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휘 | ○○은대학연구소 2소장 탈토건과 탈핵의 문턱에 선 요즘 여러 화두가 명멸합니다만 그 바탕이 되는 으뜸 화두는 단연 ‘마을만들기’인 것 같네요. 이 ‘마을만들기’는 전통 한옥이나 씨족 마을을 복원하자는 것은 당연히 아니겠고요. 새벽종과 통금 사이렌이 울리던 새마을운동의 그 마을도 아닐 테고요. 공인중개사 간판들로 에워싸인 뉴타운 아파트 신축 현장도 아니지요. 그래서 서울시 마을종합지원센터에 계신 분께 물으니 귀농귀촌의 대표격 마을들이나 도시형 마을의 독보적 사례인 성미산마을을 따라 해서 되는 것도 아니랍니다. 그럼 뭘까요? 옛 마을의 정취와 미담 되살리기나 뉴타운 부작용의 단계적 출구 제시나 대안적 성공 사례의 복제 확산이나 각기 일리가 있습니다만, 이중 무엇이 모델이라고 단정해선 절대 안 될 ..
김선영 | 대중문화평론가 17세 소녀 한명이 응급실로 실려 왔다. 교통사고로 극심한 외상을 입은 환자였다. 소녀는 의식 한번 찾지 못하고 끝내 사망하고 만다. 더 큰 비극은 죽음의 원인이 사고에만 있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 이면에는 부조리한 시스템이라는 근본적인 문제가 숨어 있었다. 이것은 올해 최고의 화제작으로 평가받는 SBS 드라마 의 도입부로 낯익은 설정이다. 그런데 소녀의 억울한 죽음이라는 이 소재가 현재 방영 중인 또 한 편의 드라마에서도 인상적으로 등장하고 있다. MBC 얘기다. 은 응급의학과를 중심으로 한 의학드라마다. 그 중에서도 각종 사고나 재난 등으로 심각한 다중 손상을 입은 중증 외상 환자를 다룬다. 말 그대로 ‘응급 상황’이 계속해서 펼쳐지니 긴박함을 강조하는 의학드라마로서는 더할 ..
변영주 | 영화감독 1995년 4월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 관한 다큐멘터리 를 극장에서 개봉하는 날, 대학로의 조그만 극장에 영화에 출연한 할머니들이 설레는 표정으로 모였다. 첫 상영 종료 후부터 관객과의 대화를 하신 할머니들의 표정이 하루하루 바뀌었다. 자신들이 농담을 하고, 밥을 먹고, 노래를 부르고, 일본대사관 앞에서 항의 시위를 하고, 자신의 역사를 카메라에 담아내는 그 모습들을 관객들이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이 할머니들에겐 위로가 된 것 같았다. 영화를 함께 만들어 세상에 그것을 보여주고, 그 보여주는 순간들을 함께하는 모든 시간들이 자신들에게 기쁨을 준다는 것을 알게 된 거다. 그것이 가장 기뻤다. 우리가 잘할 수 있다고 믿는 일로 할머니들에게 정신적인 위안이 되었으니. 시간은 흐르고 할..
박인하 | 청강문화산업대 교수·만화창작 얼마 전 복날이 지났다. 그날을 위해 태어나 한 달이 조금 넘게 살다 맛난 국물과 부드러운 살을 남기고 사라진 닭들이 있다. 아! 닭이 아니지. 그 병아리들은 기계에서 태어나, 폐쇄된 공간에서 햇빛 한줌 보지 못하고 제 수명의 200분의 1도 살지 못한 채 식탁에 올랐다. (만약 그 닭이 자연에서 태어나 제 수명을 채웠다면 무려 25년까지 살 수 있다고 한다.) 공장식 밀집사육, 항생제 과다투여, 건강하지 못한 고기 뭐 이런 소식을 들으면 무척 찜찜해 하다가도, 고소함에 길들여진 혀를 어떻게 바꾸지는 못한다. 경남 고성의 아파트 놀이터에서 목줄을 푼 진돗개가 달려 들어 사람을 문 사건이 있었다. 사고가 일어나자 개 주인은 사고 2시간 만에 개를 개장수에게 팔아버렸고..
김종휘 | ○○은대학연구소 2소장 만나신 적 있나요? 뭐든 같이해보신 적은 있는지요? 우리 곁으로 가까이 다가오고 있는 청년 사회적 기업가들 말입니다. 정부 위탁으로 전국 20개 민간단체가 수행한 ‘청년 사회적 기업가 육성사업’에만 지난 1년간 310개 팀, 현재 2기엔 330개 팀이 참여 중이네요. 근 2년 새에 2000명 남짓한 청년들이 청년 사회적 기업가의 활동을 개시한 겁니다. 같은 취지의 각종 경연대회에 참가하는 청년들을 더하고, 지원 없이 독립군처럼 활동하면서 같은 목적을 추구하는 각지의 청년들까지 보태면 한 세력 된다고 봐야겠지요. 이들이 망해가는 세상을 잠깐 땜질하는 일회성 도구가 아니라 새 희망을 전염시키는 끈질긴 생명력의 바이러스이길 원하는 분들이라면 각별히 주의하셔야 합니다. 이 시대..
변영주 | 영화감독 비 피해가 있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가 왔다. 최불암 선생이 안내를 하는 음식 프로그램에서조차 가뭄으로 인한 농민의 고통을 이야기할 정도로 가뭄이 심했는데 비가 와서 참 다행이다. 작년 이맘때 의 촬영을 하고 있었다. 우린 매일 서너 개의 일기예보 어플을 살펴보며 비가 오지 않기만을 바라면서 촬영을 하다가도 영화의 도입부에 나오는 휴게소 촬영 때는 비가 오기만을 바라며 지냈었다. 그렇게 사람의 바람과 자연의 현상 사이에서 우리는 기뻐하고 절망하고 행복하고 섭섭해한다. 자연의 현상은 기다림이다. 혹은 기원이다. 어쩔 수 없다. 물론 4대강처럼 인간의 탐욕이 촉매가 되어 자연의 현상을 재앙으로 몰아가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우리의 행동으로 세상을 조금씩 변화시키는..
박인하 | 청강문화산업대 교수·만화창작 지난 20일 하루짜리 시한부 택시파업이 있었다.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는 사업주와 노조가 함께 집회를 열기도 했다. 언론에 의해 보도된 업계의 요구는 택시의 대중교통 법제화, LPG 가격 상한제 도입, 택시연료 다양화, 요금 현실화 등이다. 아주 가끔 택시를 이용하는 사람으로, 고된 노동에 시달리고 오르는 연료대와 사납금 제도라는 이상한 고용제도 등으로 인해 고생하는 택시기사의 사정이야 잘 모르는 바 아니어서, 뭔가 잘 해결되었으면 좋겠네, 라고만 생각하고 말았다. 며칠 뒤 택시파업에 대해 그린 만화를 보았다. 택시가 없으니 길이 뻥뻥 뚫려 편안하고, 출근길이 빨라졌고, 택시의 불법정차나 난폭운전 등이 없어져 쾌적한 하루였으니 파업을 좀 더 오래하거나 택시를 없애면 ..
김종휘 | ○○은대학연구소 2소장 whee212@oouniv.org 저번에 ‘멘붕’(멘털 붕괴) 이야기(5월29일자 ‘멘털 붕괴 5월아’)를 했지요. 한 청년이 화답하듯 ‘멘털 복귀 콘서트’ 개최 소식을 알려와 바로 큰일 날 소리라 답신했죠. 그 멘털은 붕괴될 때가 지나 와르르 무너진 거고, 너무 오래 꾸역꾸역 버티다 산산이 부서진 거라고요. 그렇게 붕괴된 멘털을 복구하며 과거로 회귀하는 기득권자들이 여태 작당 중이라 포기시켜야 할 차제에, ‘원점에 다시 서자’는 소박한 취지로라도 ‘복귀’라는 말에 신중하자고요. ‘멘붕’은 심신의 원점을 차원 이동하는 새로운 길찾기의 결정적 계기일 수 있다는 점을 재차 강조하면서 복구, 복원, 복귀는 죄 하지 말자 했어요. 사고 치고 은퇴 선언한 뒤 잠적하거나 오지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