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심판에 임하는 박근혜 대통령 대리인단의 행태가 도를 넘고 있다. 어제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16차 변론에서는 탄핵심판 사건의 주심인 강일원 재판관을 ‘국회 수석대변인’이라고 모독하고, 재판관 기피 신청을 내는 막장극을 벌였다. 강 재판관이 박 대통령에게 불리한 질문 등을 많이 한다는 이유였다. 아무리 탄핵 위기에 몰렸다 해도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재판을 지연시키기 위해 박 대통령에게 불리한 증인들까지 무더기로 신청을 한 장본인은 바로 박 대통령 측이다. 증인들이 나와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을 하고 거짓 가능성이 높은 발언을 하면 재판관이 사실 확인을 위해 물어보는 것은 지당한 일이다. 헌재가 박 대통령 측의 재판관 기피 신청을 각하한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재판을 파행으로 이끌고, 최종 선고에..
박근혜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일정을 늦추기 위해 온갖 꼼수와 억지를 부리고 있지만 헌재는 3월13일 이전 선고 방침을 재확인했다. 법과 원칙에 따른 당연한 판단이다. 헌재는 어제 열린 15차 변론에서 박 대통령 측이 요구한 고영태씨 녹취파일 증거 채택 등을 거부하고, 박 대통령의 최후진술 여부를 22일 전까지 확정하라고 했다. 또 박 대통령이 출석할 경우 재판관이나 국회 소추위원 측이 신문할 수 있고, 박 대통령 출석도 헌재가 정한 날짜에 맞춰야 한다고 밝혔다. 탄핵심판은 박 대통령과 최순실씨가 어떤 관계인가가 핵심인데 고씨 녹취파일은 이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녹취파일에는 오히려 박 대통령이 무능했고 최씨의 국정농단이 비일비재했다는 정황이 생생하게 담겨 박 대통령에게 불리하다. 그런데도 이를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됐다. 79년 만에 처음으로 삼성그룹의 총수가 구속되었다고, ‘삼성 불구속 신화’가 깨졌다고 거의 모든 언론이 보도하고 있다. 물론 합법적으로 구속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하지만 약간 다른 각도에서 역사를 바라보면, 이미 삼성그룹의 회장은 한 차례 권력에 의해 붙잡힌 후 ‘몸값’을 지불하고 풀려난 바 있다. 1961년 5월28일, 일본에서 귀국한 이병철 회장이 박정희 장군을 ‘만났다’는 사건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박정희는 쿠데타에 성공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기업인들을 ‘부정축재자’로 지적하고 체포했다. 그런데 그 시점에 이병철은 일본에 있었고 한 박자 늦게 한국으로 돌아왔다. 감옥에 갈 줄 알았던 그는, 삼성그룹 비서실에 몸담았던 손병두 전 전경련 상근부회..
박근혜·최순실 사태의 근원을 대통령제의 제왕적 권력으로 지목하는 사람들은 권력을 분산하는 개헌을 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이원집정부제와 지방분권형 개헌론이 대표적이다. 특히 지방에서는 중앙정부의 권한을 지방정부로 분산하는 지방분권형 개헌 논의가 활발하다. 지방분권형 개헌이 필요한 이유는 헌법이 지방자치에 걸림돌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방자치를 하자면 권한이 지방정부에 있어야 하는데, 헌법이 사사건건 지방정부의 권한 행사를 막고 있다. 그래서 자치 관련 제반 세력들은 ‘지방분권개헌’ 기치 아래 단결하여 지방정부에 자치입법권, 자치재정권, 자치조직권, 주민자치권, 자치경찰권 등을 부여하도록 헌법이 개정되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교육자치 관련 세력의 지방분권형 개헌 참여는 그다지 활발하지 않은 것으..
지난 주말 서울시청 앞은 태극기를 든 노인들로 가득 찼다. 연단에 오른 이들은 박근혜 대통령은 부당하게 탄핵됐고, 국정농단은 조작된 사건이며, 언론이 거짓 선동했다고 되풀이했다. 국정농단이 아니라 ‘고영태와 그 일당의 금품사기 사건’이라고 했다. 박근혜와 최순실은 사기 피해자라는 것이다. 국회·검찰·언론은 깨부숴야 할 탄핵 3적으로 불렸다. 대형 스피커에서 울리는 ‘탄핵기각’ ‘대한민국 만세’ 구호가 찬바람에 섞여 귓전을 때렸다. ‘계엄령뿐, 군대여 일어나라’는 팻말을 목에 건 노인이 보였다. 지방에서 올라온 관광버스 앞 유리엔 ‘박사모 대구본부 12호차’ ‘박사모 경기 평택지회’라는 표지가 붙어 있었다. 물어봤다. 왜 나왔느냐고. “촛불세력이 대한민국을 공산화하려 한다” “민주노총, 전교조가 나라를 장..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인한 탄핵 정국, 문화계 블랙리스트 등이 사회 현안으로 등장하면서 자주 접하는 단어는 ‘여성혐오’ ‘표현의 자유’ ‘검열’ 등이다. 최근 많은 사람들의 입길에 오른 그림 ‘더러운 잠’이나 DJ DOC의 ‘수취인 분명’도 비슷한 논란 구조를 가졌다. ‘여성혐오 표현’이라는 문제제기에 대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 검열 아니냐?’는 반응이 그것이다. 이런 논란 구조와 논의 방식은 ‘표현의 자유’와 ‘성평등’이라는 가치가 마치 공존 불가능한 이항대립처럼 느끼게 한다. 그리고 누구는 옳고 누구는 틀리다는 결론을 요구한다. 여성혐오라는 문제제기를 곧바로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는 것’으로 연결한다. 이분법적 사고의 결과다. 여성들의 문제제기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 가려서 그른 것은 삭제..
‘국정농단 의혹’을 규명하는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종전 11차례 실시된 특검과는 달랐다. 특검 및 특검보와 파견검사들은 한 몸이 되어 팀플레이를 했다. 주말과 설 연휴를 반납하고 거침없이 달려왔다. 혐의가 있는 자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소환했고, 구속사유가 있는 피의자에 대해서는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증거가 있는 곳은 여지없이 압수수색을 감행했다. 특검이 출범한 이후 구속자는 11명에 이르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과 삼성 사이의 뇌물거래에서 ‘거간꾼’ 노릇을 한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에 관여한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 5명, 비선진료 의혹의 실마리를 풀어줄 박채윤 와이제이콥스메디칼 대표, 이화여대 입학·학사비리에 연루된 김경숙 전 학장 등 4명을 ..
“학자적 양심을 걸고 이번 경제성 분석 결과를 확신합니다.”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9년 경인운하 사업에 대해 비용 대비 편익(B/C) 분석이 기준점인 1을 넘는다고 설명하던 한 국책기관의 연구원이 이렇게 말했다. 기존의 같은 분석에서 1을 밑돌던 사업이 단번에 경제성 있는 사업으로 둔갑했다는 기자들의 질문 공세 끝에 나온 답이었다. 한반도대운하를 공약으로 내건 MB 정부 출범에 토건관료들은 경인운하를 다시 들고 나왔고, 사업타당성을 높이기 위해 국책연구기관들을 압박했다. 이전에도 정부는 B/C 결과가 1에 못미치자, 평가항목을 수정해 재분석을 요구했고, 그래도 경제성이 없다는 결과가 나오자 용역비 지급을 미루기까지 했다. ‘학자적 양심’과 불도저 같은 정부의 밀어붙이기에 2조원 넘는 예산이 투입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