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영주 | 영화감독 redcallas@gmail.com 며칠 전의 밤. 서울 아현동 쪽으로 유인물을 돌리러 나간 동료들이 동네 아주머니의 간첩신고로 잡혔다. TV 뉴스에서는 호탕하고 자신감 있는 표정으로 그가 당당하게 연설하는 모습이 계속 보도되고 있었으며 여전히 낮의 학내 집회에 모인 학생의 수는 200명을 넘지 못했다. 그러니까 1987년 6월9일. 10일의 디데이를 하루 앞둔 그날 밤, 세미나룸에 모인 우리의 상태는 그랬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이야기하며 국민대회에 모여 달라는 유인물은 동네 아주머니의 간첩신고로 인해 제대로 뿌려지지도 못한 채 경찰서로 실려 갔고, 그 즈음 대부분의 학내 집회가 그러하듯 매번 보던 얼굴들이었다. 명동 근처라도 갈 수 있을까? 굳이 학내에서 집회를 하고 가야 하나..
박인하 | 청강문화산업대 교수·만화창작 세계 일등을 자랑하는 대형 교회 큰 목사님이 사주인 신문에 ‘석가탄신일을 맞이한 불교계와 불자들께 축하드립니다’라는 광고가 실렸다. 드디어 기독교도 다른 종교에 화해의 손길을 뻗었구나, 라고 생각하며 광고를 보는데 어이쿠, 이건 꺾기도(모든 것을 뜬금없이 꺾어 상대방을 공황상태에 빠져들게 하는 기술)! 그중에서도 광고를 이용한 축꺾(축하꺾기) 아니던가! 꺾기도를 시전한 주체는 모 교회 담임목사와 교역자, 당회원, 성도 일동이다. 제목만 보면 이웃 종교의 경축일을 축하해 주는 화해의 메시지처럼 보인다. 그런데 본문을 조금만 읽으면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꺾인다. 석가탄신일은 ‘이웃집의 아름다운 경사’이고, 따라서 세계인들이 지키는 성탄절과 차이가 있다며 포문을 연다...
변영주 영화감독 우연히 과방에서 보게 된 광주항쟁에 관한 불법 유인물의 희미한 사진 때문이었을 수도 있고, 수업시간에 벌컥 문을 열고 들어온 사복경찰에 의해 이름도 모르는 어떤 학생이 끌려갈 때 누구도 그걸 막거나 항의할 생각조차 못하던 그날의 부끄러움이 시작이었을 수도 있다. 점심시간, 같이 점심을 먹을 누군가도 없는 상태. 혼자 밥을 먹는 게 뭐해서 학교식당 한편에서 열심히 신입생을 대상으로 자신의 서클을 선전하던 어느 선배의 선한 눈매가 좋아 보여 시작했던 것일 수도 있고, 가본 적도 없지만 안개 가득한 런던의 아침이 이런 걸까라는 심정으로 눈물, 콧물을 흘리며 매캐한 최루가스 사이를 방황하던 어느 날의 서슬 퍼런 결심일 수도 있다. 그렇게 1980년대에 대학을 다니던 나 혹은 누군가에겐 세상의 모..
박인하 | 청강문화산업대 교수·만화창작 실장님 로맨스가 한동안 유행하나 했더니 지금은 왕이 친히 강림하셨다. 현실에서 왕정복고를 이야기하면, 바이칼호 영구임대 수준의 상상력으로 무시될 텐데, TV는 스스로 조선의 왕을 복벽(물러났던 임금이 다시 왕위에 오르거나, 수렴청정을 끝내고 집정하는 경우에 조선왕조실록에 사용된 용어)했다. 뭐든 해봐서 아는 재테크의 달인 대통령보다는 얼핏 철없어 보이지만 깊은 속내를 지닌 매력적 황제 이승기나 뭔가 질긴 인연으로 이어진 타임슬립 조선 왕 박유천 같은 이가 훨씬 매력적이기는 하다(일단 비주얼에서 1승 얻고 들어간다). 하지만 엄연한 공화주의 나라에서 왕정이 이렇게 자연스러울 수 있을까? 에이, 뭘 드라마를 가지고 그러느냐고? 생뚱맞아 보이지만 여성가족부와 통계청이 발..
김종휘 ○○은 대학연구소 2소장 “이미 망한 세상에서 완전히 다르게 상상하는 원점 회귀의 시대 문턱”이 지금 여기라고 했었지요. 청년은 “이 (시대의)좌표를 모른 채 막차 맨 뒤칸에 올라타”지 말고 “자기 손발로 수레 끄는 것이 살뜰하고 아름답고 두루 이로울 것”이라 권했었고요. (5월18일자 “손수조가 손수조를 책임져라”) 그렇게 살아가는 유쾌한 청년들을 만나러 인천에 가보실래요. ‘살기 좋고 찾고 싶은’ 곳이라는 홍보는 인천뿐 아니고 모든 도시에 넘칩니다만 그런 자랑이 달뜰수록 일상은 팍팍하고 스산한 거잖아요. 인천에 살거나 관심 둔 지인들에게 첫 인상을 물으니 지난 총선 투표율 꼴찌의 ‘투표 않는 도시’부터 떠오른대요. 연달아 ‘인천시 재정 파탄 직전’이나 ‘인천도시공사 빚 갚는 데 464년’ 같은..
변영주 | 영화감독 서울 덕수궁의 대한문 앞에는 분향소가 있다. 쌍용자동차 22번째의 희생자를 추모하는 사람들이 그곳을 지키고 있다. 스물 두 명의 해고된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2000명이 넘는 노동자를 정리해고하였고, 그것에 맞서 자신의 권리를 지키고자 한 사람들에게 용역과 공권력의 폭력이 자행되었다. 자신의 삶을 버림으로써 자존을 지키려고 하는 사람들이 생겼고, 손해배상과 가압류 청구라는 회사의 태도는 해고된 노동자들을 벼랑 끝으로 끊임없이 밀어냈다. 적어도 서울 한복판의 대한문 앞이라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다 많은 관심을 가질 수 있을 거란 생각에 49재까지라도 그 분향소를 지켜내기 위해 애쓰고 있다. 그렇게 2012년 봄이 지나가고 있다. 혜화동에는 재능교육의 농성장이, 그리고 지금 한창 영화..
박인하 | 청강문화산업대 교수·만화창작 세상이 아프다. 그래서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도 아프다. 20대 청춘들을 향해 ‘아프니까 청춘’이라며 격려를 하기도 하지만, 어디 20대만 아플까. 10대도 아프고, 30대도 아프고, 40대도 아프고 그냥 쭉 모두들 아프다. 그건 세상이 아파서다. 우린 세상이 아프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사람보다 돈이 세상 주인노릇하고 있기 때문에 세상이 아픈 게 당연하다. 그런데 노상 아프다, 아프다 타령만 하고 바꾸려 하지 않는다. 뭔가 한번 바꿔 보려 희망을 품었다가 높은 벽에 부닥치면 쉬 포기한다. 어느 고교 농구부 이야기다. 전국대회에 한 번 나가보지 못한 고등학교 농구팀이 있다. 그런데 중학교 최고 테크니션이 농구부에 들어온다. 희망의 싹이 보이지만, 농구는 한 명이 ..
김종휘 OO은대학연구소 2소장 불쌍합디다, 청년 손수조. 꼭 떨어져서만은 아니에요. 꼭 ‘3000만원 선거 뽀개기’ 공약 소동 때문은 아니에요. 꼭 문재인의 정략적 대항마로 신인 데뷔한 탓도 아니고요. 꼭 박근혜 대세론에 의존해서도 아니고요. 선거철에 이들 요인을 한데 빨아올린 미디어 정치쇼의 반짝 스타로 부상했다 급격히 잊혀져가는 27세 청년 손수조의 처지와 앞날이 팍팍하게 느껴져서랍니다. 손수조 현상이 두 달여의 ‘트루먼쇼’로 끝나길 원치 않는 손수조라면 자신을 재발견하고 묵묵히 책임지는 행동만 남은 것 같아서죠. 어쩌겠어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퇴장할 게 아니면 이제부터라도 청년의 일원으로서 지역공동체를 위한 세밀한 공약을 손발로 만들어야죠. 장소에 뿌리를 내리고 주민들과 같이 일상의 공적 활동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