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시작된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과정에서 적잖은 사람들이 배신감을 느꼈다. 분명히 전 국민에게 주겠다고 했는데 세대주만 신청할 수 있다니, 대체 무슨 말인가? 정부는 1인 가구는 40만원, 2인 가구 60만원, 3인 가구 80만원, 4인 이상 가구 100만원으로, 전국 2171만가구의 세대주가 신청하고 받을 수 있도록 긴급재난지원금을 설계했다. 세대주 아닌 세대원들은 지원금을 구경조차 못했다. 세대주는 주거 및 생계를 같이하는 생활단위인 ‘세대’의 대표를 말한다. 1962년 주민등록법과 함께 등장한 세대주는 각종 신고의무 등 행정편의가 목적으로, 실생활에선 거의 유명무실한 존재다. 주민등록표상의 성인 세대원 중 아무나 될 수 있고, 기존 세대주의 동의를 거치면 언제든 세대주 변경이 가능하다. 평소엔 신..
‘거리 두기’의 시대이다. 식당에서 마주 보고 밥을 먹는 것도, 교실에서 선생님과 학생이 소통하는 것도, 동창회나 가족모임도 모두 위험으로 간주된다. 타인의 몸은 그 자체로 하나의 ‘위험’이 되었고, 마스크는 일상의 에티켓이 되었다. ‘뉴노멀’은 사람들 간의 물리적 거리를 요구하며 우리를 점점 멀어지게 하는 듯하다.전염병은 일반적인 질병과는 달리, 내가 감염이 되어 ‘피해자’가 됨과 동시에 다시 타인을 감염시켜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측면에서 특수성을 지니고 있다. 한 통계조사 결과에 따르면, 바이러스가 무서운 이유로 사람들은 ‘내가 감염되어 사회로부터 비난의 대상’이 될지 모른다는 공포를 가장 많이 꼽았다. 혐오스러운 타자와 접촉하는 순간 내가 다시 그 혐오스러운 존재로 탈바꿈되는 공포영화 속의 ‘..
수도권을 중심으로 코로나19 확산세가 가파르다. 신규 확진자가 그제 40명대를 기록한 데 이어 28일엔 79명으로 배 가까이 늘었다. 숫자보다 우려스러운 것은 감염경로가 확인되지 않은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는 점이다. 때를 놓치지 않고 ‘물리적(사회적) 거리 두기’의 수위를 다시 높이는 등 방역의 고삐를 다시 죄어야 한다. 하루 신규 확진자가 70명을 넘은 것은 지난달 5일(81명) 이후 53일 만이다. 4월 말부터 2주간 4%였던 감염경로 미확인 확진자는 최근 2주간 7.6%까지 올라갔다. 방역당국이 지난 6일 ‘생활 속 거리 두기(생활방역)’ 체계로 전환하면서 스스로 밝혔던 ‘일평균 신규 확진자 50명, 감염경로 미확인 사례 5% 이내’ 기준을 넘어섰다. 감염경로를 제때 파악하지 못하면 조용하고 빠른 ..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지난달 8일 이후 49일 만인 27일 다시 40명대로 치솟았다. 온라인쇼핑 사이트인 쿠팡의 경기 부천시 물류센터 관련 확진자가 이날 밤까지 60여명으로 늘어나는 등 확산세가 심상치 않다. 해당 물류센터는 첫 확진자 발생 후 초기 대응이 미흡했고, 평소 노동환경도 감염에 취약해 피해를 키웠다는 내부 증언이 나왔다. 조용하게 진행되던 코로나19 확산이 쿠팡이라는 온상을 만나 폭발한 셈이다. 방역당국은 코로나19 재확산 고리를 신속하게 차단해 추가 확산을 막아야 한다. 쿠팡의 집단감염 사태는 안이한 작업장 관리가 초래한 결과이다. 중앙방역대책본부는 물류센터의 ‘지표 환자’(초발 환자) ㄱ씨가 지난 9일 이태원 클럽 관련 감염지인 부천의 뷔페를 방문한 이후 지난 13일 첫 증상이 나타난..
코로나19 확산으로 두 달 넘게 닫혀 있던 초·중·고교의 교문이 드디어 열린다. 오는 13일 고등학교 3학년을 시작으로, 20일(고2, 중3, 초1~2학년, 유치원), 27일(고1, 중2, 초3~4학년), 다음달 1일(중1, 초5~6학년) 등 4차례에 걸쳐 순차적 등교개학이 진행된다. 6일부터 코로나19 대응체계가 ‘사회적(물리적) 거리 두기’에서 ‘생활 속 거리 두기’로 전환되는 것과 발을 맞춘 조치이다. 등교개학은 당연히 반길 일이지만 바이러스의 불씨가 다시 살아날 수 있는 만큼 경각심을 늦춰서는 안된다. 가장 시급한 것은 역시 빈틈없는 방역태세를 갖추는 일이다. 교내 소독과 위생을 철저히 하는 것은 물론 밀집 공간에 많은 학생이 있는 몰리는 것을 최대한 피해야 한다. 급식환경을 재정비하는 것도 필수..
코로나19 사태 초기만 해도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 겸 중앙방역대책본부장은 건강해 보였다. 그 뒤 정 본부장의 모습은 점차 초췌해졌는데, 외모만 본다면 요 몇 달 사이 10년의 시간이 훌쩍 지나간 듯하다. 그도 그럴 것이, 정 본부장의 일정은 가히 살인적이었다. 아침 7시, 새벽 사이에 발생했던 코로나19 소식을 보고받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해 8시 방역대책본부 회의에 참석하고, 11시에는 확진자 관련 역학조사 결과를 검토한다. 이런 일정은 밤늦게까지 계속되는데, 자정부터 새벽 2시까지 종합보고를 받고 전략 수립을 세우는 게 끝이라는 대목에 이르면 할 말을 잃게 된다. 주 52시간이 의무화된 시대에 하루 14시간씩, 휴일도 없이 일하는 분이 있다니, 아무리 비상시국이라 해도 좀 너무한 게 아닌가 싶다.원래 ..
정부가 ‘사회적(물리적) 거리 두기’ 기간을 5월5일까지 16일간 재연장키로 했다. 대신 종교시설 등 4대 밀집시설에 대한 운영중단 강력권고를 해제하고 자연 휴양림 등 위험도가 낮은 야외 공공시설은 운영을 재개한다. 또 자격시험·채용시험 등은 방역수칙 준수를 조건으로 제한적으로 시행할 수 있도록 했다. 시민의 불편을 해소하면서 방역을 이어가는 ‘완화된 형태의 거리 두기’라 할 수 있다. 정부는 앞서 확진자가 하루 50명 이하이고 감염경로가 불확실한 확진자 비율이 5% 이하로 유지될 경우 ‘고강도 거리 두기’를 완화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다행히 지난 9일 이후 신규 확진자는 50명대 이하로 떨어졌다. 지난 2주간 감염원을 모르는 확진자 비율은 2.1%로 감소했다. 수치상으로 거리 두기의 성과는 분명하다...
코로나19 사태는 시니컬한 유머를 구사한 대문호 커트 보니것의 말을 사실로 입증했다. 그는 “지구의 면역체계는 신종 독감 등으로 우리를 제거하려고 애쓰고 있다네, 지구로선 그 편이 나을 걸세”라 했다. 이토록 미세먼지 없는 청명한 봄이 언제였더라? 출입 통제된 브라질 해변에서 멸종위기 바다거북 97마리가 부화했다. 관광객이 끊기자 베네치아 운하의 물이 투명하게 맑아지더니 급기야 60년 만에 돌고래가 헤엄치는 모습이 포착됐다. 코로나19는 인류에 대한 ‘셀프 디스’를 시전한 ‘자발적 인류멸종운동’을 돌아보게 한다. 사라지기는커녕 발걸음만 줄여도 지구가 깨끗해지는구나. 다시 커트 보니것으로 돌아오자면 원자력과 화석연료로 온갖 열역학 소동을 피우면서 생명이 살 수 있는 하나뿐인 행성을 파괴하는 우리는 정녕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