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현인을 통틀어 여성을 시중들게 한 게 아니라 제자로 삼은 사람은 예수가 유일했다. 예수의 여성 제자들은 여러 면에서 남성 제자들을 압도했다. 최후까지 예수와 함께한 것도 여성 제자들이었다. 예수가 체포되자 남성 제자들은 모두 배신하거나 도망쳐버렸다. 그러나 여성 제자들은 정치적 반란범의 동조자로 몰려 죽을 위험에도 불구하고 예수가 십자가 위에서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떠나지 않는다. 그것은 단지 그들이 더 충직했기 때문이 아니라, 예수의 생각을 더 잘 이해했기 때문이다.(남성 제자들이 배신하거나 도망친 주요한 이유 역시 예수의 생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예수의 무덤에서 주검이 사라진 걸 발견한 것도 여성 제자들이었고, 부활한 예수가 처음 만난 사람들도 여성 제자들이다. 복음서에는 ..
2012년 어린이날, 고래가 그랬어는 경향신문과 함께 ‘아이를 살리는 7가지 약속’이라는 서명운동을 시작했다. 그중 4번 항목은 ‘아이와 노동자가 행복해야 좋은 세상입니다’였다. 아이들의 미래와 관련하여 분명한 것 하나는 대부분 노동자로 살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생산직이든 사무직이든,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그래서 노동자의 현실은 아이의 미래다. 아이의 얼굴에 웃음이 있는 사회는 노동자가 살 만한 사회이기도 하다. 노동자의 삶이 불안정한데 아이들의 얼굴에 웃음이 있는 사회는 없다. 그러나 그 항목은 경향신문 지면에 실릴 때 ‘남의 아이 행복이 내 아이 행복이다’라는 다소 모호한 말로 바뀌었다. 아이들 관련 캠페인에 노동자가 들어갈 때 독자의 거부감이 예상된다는 이유에서 수정 요..
빌어먹을, 또.’ 옥시(옥시레킷벤키저)가 사람이 죽어나간 게 자사의 가습기 소독제 때문이 아니라 봄철 황사 때문이라는 의견서를 검찰에 제출했다는 기사를 읽다가 훅 한숨이 나왔다. “김앤장의 자문을 받아”라고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몇해 전 일이 떠올랐다. 낯모르는 고등학교 후배 몇이 불쑥 찾아왔다. 유유상종이라, 차례로 자기 소개를 하는데, 다들 주류 사회에서 행세하는 직업을 가진 친구들이었다. 그런데 그중 한 친구가 죄라도 지은 듯, 명함을 건네며 유난히 겸연쩍어했다. 김앤장 변호사였다. 어디서고 대접받는 게 습관이 되었을 텐데, 다른 생각 하는 선배 앞이라고 그러는 게 밉지 않아서 “밥벌이가 거기서 거기지 뭘 그래” 하고 말았다. 오버였다. 거기서 거기가 아닌 밥벌이, 끔찍한 밥벌이가 있다. 세상이 ..
신입생 정원을 못 채우는 대안학교가 꽤 늘고 있다고 한다. 고생 고생해서 대학을 나와 봐야 살기 막막한 현실이니 지금이야말로 제도학교보다 대안학교가 더 빛을 볼 때지 싶기도 한데 왜일까. 이유는 간명하다. 대안학교에 대안이 없다고들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안학교는 제도 학교가 제대로 된 교육을 하기 어렵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대안학교는 새로운 교육을, 대안적 삶의 모델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하진 못했다. 거기에 경쟁 교육 현실로 인한 부모의 불안감이 운영을 압박하면서 대안학교의 정체성은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대안학교가 다 같진 않지만, 대안학교를 선택 가능한 교육상품의 하나로 보는 시류 속에서 부모들의 호감이 전보다 덜한 건 도리 없는 일인 듯하다. 대안은 언제나 기존 체제의 부정에서 출발한다...
흔히 미국은 좌파가 없는 사회, 대표적인 보수 양당제 사회라 불린다. 그러나 미국도 한때는 노동운동을 비롯, 좌파 세력이 꽤 활발했다. 유럽 같은 사민주의 사회로 진전할 여지가 있었던 셈이다. 미국 좌파는 선거에서 ‘현실적 선택’을 거듭하면서 민주당에 흡수되고 괴멸했다. 그리고 우리가 아는 미국, 극우적 보수와 리버럴이 바통 터치하듯 정권을 주고받으며 미국식 자본주의를 수호하는, 다수의 삶에선 어느 정권이든 근본적으로 다를 게 없는 사회가 되었다. 버니 샌더스의 선전은 그 공고한 체제에 균열을 만들어내고 있다. 샌더스 선전은 단지 민주당 내의 이변이 아니라 보수 양당체제의 이변이다. 민주당 경선에 나섰지만, 샌더스는 이념과 정책 면에서 민주당을 뛰어넘는 좌파 정당 후보와 다름없다. 미국 보수 양당체제를 ..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본격화한 건 1991년 김학순 할머니(1924~1997)의 증언부터다. 그러나 위안부 문제의 첫 증언자는 김 할머니가 아니라 오키나와에 살던 배봉기 할머니(1914~1991)다. 배 할머니는 김 할머니보다 16년 먼저인 1975년 자신이 일본군 위안부였음을 언론에 밝힌다. 가난한 농부의 딸로 태어난 그는 7살 때 식모로 팔려간다. 첫 결혼에 실패하고 조선 각지와 만주 등을 떠돌던 그는 29살이 되던 1943년 “일을 하지 않고도 돈을 벌 수가 있다. 누워만 있어도 입으로 바나나가 떨어지는 곳에 간다”는 위안부 모집 업자의 꾐에 위안부가 된다. ‘전쟁터에서의 일이 부끄러워’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고 조선말마저 잊은 채 살아가던 그가 증언을 결심한 이유는 일본에서 계속 살기 위해서였다(1..
헬조선, 흙수저(수저론) 등은 매우 급진적인 언어다. 한국이 봉건적 지옥이자 계급을 넘어 신분이 고착된 사회라는 뜻이니 말이다.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급진적이었다는 80년대에도 그만 한 말은 드물었다. 이상한 일은 그 급진적 언어들을 우익 언론에서도 반감을 보이지 않고 동조한다는 것이다. 인정할 만한 사실이기 때문일까. 만일 한국 우익 언론이 그런 곳들이었다면 이미 존중받았을 것이다. 이유는 그 언어들이 매우 급진적이지만 전혀 불온하진 않기 때문이다. 아직은 연대가 아니라 각자도생, 저항이 아니라 신세 한탄에 머물기 때문이다. ‘노력을 안 한다’고 호통치고 ‘청춘은 원래 아픈 거’라고 설레발치는 자칭 멘토들 앞에서, 청년들이 반성과 깨달음의 눈물을 흘리고, 없는 형편에 그들의 책까지 팔아주던 기막힌 풍경..
지난 9월 시립미술관 남서울관에서 ‘공허한 제국’이라는 이름의 아트페어 전시가 열렸다. 개관 며칠 후 홍성담 작가의 작품 ‘김기종의 칼질’이 주최 측에 의해 철거되었다. 전시 총감독 홍경한씨는 “참여작가들과 작품들을 문제화되고 있는 작품 한 점으로부터 보호해야겠다는 생각에서 철거를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해당 작품이 전시에 참여한 정황으로 볼 때 설명은 석연치 않았다. 홍성담 작가는 지난해 광주비엔날레에서 ‘세월오월호’ 사건으로 곤욕을 치른 경험도 있고 해서 애초 참여 요청을 고사했지만 홍경한씨의 설득으로 참여했던 것이다. 광주비엔날레 때는 작품의 참여 여부를 놓고 말썽이 난 데 반해 이번엔 기획자가 작품을 확인한 상태이기도 했다. 그런데 논란의 기미가 보이자마자 주최 측에서 작품을 자진 철거해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