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선거법의 공소시효는 짧다. 선거일로부터 6개월이다. 부정선거로 당선된 사람이 국민의 대표로 행세하는 걸 하루라도 빨리 해소하자는 뜻이다. 취지는 좋지만, 제대로 수사를 하려면 6개월의 시한은 아무래도 촉박하다.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는 뻔한 범죄야 어렵지 않겠지만, 조직적이고 은밀하게 이뤄지는 범죄라면 상황은 달라진다. 이를 테면 같은 당원들끼리 돈을 주고받았다면, 6개월 안에 이걸 인지하고 증거를 수집하고 또 기소까지 하는 건 좀체 쉽지 않다. 경찰이나 검찰이 온통 선거법 위반 사건에만 집중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늘 사건은 넘치고, 인력은 부족하다는 게 이럴 경우엔 괜한 푸념만은 아닐 거다. 따라서 수사기관이 선택할 수 있는 건, ‘선택과 집중’일 가능성이 높다. 선관위에서 고발했다면 무조건 기..
김종술. 서울에서 무역업을 하던 사람이다. 살 만했다. 언젠가 지역 언론운동을 하는 매형이 공주에서 함께 일하자고 했다. 제대로 된 지역 언론을 일구고 싶은데, 지역에선 사람이 빠져나가기만 해서 걱정이라고 했다. 감당할 만한 일인지 따져보기 위해 공주를 찾았다가 금강에도 가봤다. 불현듯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아버지 손을 잡고 따라다니며 멱도 감고 낚시도 하던 강이 바로 거기 있었다. 순전히 강 때문에 이직과 이사를 단박에 결심했다. 금강이 좋아 공주 사람이 되었다. 백제신문에서 일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기자, 나중엔 사장으로 경영을 책임졌다. 10여명의 기자가 일하며 주간신문, 시사잡지, 인터넷판을 내는 탄탄한 종합언론사였다. 제대로 된 진보적 지역 언론을 만들고 싶었다. 크고 작은 어려움은 있었지만,..
부산교도소에 구금되어 있던 수용자 두 명이 잇따라 목숨을 잃었다. 지난달 19일엔 이 아무개씨가, 그 다음날인 20일엔 서 아무개씨가 숨졌다. 둘 다 삼십대의 한창 나이였다. 두 사람은 조사수용방에 격리되어 있었다. 이 방은 규정위반 혐의를 받는 수용자들을 가두는 별도의 공간이다. 그렇지만 동시에 규율위반실 또는 징벌방이 되기도 한다. 조사수용실 또는 징벌방, 뭐라 부르든 이 방에 갇히면, 교도소 생활은 몇 곱절 힘들어진다. TV 시청, 신문 구독을 금지당하고, 운동이나 가족과의 면회는 물론 편지마저 주고받을 수 없다. 징벌방이 곧 조사를 위한 대기 공간이라는 건,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혐의만으로도 징벌을 받는다는 거다. 교도소에 갇힌 사람의 감각은 자유로울 때와는 완전히 다르다. 평소 운동을 하지 않던..
격무와 박봉, 게다가 위험하다는데도 경찰관이 되려는 젊은이들은 넘쳐난다. 경찰 관련 학과가 있는 대학만 100개쯤 된다. 경찰관 중 가장 낮은 계급, 순경은 원래 고졸 일자리였다. 하지만, 요즘 순경이 되려면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도 노량진쯤에서 2~3년 정도는 시험공부를 해야 한다. 그렇다고 합격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순경 합격을 축하하는 현수막도 요즘엔 자연스럽다. 최혜성이란 젊은 여성도 그렇게 순경이 되었다. 몇 년 동안 그저 공부만 했고, 다행히 좋은 결과를 얻어 경찰관이 되었다. 2014년 12월 경찰관 생활을 시작했고, 올 1월부터는 경기도 동두천경찰서 관내 지구대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열심히 노력한 끝에 안정된 일자리를 얻은 건 좋은 일이었지만, 불행은 느닷없이 닥쳤다. 6월21일..
한없이 부끄럽고 참담한 심정이란다. 국민 신뢰를 조속히 회복하도록 각고의 노력을 다하겠단다. 법무부 장관 김현웅의 말이다. 그 ‘각고의 노력’이란 인사검증과 감찰 시스템을 강화하고, 검사의 사명감과 윤리의식을 확고히 하겠다는 거다. 그래서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단다. 수치심마저 들었다는 검찰총장 김수남도 비슷했다.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며 제시한 해법은 주식정보와 관련된 사람은 주식투자를 금지하겠다는 거다. 내부 제보 시스템을 활성화하고, 검찰의 재산등록도 심층 감찰하겠단다. 참담, 수치심 등 말만 거창했지, 내부에서 좀 챙겨보겠다는 게 전부다. 결국 장관과 총장의 사과는 시의적절한 물타기였다. 진경준의 놀라운 재산 증식은 처음부터 뇌물이었고, 홍만표는 ‘전관’이란 권력으로 돈을 긁어모았..
경찰은 제복으로 말한다. 지친 퇴근길에도, 약속시간에 늦어 속도를 붙여야 하는 바쁜 시간에도 경찰관이 불러 세우면 시민들은 군말 없이 차를 세운다. 제복에 대한 신뢰 때문이다. 제복은 공권력의 상징이고, 또한 공복의 상징이다. 그 경찰 제복이 말썽이다. 경찰청은 6월1일부터 경찰관들의 제복을 싹 바꿨다. 한 달이 되었지만, 경비용역업체 직원인지, 경찰 관련 학과 학생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갑자기 바뀐 탓에 새로운 제복에 익숙해지려면 시간이 좀 걸리겠다. 물론 이런 혼란이야 시간이 해결해 줄 수도 있을 거다.제복은 시민과 경찰의 약속이기 때문에 함부로 바꾸면 안된다. 꼭 바꿔야 할 중요한 까닭이 있어도 신중해야 한다. 경찰청은 무턱대고 바꾼 건 아니라는 입장이다. 그렇게 볼 여지도 있다. 제복 교체 움직임..
2016년 5월28일 토요일 오후 5시57분. 우리는 앞으로 이 시간을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 열아홉 살 노동자 김군이 구의역 9-4 승강장 스크린도어 수리를 하다 역으로 들어오는 전동차를 피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목숨을 빼앗겼다. 남들은 다 쉬는 토요일 저녁, 평일이어도 보통의 직장인들은 6시 퇴근을 위해 일손을 멈췄을 시간이다. 비정규 노동자 김군은 쉴 수 없었다. 언젠가 짬이 나면 먹으려고 가방 속에 넣어둔 컵라면이 알려주듯, 끼니를 챙길 짬도 없이 작업 지시는 끝도 없이 이어졌다. 지시를 따라 곳곳의 현장에 투입되었다. 토요일 저녁이라고 예외가 아니었다.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아직 군대조차 다녀오지 않은 젊은이였다. 그가 목숨을 잃었다. 물론, 단순한 사고는 아니었다. 그래서 더욱 허망..
광주는 소리 없는 소문으로만 떠돌았다. 언론은 침묵했고 소문마저 더뎠다. 광주라는 도시 전체가 금단 구역이었다. 저들의 의도는 분명했다. 광주를 고립시켜 학살마저 없던 일로 만들려 했다. 전두환 일파는 기세등등했고, 모두에게 무서운 침묵이 강요됐다. 광주 밖 사람들이 광주의 실체를 만난 건, 사진과 비디오테이프 때문이었다. 독일 기자 위르겐 힌치페터가 촬영한 영상을 비디오테이프에 담아 들여온 건 신부 장용주였다. 문제는 이걸 널리 알리는 거였다. 천주교 광주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가 그 일을 해냈다. 정의평화위원회 간사 김양래와 홍세현이 비디오테이프를 복사했다. 성당 한쪽 골방에서 단순 반복의 수공업적 방법으로 비디오테이프를 한 개씩 복사했다. 아날로그 시대였다. 이렇게 만든 비디오테이프 ‘오월, 그날이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