우울증을 치유하는 길은 철저한 진실규명과 그 역사적·사회적 의미를 제대로 자리매김하는 데 있다. 시늉만의 진상규명은 당사자들을 또다시 절망과 고통으로 몰아넣을 수 있다. 제대로 된 진상규명은 인권국가로의 첩경이다.

<문경란 | 인권정책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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