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말. 제1야당 원내대표가 대법원장 후보자와 관련해서 국회에서 한 말이다. “후보자는 지난 2012년 국제인권법연구회 회장을 역임하면서 성소수자 인권을 주제로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발제자들이 동성애 차별금지법 제정 등을 요구했다.” 후보자의 적격 여부를 밝히기 위해 근거로 삼은 말인데 여기서 도출한 결론이 이해가 안 된다. 정우택 원내대표에 따르면 ‘그러므로’ 김명수 후보자는 부적격이라는데, 나로서는 성소수자 인권을 주제로 한 학술대회와 대법원장 부적격이라는 말 사이에 놓인 ‘그러므로’를 납득할 수가 없다. 보통의 논쟁에서 추론이 문제 되는 경우는 별로 없다. 근거에서 추론으로 나아가는 과정은 누구나 동의하는 규칙을 따르기 때문이다. 누군가 ‘소크라테스는 인간이다. 그러므로 죽는다’..
또 장애인 수용시설 이야기다. 지난 칼럼에 이어서 또 쓴다. 시설을 또 방문했기 때문이고 거기서 억울한 사람들을 또 보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얼마나 억울하냐면 그들 스스로 억울한 처지에 있다는 것조차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억울하다. 정서적 두려움 때문이든, 지적 역량 때문이든 자신의 처지를 따져볼 조건 자체를 상실한 사람들. 억울해서 울부짖을 수 있다면 그래도 덜 억울한 것이라는 걸 이번에 알게 되었다. 내가 만난 생활인들은 모두 1급장애인이었는데 대부분이 언어와 지체, 지능 등의 중복장애를 안고 있었다. 실태조사를 위해 조금이라도 대화가 가능한 소수의 사람들을 만났다. 대화라고는 했지만 힘겹게 낳은 단어들을 한 개씩 모으고, 손짓과 표정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만 가능한 대화였다. 옆방에서는 몇몇 사람..
2년 전 영국 여왕의 어린시절 영상 하나가 공개되면서 시끄러웠다. 엘리자베스 2세가 어머니, 삼촌, 여동생과 함께 나치식 경례하는 모습을 담은 영상이었다. 당시 엘리자베스의 나이는 일곱살이었다고 한다. 왕실 측은 당시 어린 여왕이 TV에 나오는 동작을 따라하며 놀고 있었을 뿐이라고 했다. 확실히 특정 몸짓을 근거로 해서 일곱살 어린아이에게 나치즘을 추궁하는 것은 과해 보인다. 아마 이 영상을 문제 삼은 이들도 어린 엘리자베스의 사상을 검증하려던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사실 사람들이 의심한 것은 엘리자베스가 아니라 영국 왕실 자체였다. 몇몇 역사학자들에 따르면, 독일계 혈통의 영국 왕가는 독일에 많은 친·인척을 두었는데 그들 중 상당수가 히틀러를 지지했다고 한다. 특히 문제가 된 것은 앞서의 영상에도 등장..
우리는 한·미동맹을 앓고 있다. 말하자면 우리 사회에서 한·미동맹은 병적인 것이다. 나라들끼리 공동의 목적을 위해 함께 행동하는 것은 국제사회의 기본적인 생존 전략이다. 이 점에서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부인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최근 일어난 몇 가지 에피소드들은 한국이 미국의 정상적인 동맹국이 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미국에 무례한 행동을 해서가 아니라 미국에 대한 예를 다하느라 아무런 행동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공동의 목적과 행동이란 저마다의 목적과 행동이 전제된 것인데, 우리는 동맹을 위해 그 전제를 너무 자주 포기한다. 살기 위해 택한 동맹인데 거기에 생존의 멱살이 잡혀 있는 꼴이다. 저쪽은 이익을 고려하는데 이쪽은 생존을 고려한다면 공정하고 호혜적인 동맹은 애초부터 불가능하다. ..
1979년 여름, 아버지는 서울 당숙집 가는 길에 나를 데려갔다. 도회지라고는 장날 읍내 몇 번 가본 게 전부였던 내게 서울여행은 지금의 외국여행 못지않았다. 버스를 몇 번이나 갈아타고 온종일 달려 도착한 서울. 이튿날 나는 아침을 먹자마자 무작정 집 밖으로 나왔다. 근처 당고모집에 내 또래의 친척 형제들이 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주소도, 전화번호도 몰랐다. 그런데도 어떻게 혼자서 집을 나서려 했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아랫마을 살던 친구집을 찾을 때처럼 쉽게 생각했던 모양이다. 한참을 걸었다. 언제부턴가는 어디를 간다는 생각도 잊은 채 돌아다녔다. 그렇게 몇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배고픔을 느끼고는 집을 향해 걸었다. 신통하게도 길을 잃지는 않았다. 물론 난리가 났다. 모두가 사방으로 나를 찾아다녔..
몇 년 전 외국 활동가들에게 한국 민주화 운동의 역사를 소개할 일이 있었다. 강연을 준비하면서 여러 영상자료들을 연표 순으로 정리해서 보았다. 그야말로 사람을 울컥하게 만드는 사건들의 연속이었다. 그런데 문득 역사 속 우리의 희망과 절망이 참으로 섣부른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세의 부침 속에서 정세보다 크게 들뜨고 정세보다 빨리 좌절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물론 역사의 연표를 쥔 후세의 사람이 역사적 사건 속에서 절규하는 사람의 태도를 평가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1980년 ‘오월 광주’를 아는 눈으로 그 몇 달 전 ‘서울의 봄’에 대한 기대로 들뜬 사람들을 보는 것은 괴롭지만 그렇다고 미래에 대한 그들의 무지를 탓할 수는 없다. 앞으로 일어날 일을 이미 일어난 일로 볼 수 있는 존재는 신이거..
내 친구 피터, 그는 목소리가 정말 컸다. 말하는 게 사자후를 토하는 듯했다. 은유 작가는 그를 두고 ‘아이를 낳듯’ 말한다고 했는데 정말 그랬다. 그가 온몸을 비틀어 내보내는 말들은 울음을 터뜨리며 세상에 나오는 아이들 같았다. 그 목소리는 노들야학 첫 수업 때 분위기에 눌려 백기투항 직전에 있던 나를 살려준 지원군이기도 했다. ‘야, 이거 골 때리네!’ 그가 간간이 넣어주던 추임새가 내게는 참으로 고마운 환영사였다. 내 친구 피터, 그가 제일 힘들어 한 과목은 한글이었다. 복지관에서 시작해 20년을 배웠다는데 여전히 글 읽는 것이 신통치 않았다. 낱글자는 소리내서 읽을 수 있는데, 단어가 되고 구절이 되면 처음 읽은 글자들이 궁둥이를 슬슬 빼기 시작하고, 문장 끝에 이르면 앞서 읽어둔 단어와 구절들이..
- 3월 13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견유주의자 디오게네스는 왕관을 쓴 왕을 허깨비 왕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알렉산더 왕 앞에서도 당당할 수 있었다. 그는 모든 걸 들어주겠다는 왕에게 그냥 비켜서라고 했다. 햇볕! 그는 원하는 것을 이미 누리고 있었다. 왕이란 기껏해야 우리에게 그늘을 드리우는 존재가 아니던가. 왕궁과 군대를 빼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 존재, 왕관을 벗겨놓으면 왕이었다는 사실조차 믿기지 않는 존재가 누구를 구원한단 말인가. 왕관 하나를 차지하려고 온갖 음모를 꾸몄고 그걸 빼앗길까 전전긍긍하는 존재, 이미 그것으로 충분히 병든 존재가 누구를 치유한단 말인가. 그래서 디오게네스는 알렉산더를 ‘아틀리오스의 아들 아틀리오스’라고 불렀다. 아버지인 필리포스 왕이나 그 자식인 알렉산더나 똑같이 가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