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해 전 트위터를 일년쯤 하다가 그만두었다. 누군가 연유를 물어오면 이렇게 말하곤 했다. ‘사람은 누구나 똥을 눈다. 하지만 남 앞에서 똥을 누진 않는다. 그런데 트위터에서 사람들은 남 앞에서 똥을 눠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나는 트위터의 지나친 속도와 가벼움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것 같다. 물론 이건 트위터라는 미디어가 본질적으로 어떻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내게 트위터가 어떻더라는 이야기다. 그러고 일년쯤 후 페이스북을 시작했다. 대개 하루 한번쯤은 페이스북 타임라인을 훑어보는데 근래 그곳엔 유명한 악귀가 있다. 그곳에서 박근혜씨는 나쁜 대통령을 넘어 악귀다. 그곳 분위기로 본다면 박근혜씨는 이미 대통령직에서 물러나 재판정 혹은 감옥에 있고도 남았어야 한다. 그런데 건재한 이유는 아마 두 가지일 ..
“역사교육은 국가의 부정을 목표로 하는 좌파들의 영향력을 일소해야 한다. 역사는 ‘올바르게 해석된’ 공정성에 기초해야 한다.” 박근혜 정부의 누군가가 한 말일까? 나치 정권의 말이라 한다. 국정화 역사교과서를 반대하는 사람들로선 ‘역시 박근혜 정부는 나치와 다름없구나’ 탄식이 나올 만하다. 그런데 한 가지 분명히 다른 게 있다. 과연 오늘 한국에 ‘국가의 부정을 목표로 하는 좌파들’이 역사 교육의 향방에 영향을 미칠 만한 수준으로 존재하는가? 박근혜 정권이 좌파라 지칭하는 대상은 주로 새정치민주연합을 중심으로 한 야권이다. 그들 중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수십년 전 국가의 부정을 목표로 하는 좌파였던 건 사실이다. 그 일부는 북한 체제에 호감을 가지거나 신봉하는 경향을 보였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은..
두어 달 전, 인천 동구는 괭이부리마을(김중미의 소설 로 널리 알려진 그 마을이다)에 ‘쪽방 체험관’을 만들려다 “가난을 상품화해 마을과 주민들을 구경거리로 만들고 있다”는 반발과 비난 여론으로 접었다. 그 얼마 후, 한양대 에리카캠퍼스 축제 주점에서는 학생들이 ‘오원춘 세트’라는 이름의 안주 메뉴를 만들어 팔다가 비난 여론 때문에 전체 축제 일정이 취소되었다. 오원춘은 2012년 한 여성을 성폭행하려다 살해하고 시신을 잔혹하게 훼손한 사람이다. 비슷한 즈음, 출판사 문학동네는 김훈 에세이집 를 예약 구매하면 ‘마음의 허기를 채워줄 김훈 양은 냄비’를 주겠다고 홍보해 입길에 올랐다. 1800개의 냄비가 이틀 만에 동이 나 행사 취소 사태까진 갈 것도 없었지만 김훈이라는 작가의 무게감과 냄비의 대비는 많은..
9월3일 삼성전자는 갑작스레 ‘보상위원회 발족’을 발표했다. 참으로 삼성스러웠다. 일이 시작된 건 2007년 삼성전자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사망한 고 황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기씨가 같은 공장에 백혈병 환자가 여럿임에 주목하면서부터다. 삼성은 산재가 아닌 개인적 질병이라고 강변하며 유족들을 돈으로 회유하려 했다. 2008년 반올림(삼성반도체 집단 백혈병 진상규명과 노동기본권 확보를 위한 대책위원회)이 만들어지면서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되었다. 대중의 관심이 조금씩 늘어가던 2013년 1월 삼성전자는 반올림과 교섭에 응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고압적인 태도와 사실 왜곡, 피해자 회유 시도 등은 달라진 게 없었다. 2014년 3월 영화 이 개봉되면서 삼성에 대한 비난 여론이 급등하자 삼성의 태도가 돌변했다. 5월1..
현실은 갈수록 막막한데 현실을 변화할 방법이나 가능성은 보이지 않으니 ‘헬조선’이 괜한 말은 아니다. 돌이켜보면 30년 전에도 비슷한 양상이었던 것 같다. 군사독재가 물러날 가능성은 도무지 보이지 않았다. 답답함에 돌멩이나 화염병을 넘어 본격적인 무장 투쟁을 고민하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수십만의 경찰과 군대를 무슨 수로 이긴단 말인가. 그런데 그 철옹성 같던 군사독재가 결국 총 한 방 쏘지 않고 무너졌다. 이유는 단순했다.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을 하는 사회성원들이 다수가 되었기 때문이다. ‘정치라는 게 완벽할 수 있는가.’ ‘북한과 대치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서양처럼 민주주의를 할 수 있단 말인가’ 회의하고 냉소하던 사람들 중에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늘어나자 체제는 거짓말처럼 싱겁게 ..
이오덕 선생의 옛글 여느 구석엔 권정생 선생과 조우한 순간이 적혀 있다. ‘너무나도 훌륭한 젊은 동화작가를 발견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오래 살지 못할 것 같다.’ 결과적으로 권정생은 이오덕보다 몇 해를 더 살았다. 하지만 평생 온몸에 퍼진 결핵과 합병증으로 고생했다. 하루 30분도 앉아 일하기 어려운 날이 많았지만, 한결같이 책을 읽고 글을 쓰며 누구보다 맑고 강렬하게 사유했다. 유머 감각을 잃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언젠가 그의 안동집에서 한담을 나누던 그가 불쑥 이런 말을 하는 것이다. “아까 뱀이 방에 들어왔어요.” “마당의 잡초를 그냥 두시니까 뱀이란 놈이 방 안과 밖을 구분 못한 모양이군요. 그런데 독사면 어쩌시려고요.” “독사는 방에 안 들어와요.” “그런가요.” 다녀와 그쪽 전문가에게 물었더..
둘째(열아홉 살 먹은 남자)는 지난 4월 세월호 사고 1주년 즈음 거의 매일 광화문에 나가선 다음날 들어오거나 안 들어오곤 했다. 평소에도 주요한 집회나 시위에는 나가는 편이지만 그 정도는 아니었기 때문에 나는 그 연유가 은근히 궁금했다. 얼마 후 둘이 만나 밥을 먹는데 자연스레 그 이야기가 나왔다. “그런데 좀 신기한 게 있어요.” “뭐가?” “사람들이 아주 많이 모였잖아요. 그런데 어느 시점이 딱 지나니까 다 사라진 거예요. 외치고 싸우던 문제가 해결된 것도 아니고 유가족분들도 그대로 있는데.”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탈학교다 보니까 친구들도 탈학교나 대안교육 이런 쪽이 많은데 그 부모님들이나 선생님들이 대부분 진보적인 분들이거든요.” “아무래도 그렇지.” “내가 이야기를..
인터넷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집단적 분노와 비판이 늘 긍정적인 결과를 낳는 건 아니다. 오히려 반대의 경우가 훨씬 더 많다. 대상에 대한 빠르고 뜨거운 분노와 비판은 번번이 문제의 본질에 접근하지 못하고 해소되어버리곤 한다. 오래 지속할 수 있는 속도와 제대로 들여다볼 수 있는 온도를 스스로 차단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땅콩회항 사건에서 분노와 비판은 조현아 개인에게는 충분히 표현되었지만 조현아의 그런 행동을 만들어낸 노동 구조에는 닿지 못했다. ‘다 좋은데, 함부로 욕하진 말아주세요’가 애초의 목표이기라도 했던 걸까. 그런 면에서 신경숙 표절 논란은 이례적인 경우다. 창비와 문학동네, 특히 노회한 문화 권력 백낙청의 사기업임에도 마치 진보문학의 공공재인 양 위세등등하던 창비의 아우라를 박살내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