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기 | 연세대 교수·사회학 비상대책위원회의 전성시대라 할 만하다. 새누리당은 5개월째 비대위 체제로 당을 운영해 왔고, 민주통합당도 어제 비대위원 명단을 발표했다. 통합진보당 역시 혁신비대위 구성을 예고했다. 무엇이 상황을 이렇게 만든 걸까. 나는 사건사보다 국면사의 흐름을 주목하고 싶다. 최근 우리 정치의 상징적인 일은 지난해 9월의 ‘안철수 현상’이다. 안철수 현상에는 민주화 25년으로 가는 국면에서 우리 정치가 갖는 ‘대표성의 위기’가 반영돼 있다. 국민 다수의 의사를 대표하는 게 정치인데, 그 대표성이 발휘되지 않는 기성 정치에 대한 거부와 새로운 정치에 대한 열망이 ‘안철수’라는 고유명사이자 보통명사에 담겨 표출된 게 안철수 현상의 본질이다. 안철수 현상의 연장선에서 10월 박원순 후보가 서..
김호기 | 연세대 교수·사회학 총선이 끝난 후 처음으로 시평을 쓴다. 먼저 민주통합당 공천심사에 참여했던 한 사람으로서 진보개혁 세력을 응원하고 지지한 분들에게 송구스럽다는 말씀을 드린다. 총선에서 민주통합당이 패배한 것은 지도력과 전략 부재에 기인한 것이지만, 난맥상을 드러낸 공천에도 명백한 책임이 있으며, 이에 대해 나 역시 결코 자유롭지 않다. 총선 결과가 나온 직후 떠올랐던 이들은 공정방송 실현을 위해 파업 중인 방송가 후배들이었다. 총선 결과가 달랐더라면 새로운 변화가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과 안타까움 때문이었다. 살랑거리는 봄바람에 여의도 벚꽃들이 춤추며 날리는데, 방송 현장이 아닌 파업 현장을 지켜야 하는 그들을 생각하면 마음 한 구석이 무거워지고 시려온다. 총선 결과에서 더없이 아쉬운 것..
김호기 연세대 교수·사회학 결국 총선을 이렇게 눈앞에 두게 됐다. 만감이 교차한다. 돌아보면 이번 총선은 2008년 촛불집회부터 기다려온 것 같다. 이후 지나온 4년이 결코 짧은 시간은 아니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지방선거, 희망버스와 안철수 현상 등이 진행됐으며, 이 과정 속에 우리 사회는 변화했고 진화해 왔다. 그리고 이렇게 시간은 우리 사회를 또 하나의 새로운 시험대 위에 세워두고 있다. 총선의 의미를 나는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찾고 싶다. 이 질문은 촛불집회에서 이미 주어졌다. 투표로써 권력을 위임받은 국가가 주인인 국민의 의사에 반하는 결정을 내렸을 때 국민은 국가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 촛불을 들어 국가에 항의하는 건 당연한 것 아니겠는가. 문제는 이 자명한 민주주의 원리를 ..
김호기 | 연세대 교수·사회학 지난 금요일 총선 후보 등록이 마감됐다. 본격 선거 국면이 열렸건만 분위기는 그렇게 달아오르지 않는 듯하다. 지난해 10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선 열기가 뜨거웠다. ‘안철수 현상’, 정당후보와 시민후보의 대결, ‘나꼼수 돌풍’이 중첩되면서 ‘닥치고 정치’ 열풍이 거세게 불었다. 총선이 16일밖에 남아 있지 않는데, 아직은 미풍 정도만이 느껴진다. 왜일까. 그 주요 이유 중 하나가 정당정치와 시민정치의 거리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지난 서울시장 보궐선거의 화두는 박원순 후보로 상징되는 시민정치였다. 시민정치의 부상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것은 안철수 현상이었다. 안철수 현상에 담긴 의미는 새로운 정치에 대한 열망이었으며,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정당정치와 시민정치의 간격을 좁히는 ..
여야 공천이 거의 마무리됐다. 지난주 경향신문 좌담을 통해 민주통합당 공천에 대한 개인적 소회를 밝혔지만, 아쉬움이 떨쳐지지 않는다. 막스 베버가 강조하듯 학문과 달리 정치에선 결정이 가져올 결과를 감당해야 하는 책임윤리가 중요하다. 공심위원의 한 사람으로서 그 책임윤리를 생각하면 마음이 더없이 무거워진다. 공천 심사에 참여한 이로 말하기 어렵지만, 이번 총선이 예상했던 것과는 다소 다르게 진행되고 있다. 지난 몇 년간 우리 선거를 관통해 온 것은 심판론이다. 2007년 대선에서 지난해 10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영향력을 행사해 온 것은 정권 심판론이었다. 민주당 전당대회가 치러진 1월만 하더라도 심판론에 따라 총선에서 야권의 압승이 예상됐다. 그런데 심판론이 최근 자취를 감춘 것으로..
문재인에 대한 기억은 2009년 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노무현 대통령 서거에 관한 좌담이 경향신문에 실린 날 아침 그는 전화를 걸어 내가 말한 ‘좌파 신자유주의’에 대해 이야기했다. 노 대통령이 좌파 신자유주의를 스스로 주장한 게 아니라 당시 좌우로부터의 비판에 대한 여담에 가까운 말이었다는 것이다. 단어 하나에도 세심하게 신경 쓰는 태도는 그의 자상한 인품을 생각하게 했다. 지난해 봄 문재인은 내가 운영위원장으로 있는 복지국가민주주의싱크네트 출범식에서 축사를 했다. 그는 진보개혁세력이 재집권한다면 약자를 보호하고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들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참여민주주의, 균형발전, 동북아 평화·번영이라는 노무현 정부의 목표는 여전히 실현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라인하르트 코젤렉이 말한 ‘지..
민주통합당 공천심사위원을 맡게 됐다. 그래서 이 시평에서 당분간 공천을 평가하긴 어렵다는 점에 대해 양해를 구하고 싶다. 오늘 이야기하려는 것도 물론 쉬운 주제는 아니다. 선거의 해를 맞이해 두 인물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데, 문재인과 안철수가 그들이다. 그 동안 두 사람을 사석에서 몇 번 만난 적이 있다. 특히 안철수와의 만남은 일부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 미리 밝히고 싶은 건 두 사람과의 대화 내용을 구체적으로 말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언론의 입장에선 선거 향방을 결정짓는 사안을 보도할 의무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공개하지 않기로 한 약속은 지켜져야 하며, 기실 한국사회 분석과 전망을 공부하기 위해 만난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내가 주목하려는 것은 문재인과 안철수가 선 자리와 갈 길이다. 사..
김호기 | 연세대 교수·사회학 지면을 통해 인사드립니다. 지난해 여기 경향신문에서 ‘이상돈·김호기의 대화’를 진행할 때는 다소 여유로우셨는데, 요즘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 활동으로 무척 분주하시지요? ‘대화’를 책으로 묶어내면서 올해 우리 사회가 일대 정치적 격랑을 겪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지만, 어느새 선거의 블랙홀로 빠르게 빨려 들어가고 있습니다. 오늘 드리고 싶은 이야기는 우리사회 보수 세력의 선 자리와 갈 길에 관한 것입니다. 어느 사회이건 보수나 진보가 그 사회 전체를 독점할 순 없습니다. 보수가 강조하는 자유·안정·성장·시장의 가치는 진보가 강조하는 평등·변화·분배·국가의 가치 못지않게 중요하며, 상황과 국면에 따라선 보수적 가치가 국가운영의 기조가 될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이명박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