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후보의 공공 부문 일자리 81만개 공약은 대선 내내 시빗거리였다. 몇몇 후보는 세금으로 일자리 만드는 건 누가 못하냐고 힐난하기도 했다. 선의로 해석한다면, 공공 부문보다는 민간 부문 일자리가 훨씬 많으니 일자리에 관한 한 국가의 역할이 제한적이라는 지적일 게다. 그렇다고 쳐도, 국가의 역할이 시장에 그냥 넘겨도 좋을 만큼 작은 것은 결코 아니다. 잘 알려진 것처럼 우리나라 공공 부문 일자리는 다른 나라들에 비해 터무니없이 적다. 복지국가들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고, 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의 3분의 1밖에 안 된다. 쉬운 일이라 트집을 잡았지만, 실제로 ‘세금으로 만든 일자리’는 별로 없었다. 일자리는 아주 시급한 인권이다. 왕조시대 정책담당자들조차 “백성들은 먹는 것을 하늘로 삼는다(民以食爲天)”..
- 5월 5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한국 개신교가 침체란다. 신자들 숫자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그래서 새로운 활로를 찾느라 바쁜 모양이다. 바로 군대다. 한국군종목사단에 따르면 매년 15만명이 군대에서 세례를 받는단다. 부풀렸는지 모르지만, 아무튼 엄청난 숫자다. 목사들이 말하듯 군대는 “침체되어 가는 한국교회의 새로운 돌파구” 역할을 하고 있다. 군인도 제복 입은 시민이기에 당연히 종교의 자유를 보장받아야 하고 신앙생활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만, 학교나 군대처럼 누구나 가야 하는 길목에 버티고 앉아 자기 교단의 새로운 돌파구를 찾는 게 적절한지는 모르겠다. 심각한 건 특정 종교를 신봉하는 지휘관들의 월권이다. 국민이 부여한 권한을 교세 확장을 위해 쓰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신앙생활이 정신..
교도소는 단순히 죗값만 치르는 곳은 아니다. 왜냐면 거의 모든 교도소 수용자들은 언젠가 사회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범죄자라고 가족과 생이별을 시키고 신체의 자유와 생계수단까지 빼앗는 잔인한 고통을 주는 게 맞는지도 의문이지만, 그런 형벌만으로 얻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겨우 건질 게 있다면 죄를 지으면 벌을 받는다는 교훈이겠지만, 이마저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현실 앞에선 무색해지고 만다. 결국 남는 것은 범죄자에 대한 보복뿐이다. 보복도 정의를 위한 한 수단일 수도 있겠지만, 교도소에서 보복만 당한 수용자는 대개 반성은커녕 앙갚음을 곱씹는다. 교도소가 범죄학교가 되고, 동료 수용자가 공범이 되며, 출소자는 더 위험한 범죄자가 되기도 한다. 전형적인 악순환이다. 그래서 교도소의 목적은 단순한 보..
1998년 2월24일에 누군가 태어났다면, 그는 이제 대학교 2학년이 될 겁니다. 아니면 직장에 다니거나, 군에 있을 수도 있겠네요. 19년. 한 생명이 태어나 장성할 만큼 긴 세월입니다. 그날 낮 12시20분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서 총성 한 발이 울립니다. 권총 M9 베레타에서 나온 총알이 소대장 김훈 중위의 머리를 관통했습니다. 김 중위는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사인은 분명했으니, 자살인지 타살인지만 밝히면 그만이었습니다. 장관께서도 알고 계시듯, 사망사건에서 가장 확실한 증거는 주검과 사건 현장입니다. 총에 묻은 지문, 총과 손에 묻은 화약가루, 총알의 방향, 총이 놓인 위치, 그리고 밀착사인지 근접사인지만 밝히면 금세 결론을 낼 수 있었습니다. 사건 직후, 군 당국은 김 중위..
광장의 함성은 여전하다. 역사적 체험을 간직한 시민들 덕이다. 대통령 탄핵 절차도 순조롭다. 절차만 남았을 뿐이라며, 탄핵은 기정사실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특검 수사는 김기춘, 우병우, 조윤선, 이재용에게서 성패가 갈리겠지만, 우병우를 제외하면 여태까지의 기세는 좋다. 대선 후보들은 벌써부터 공약을 쏟아낸다. 무엇보다 이번엔 확실히 바꿔야 한다는 시민들의 열망이 뜨겁다. 변화의 조짐은 곳곳에서 읽을 수 있지만, 정작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박근혜 대통령과 황교안 총리도 여전하다. 대통령은 죄 없는 어린양 시늉을 하고, 총리는 대통령 시늉을 하는 게 달라졌을 뿐, 그들의 체제는 여전히 확고하다. 그 확고한 체제가 새해 벽두부터 국가보안법 사건을 일으켰다. ‘노동자의 책’이란 인문사회과학 전자도서관을..
권력을 휘두르던 사람들이 정작 책임은 외면한다. 황교안 국무총리와 국무위원들이 딱 그 짝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국무회의에 참석해 이런 사태에도 국무위원 누구도 반성하는 사람이 없다며 질타한 지 꼭 한 달이 지났지만, 지금껏 책임지고 사퇴한 사람은 없었다. 아예 반성조차 없었다. 국회 청문회에 나온 증인들도 그랬다. 뻔한 거짓말로 오로지 자기 안위만을 챙기는 사람들투성이였다. 어떻게 다들 저런 식으로 한결같은지, 소신은 고사하고 거짓말과 변명만 일삼는 사람들이 책임 있는 자리에 있었다니 답답할 뿐이다. 문제는 그쪽만 한심한 게 아니라는 거다. 박근혜 정권의 부패와 무능을 비판하는 쪽에도 한심한 인사가 적지 않다. 우상호 민주당 원내대표가 그중 하나다. 그는 법인세 정상화라는 절호의 기회를 그냥 날려버렸다..
처음엔 광화문 세종대왕상 앞까지였다. 청와대로부터 1.8㎞. 10월29일의 첫 번째 촛불집회와 11월5일의 2차 촛불집회까지는 그랬다. 매주 광장의 함성이 커질 때마다 시민들은 조금씩 청와대 근처로 갈 수 있었다. 3차 집회는 800m 거리인 내자교차로까지, 4차 집회는 400m, 그리고 지난 주말엔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까지 갈 수 있었다. 청와대 200m 앞까지 진출한 거다. 집회와 시위를 신고하면, 경찰은 금지하고 법원이 조금 더 허용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법원의 행진 허용은 경찰의 금지조치에 빗대면 전향적인 일이지만, 법원도 기본적인 입장은 경찰의 금지와 같은 맥락이다. 다만, 경찰보다는 조금씩 더 허용하겠다는 것뿐이다. 법원이 제시하는 허용의 단서도 웃긴다. 지난번 집회를 보니 질서를 잘 지키..
광장은 “박근혜 퇴진!” 구호로 뜨겁다. 1960년 4월처럼, 또는 1987년 6월처럼 모처럼의 국민적 항쟁이 시작되었다. 국민적 요구는 뜨겁지만, 국회 등 정치권은 그저 뜨뜻미지근하다. 친박이야 논외로 쳐도, 다수의 정치인들은 박근혜의 2선 후퇴, 거국중립내각 따위만 읊조리고 있다. 그나마 박원순, 안철수, 이재명 같은 사람들이 시민의 뜻을 좇을 뿐이다. 다수의 주류 정치인들은 어떤 일이 있어도 헌정질서는 유지되어야 한다고 여기는 것 같다. 헌정질서가 대통령 임기 5년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야 하는 것이라 여긴다면, 그건 무지 아니면 의도적인 왜곡일 게다. 토머스 페인은 “헌법은 정부에 선행하며, 정부는 헌법의 소산일 뿐”이라고 했다. 대통령이라는 헌법기관은 물론, 국가도 모두 헌법에서 비롯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