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호주 출신의 한 백인 남성이 뉴질랜드의 이슬람 사원에 총격을 가해 50명을 살해하고 그 장면을 소셜미디어를 통해 중계했다. 말 그대로 ‘테러 라이브’였다. 사냥을 하듯 혹은 게임을 하듯 그는 사람들을 죽였다. 무려 74쪽 이르는 선언문도 내보냈다. 선언문에서 그는 무고한 아이들까지 죽이는 이유도 적었다. 이 아이들이 자라면 백인 아이들의 자리를 다 차지할 테니 후손들을 위해 미래의 적을 미리 제거해야 한다는 것이다.도무지 행동이나 말이 제정신을 가진 사람의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변호인에 따르면 그는 침착하고 심지어 ‘상당히 명쾌해’ 보인다고 한다. 며칠 전에는 이 변호인조차 필요 없다며 해임시켰다. 법정에서 직접 신념을 설파할 모양이다. 뉴질랜드 정부에서는 당연히 이 연설을 세상에 ..
‘여기 사람이 있다.’ 이 말은 정확히 십년 전 서울 한복판에서 일어난 참혹한 사건의 이름표다. 용산참사. 이 네 글자를 보거나 들으면 내게는 자동으로 한 남자가 떠오른다. 그는 불타는 망루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다 펄쩍펄쩍 뛰었고 다시 난간을 손바닥으로 치다가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더니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는 주저앉았다. 이제껏 나는 그렇게 슬픈 몸짓을 본 적이 없다.“여기 사람이 있어요.” 사람을 본 그 사람이 그렇게 말했다. 시민도 아니고, 식당 주인도 아니고, 철거민도 아니고, 시위대도 아닌, 맨손, 맨얼굴 같은 ‘맨사람’ 말이다. 모든 것을 잃었을 때 사람에게는 ‘사람’이라는 원초적 사실 하나만 남는다. 아무런 울타리나 보호막이 없을 때, 소위 인권 상황에 처했을 때, 사람은 맨사람으로 드러..
노들장애인야학에서 공부하는 내게는 열두 친구가 있다. 1월의 명학은 며칠 전 노들에서 환갑잔치를 열었다. 학교에는 가 본 적 없지만 올해로 25년이 된 노들을 25년간 다녔다. 노들과 연을 맺은 수백 명의 사람들이 챙겨간 것은 한 조각의 시간이지만 그에게는 온전한 시간이 남아 있다. 그래서인지 노들의 깃발도 언제나 그의 품으로만 파고든다. 지금도 사람들은 거리에서 노들을 찾을 때마다 깃발의 둥지인 그를 찾는다. 노들에서 공부해서 좋고, 밥 먹어서 좋고, 투쟁해서 좋다는 이 사람은 언제나 자기를 이렇게 소개한다. “김명학, 노들에서 함께하고 있습니다.” 2월의 경남은 지적장애인이다. 복도 벽을 타고 오는 노랫소리가 언제나 그녀보다 조금 일찍 등교한다. 행사 때 음악이 나오면 그녀는 친구를 맞이하듯 뛰쳐나가..
한 달 전쯤 동네 사는 친구에게 문자를 받았다. 동네 외곽에 작고 낡은 교회가 있는데 강아지 한 마리가 방치된 채 학대받고 있다고 했다. 나중에 전해 들은 사정은 더 끔찍했다. 거기 개집은 피자배달통에 구멍을 뚫어 만든 것이었는데 전혀 청소를 하지 않아 분변이 가득했다고 한다. 목줄이 짧아 강아지는 별수 없이 그 분변에 파묻혀 지냈다. 게다가 줄이 조금만 꼬이면 추운 겨울밤을 바깥에서 보내야 했고. 너무 안쓰러웠던 친구는 먹을 것과 핫팩을 넣어주었고, 동사무소를 통해 주인에게 보살핌을 부탁하는 말도 전했다. 친구는 한국의 법도 모르고 한국말에도 부담을 느낀 외국인이었지만 어떻게든 강아지를 살려보려고 했다. 그러나 며칠 후 울먹이며 말했다. 강아지가 죽었다고. 강아지가 보이지 않아 개집에 손을 넣었는데 싸..
3999일. 어떤 날을 거기까지 세어 본 사람이 얼마나 될까. 최강 한파가 덮친 지난 금요일, 세종로공원 한편에 세워진 작은 텐트를 찾았다. 기타 생산업체인 콜트콜텍 노동자들의 농성장이다. 4000일, 예정된 특별한 행사는 없다고 했다. “해탈한 것 같아요. 4000일이라고 뭔가 요란스레 할 것도 없고.” 그리고는 언제부턴가 시작한 월요일, 화요일, 수요일, 목요일, 금요일의 해야 할 일을 할 뿐이라고 했다. 나오는 길에 책 한 권을 받았다. . 임재춘씨의 농성일기를 묶어 펴낸 것이다. 집에 돌아와 한쪽한쪽, 그러니까 이들의 하루하루를 읽어가며, 나는 억울했던 날, 희망찼던 날, 정의를 울부짖던 날을 보았다. 그러다 책 제목을 다시 보고 알았다. 3999일이라는 긴 시간에도 가질 수 없었던 날이 있었음을..
동정하는 자가 동정받는 자의 무례에 분노할 때가 있다. 기껏 마음을 내어 돈과 선물을 보냈더니 그걸 받는 쪽에서 기쁜 내색을 하지 않는다고 하자. 돈이랑 선물은 매번 챙겨가면서도 감사의 표시가 없다면, 주는 쪽에서는 꽤나 서운할 것이고 그 서운함은 언젠가 분노로 돌변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매년 이맘때쯤 많은 시설들에서는 후원자들의 방문일에 맞춰 대청소를 하고 며칠간 공연을 준비하고, 후원자들을 향해 활짝 웃는 연습을 한다. 그리고 후원자들에게 감사의 편지도 쓴다. 그것은 후원자에 대한 고마움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가 가질지도 모를 서운함과 분노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배은망덕한 이들에 대한 자선가의 분노에는 따져볼 것이 있다.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한 번 생각해보자. 자선가는 하고 싶은 일을 ..
한국도 지진으로 흔들리는 나라가 되었다. 건물 외벽이 쏟아져내렸고 아파트는 한쪽으로 기울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사망자가 나오지 않은 것이다. 포항의 많은 사람들이 기울어진 아파트의 각도만큼이나 아슬아슬하게 목숨을 건졌다. 조금만 더 흔들렸다면, 아, 상상하고 싶지도 않다. 이제 집도 학교도 다시 지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다르게 지어야 한다. 한 번 일어난 것은 두 번 일어나고, 작게 일어난 것은 크게도 일어나기 때문이다. 건물도 건물이지만 금이 간 마음을 치유하는 데 많은 시간이 들 것이다. 이제 마음도 집을 잃어버렸다. 마음을 다시 지을 수 있을까. 건물은 지진을 반영해서 달리 설계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가 마음의 골조를 달리 세울 수 있을까. 거대한 재앙은 사람들의 생각을 크게 바꾸어놓..
말하는 침팬지 부이(Booee). 그는 1967년에 태어났다. 부이의 엄마는 미국 국립보건원의 실험용 침팬지였다. 거기서 태어난 부이는 잦은 발작 때문에 뇌절제술을 받았다. 예후가 좋지 않아 고생을 많이 했던 모양이다. 그를 가엾게 여긴 의사 한 사람이 몰래 데리고 나와 집에서 3년을 돌보았다. 그러고는 오클라호마에 있는 영장류 연구소로 보냈다. 부이는 거기서 젊은 연구자 로저 파우츠를 만났다. 파우츠는 영장류의 언어습득에 대해 연구하던 중이었다. 부이는 파우츠에게 수화를 배웠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문장을 구사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파우츠는 논문을 쓴 후 다른 곳으로 떠났다. 그가 떠난 후 연구소는 부이를 뉴욕의 영장류 연구소에 팔아넘겼다. 그런데 이 연구소는 의약품을 개발하는 곳이었다. 부이는 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