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사진을 보면 심심찮게 태극기를 발견한다. 광주 금남로 옛 전남도청 옆 상무대에 모셔 놓은 희생자의 관 위에 태극기가 덮여 있는 사진은 충격적이다. 광주시민은 왜 태극기를 들었을까. 먼저 동료 시민과 공동체를 지키기 위한 항쟁이었다. 또 걸핏하면 정적과 시민들을 빨갱이로 몰아붙였던 군사정권에 이용당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시민들의 예상대로 신군부는 고정간첩이 선동하고, 불순분자들이 일으킨 폭동이라고 했다. 하지만 북한의 개입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태극기는 광주시민들이 정체성, 순수성을 드러내기 위한 도구이자 상징이었다. 1987년 6월 항쟁 당시에 인상 깊은 사진도 있다. 대형 태극기를 뒤로 하고 한 사내가 웃통을 벗은 채 양손을 들고 다탄두 최루탄이 쏟아지는 도로를 뛰는 사..
1일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탄핵 찬반 집회가 동시에 열렸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찬성하는 촛불과 탄핵에 반대하는 세력이 태극기를 들고 청와대로 행진했다. 3·1운동은 민족 전체가 계급·지역·이념·종교를 초월해 일으킨 독립운동이었다. 선열들은 한마음으로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며 대동단결했다. 꼭 98년이 지난 지금 서울 도심에선 3·1정신과는 정반대되는 장면이 펼쳐졌다. 안타까운 일이다. 일견 3·1절은 둘로 쪼개진 것처럼 비친다. 하지만 현 시국을 촛불과 태극기 대결 구도로 몰아가는 건 올바른 평가가 아니다. 촛불은 박 대통령과 최순실 일당이 헌법질서를 무너뜨린 데 대한 시민의 분노에서 시작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우리 사회 불평등·불공정·불의에 대한 좌절과 분노를 폭발시킨 기폭제였을 뿐이다..
지난 주말 서울시청 앞은 태극기를 든 노인들로 가득 찼다. 연단에 오른 이들은 박근혜 대통령은 부당하게 탄핵됐고, 국정농단은 조작된 사건이며, 언론이 거짓 선동했다고 되풀이했다. 국정농단이 아니라 ‘고영태와 그 일당의 금품사기 사건’이라고 했다. 박근혜와 최순실은 사기 피해자라는 것이다. 국회·검찰·언론은 깨부숴야 할 탄핵 3적으로 불렸다. 대형 스피커에서 울리는 ‘탄핵기각’ ‘대한민국 만세’ 구호가 찬바람에 섞여 귓전을 때렸다. ‘계엄령뿐, 군대여 일어나라’는 팻말을 목에 건 노인이 보였다. 지방에서 올라온 관광버스 앞 유리엔 ‘박사모 대구본부 12호차’ ‘박사모 경기 평택지회’라는 표지가 붙어 있었다. 물어봤다. 왜 나왔느냐고. “촛불세력이 대한민국을 공산화하려 한다” “민주노총, 전교조가 나라를 장..
국민 반응은 싸늘했다. 엊그제 3·1절에 공공기관이나 주요 도로는 태극기 물결로 넘쳐났다. 하지만 일반 가정집이나 이면도로에선 찾기 힘들었다. 간간이 태극기가 빼곡히 걸린 주택가나 일반도로도 눈에 띄었다. 그런데 이는 하나같이 정부와 지자체가 지정한 태극기 달기 ‘모범거리’나 ‘모범마을’이었다. 집주인이 아니라 구청, 동사무소 직원이 달아준 것이다. 그 외 대부분 가정집과 도로의 태극기 게양률은 10%를 밑돌았다. 국가의 상징 태극기도, 국가 기념일도 갈수록 푸대접 받는 것 같아 안타깝다. 물론 국가 기념일의 저조한 태극기 게양률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기념일에 대한 관심이 부족하고 태극기 달기에 대한 거부감도 상당하기 때문이다. 초·중·고생 10명 중 4명이 3·1절을 잘 모르고, 심지어는 ‘삼점일절..
정부가 대대적으로 ‘전 국민 나라 사랑 태극기 달기 운동’을 벌일 계획이라고 한다. 모든 정부 부처가 참여하고, 전국 지방자치단체는 운동추진단을 구성, 운영토록 했다. 방송과 민간기업, 학생을 동원하고 어린이집과 경로당을 방문해 홍보활동을 편다고 한다. 행정자치부는 민간건물과 아파트 동마다 별도의 태극기 게양대를 설치하도록 하는 내용의 법 개정도 추진 중이다. 광복 70주년을 맞아 태극기 게양률을 높임으로써 애국심을 고양하겠다는 게 운동의 목표다. 그러나 이런 방식의 태극기 달기 운동은 정부가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것인 데다, 국민 정서에도 맞지 않다는 지적이 많다. 자발성이 전제되지 않는 국민 운동은 국가 권력의 강요일 뿐이다. 이렇게 한다고 애국심이 높아질지 의문이 든다. 현행 국기법은 정부가 교육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