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사람을 평가하는 건 결코 좋은 일이 아니다. 사람이란 근본적으로 편견과 주관성을 극복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며, 스스로 사유하려 하기보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에 기대는 속성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사람으로 산다는 건 끊임없이 누군가를 판단해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결국 사람이 할 수 있는 최선은 그런 한계와 모순을 최소화하는 일이다. 판단해야 하는 대상의 개인적 인격과 사회적 활동을 나누어 보는 건 그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좋은 사람이지만 일을 잘하는 사람은 아니지.” “그는 예술가로선 훌륭하지만 애인으로선 빵점이라 생각해.” 식으로 말이다. 대개의 사람들은 그런 말에 대해 ‘이중적’이라 항의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공적 위치에 있는 사람이 대상이라면..
▲ ‘껍데기’에만 매달려 떠드는 ‘아저씨’들 소리에 잠식된 사회 누가 어떻게 ‘구원’할 수 있을까 누구나 특별히 불쾌감을 느끼거나 거부감이 드는 소리가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내 경우엔 ‘아저씨들 떠들어대는 소리’다. 아저씨들이 모이는 곳엔 되도록 가지 않으려 할 만큼 난 그 소리를 싫어한다. 동무들과 식당이나 술집을 고를 때 나에게 가장 중요한 건 그 소리, 혹은 그 소리의 가능성 여부다. 그게 확인되면 제아무리 마음에 드는 게 많은 곳이라도 지체 없이 다른 곳을 찾는다. 아저씨들 떠들어대는 소리엔 개인이 뭉개진 집단, 수구 반동적 세계관, 권위와 아집, 애초에 있긴 했었나 싶은 윤리적 불감 등 인간이 만들어낼 수 있는 온갖 악취들이 원액으로 담겨져 있다. 아저씨는 ‘나에 대해’ 생각하거나 말할 줄 모..
▲ 쓸모만 강조하고 도구로 삼는 일 예술을 얼마나 황폐하게 만드는지 그 어느 때보다 생생히 목도한다 예나 지금이나 하드록을 주된 취향으로 클래식, 재즈, 국악 따위를 가리지 않고 듣는 편이지만 현대음악은 가까이한 적이 거의 없었다. 최근 테리 라일리, 스티브 라이히, 필립 글래스 같은 미니멀 음악이나 올리비에 메시앙, 리게티, 크세나키스 등이 음악 듣기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된 건 그런 나로선 이례적인 일이다. 나는 ‘좋은 글은 불편하다’라는 명제를 글의 가치에 대한 지표로 삼아왔다. 이 사악하고 기만적인 세계에서 불편함조차 없는 글이란, 체제를 미화하고 타성에 젖은 삶을 위무하는 아편일 뿐이다. 그런 생각이 어느 순간 음악 쪽에 이어졌고 조화로운 조성에 대한 회의와 함께 현대음악의 불편함에 대한 자발적 ..
▲ “잊혀져 가는 세월호의 슬픔과 분노 ‘아이들의 지옥’을 바꿔달라는 당부는 잊지 말아야 한다” 보름 후면 세월호 사건이 일어난 지 한 해가 된다. 여전히 제대로 된 진실 규명 작업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세월호 사건 1심 재판부는 “복원력이 매우 안 좋은 배에 지나치게 많은 화물을 부실하게 실었는데, 사고 당일 변침을 시도하던 과정에서 조타 실수가 있었다”고 침몰 원인을 정리하지만 누구도 그게 침몰 원인의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정확한 사고 원인을 밝히려면 ‘세월호’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인양 작업은 미루어지고 있다. 인양 작업을 미루는 힘과 사고 원인을 은폐하려는 힘은 같다.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의 업무와 기능을 무력화하려는 힘도 마찬가지다. 나름의 분야에서 이런 사고가 다시..
▲ ‘제국의 위안부’ 토론과 논쟁 사이 맥락 생략된 텍스트 읽기 애석 상징체계가 주입한 습관 깼으면 박유하의 를 둘러싼 토론과 논쟁에서 ‘텍스트는 컨텍스트(맥락)와 함께 읽어야 한다’는 텍스트 읽기의 기본 원칙을 지키는 사람이 좀처럼 보이지 않는 건 애석한 일이다. 맥락이 생략된 텍스트 읽기는 오독이나 악의적 왜곡에 이용된다. 특히 이 책처럼 민감한 사회적 주제를 담은 텍스트인 경우, 논쟁은 주제와 관련하여 이미 사회적으로 형성되어 있는 문화적 상징체계에 포획되어 버린다. 다들 진지하고 열띤 얼굴로 견해를 말하지만 실은 그 상징체계가 주입한 이런저런 주문을 암송할 뿐이다. 눈곱만큼이라도 유의미한 논쟁이 되려면 상징체계를 박차고 나가, 비로소 내 견해를 말하기 시작해야 한다. 그것은 그 주제에 대한 나의 ..
▲ 파렴치한·철딱서니들이 멘토로 군림 청년 앞엔 비정규직·알바만 기다려 지금의 시대는 처절한 계급시대 지난 몇 해 동안 한국에서 발간된 책 가운데 가장 파렴치한 책을 꼽는다면 단연 일 것이다. ‘청년의 지옥’이라 불리는 사회에서 기성세대의 한 사람이 청년에게 할 첫 번째 말은 ‘미안하다’여야 한다. 좀 더 사리분별이 있는 사람이라면 ‘현실을 바꾸자, 나도 함께하겠다’여야 한다. 그런데 아프니까 청춘이라니. 게다가 저자 김난도는 이른바 소비 트렌드의 권위자로서 매년 ‘트렌드 코리아’라는 책을 내는 사람이고 고급호텔에 사장들을 모아놓고 올해의 장사거리에 관한 세미나와 특강을 하는 사람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런 행태 자체를 비난할 건 없겠지만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 동시에 소비는커녕 생존 자체가 암담한 청..
(What Would You Do?)라는 미국식 몰래카메라 프로그램이 있다. 이따금 페이스북에 떠서 보곤 하는데 인종차별, 성소수자, 여성 외모의 대상화 등 꽤 사회적인 주제가 많다. 인상적인 건 설정된 부당한 상황에 대해 분노하는 사람이 매우 다수라는 점이다. 그중 일부는 저 사람이 과연 일반 시민인가, 혹시 짜고 하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만큼 몸에 밴 논리정연하면서도 직관적인 언변을 구사한다. 미국 방송 프로그램을 보고 미국 사회의 선진국적 면모에 새삼 감동했다, 따위 싱거운 소릴 하려는 건 아니다. 오늘날 미국처럼 부정적으로 말하자면 끝도 없는 사회가 있던가. 자본주의적 모순과 폐해가 노골적으로 집약된 사회이면서도 급진세력은 씨가 말라 근본적인 변화의 가능성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
‘땅콩 회항’ 사건과 관련한 대대적 분노에서 특기할 점은, 기장의 책임은 전혀 거론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비행기는 배와 함께 육상 운송수단과는 달리 목숨을 내맡기고 타는 운송수단이다. 기장과 선장의 책임과 권한은 버스 기사나 철도 기관사와 차원이 다르다. 비행기에서 승객 안전에 대한 책임과 권한은 전적으로 기장에게 있다. 기장은 그런 책임을 질 수 있도록 고도의 훈련과 경험을 쌓고 또 유지하며, 비행기 안에서 승객 안전과 관련한 제왕적 절대권력을 갖는다. 우리는 그러한 사실들을 잘 알기에 ‘하늘을 나는 기계덩어리’에 비교적 편안한 얼굴로 목숨을 맡기는 것이다. 만일 기장이 승객의 안전을 최우선시하지 않는다거나, 누군가의 지시에 따라, 이를테면 만취했거나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회사 임원의 지시에 따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