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월 19일자 지면기사- 견제와 균형. 청와대가 발표한 권력기관 개혁의 핵심이란다. 옳은 방향이다.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가 활동에 들어가고 영화 로 권력기관 개혁에 대한 시민적 요구도 높은 때이니, 이쯤에서 청와대가 청사진을 밝히는 것도 좋다. 하지만 막상 공개한 내용만으로는 뭘 어떻게 개혁하겠다는 건지, 구체적으로 손에 잡히는 건 없다. 청와대 발표대로라면 권력기관 개혁이 가능하다고 진짜로 믿는 것인지 모르지만, 이런 식이라면 권력기관 사이에 견제와 균형을 잡는 개혁은 불가능하다. 검찰, 경찰, 국가정보원이 모두 개혁 대상이며, 범죄나 과오로 친다면 막상막하겠지만, 그 위세나 영향력으로 보면, 역시 핵심은 검찰개혁이다. 검찰은 ‘검찰공화국’이란 말에서 알 수 있듯, 국가기관 중에서 가장 ..
만기가 3년이나 남았는데도 벌써부터 사람들은 민감하다. 상대가 조두순이어서 그렇고, 피해자를 생각하면 더 그렇다. 짐승의 탈을 쓰지 않고서야 어떻게 저럴 수 있나 싶어서 모두들 공감하고 또 공분했다. 대법원까지 형이 확정된 다음에 피고인에게 벌을 더 주자는 재심은 불가능하다거나, 이미 결정된 처분 말고 다른 처분을 부과하는 게 가능하지 않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일사부재리 원칙은 초등학생이면 모두 아는 상식이다. 청와대 청원에 그토록 많은 시민들이 마음을 모은 것은 몰라서가 아니라 그만큼 분노가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두순이란 악당을 향한 분노도 중요하지만, 우리 사회가 이런 악당들에 대한 안전장치를 제대로 갖추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 더 중요하다. 시민들의 뜻을 좇으려 청와대가 나서서 입장을 밝히는..
그는 엄마였다. 두 아이의 엄마, 아이들은 아직 어렸고 엄마의 손길이 절실했다. 열 살과 일곱 살. 그래도 엄마는 모진 결심을 했다. 그는 여성 경찰관이었다. 여성이 일하기 좋은 직장은 아니었고, 임신, 출산, 육아와 직장 생활을 함께하는 건 힘든 일이었지만 잘 버텼다. 이제 아이들도 어느 정도 컸으니, 둘째만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그나마 숨 돌릴 여유도 생길 판이었다. 그래도 그는 모진 결심을 단행했다. 유서조차 남기지 않았다. 무언가 맹렬한 기세로 그를 죽음으로 내몰았다. 집에서 그의 시신을 발견한 건 열 살 먹은 아이였다. 이런 죽음 앞에서 우리는 말을 놓게 된다. 끔찍한 비극이다. 시작은 익명의 투서였다. 근무에 게으르고 동료에게 ‘갑질’을 했고, 해외연수도 독차지했다는 거다. 원래 이런 익명의 투..
“검경 수사권 조정은 국민의 인권보호를 위해 꼭 해야 할 일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말이다. 경찰의날 기념식에서 했던 말이지만, 대선공약도 그리 발표한 터이니 단순한 덕담은 아닐 게다. 문 대통령은 후보 시절,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제대로 작동되도록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그동안 수사권 조정은 검찰과 경찰 사이의 권한 다툼으로만 여겨졌지만, 대통령은 인권보호를 위해 꼭 해야 할 일이라고 오금을 박았다. 그렇다. 뭔가 조정이 필요하다면, 그건 오로지 시민의 인권보호를 위해서여야 한다. 백남기 선생을 죽였고, 어금니 아빠 사건에서 보듯, 꽃 같은 중학생의 생명을 지키는 데 한없이 무능하고 무성의했던 경찰에 새로운 권한을 줘야 한다는 걸 뜨악하게 여기는 사람도 있을 거다. 하지만, 수사..
박정희는 조급했다. 정권 연장을 위해 물불 가리지 않았다. 부모의 조국을 찾아온 재일동포 유학생쯤은 얼마든지 간첩으로 둔갑시킬 수 있었다. 그건 쉬운 일이었다. 그 쉬운 일 때문에 서준식은 형 서승과 함께 17년을 갇혀 있었다. 형벌의 목적은 고통이다. 청년은 17년 내내 매일처럼, 매 순간 고통을 겪었고 장년이 되어서야 석방될 수 있었다. 누구나 고통에서 벗어나면, 다시는 그 고통을 돌아보고 싶어하지 않는다. 몸과 마음이 너무 힘들어 무엇 하나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태이니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서준식은 달랐다. 출소한 다음에도 맹렬히 뛰었다. 그 대가는 다시 구금의 고통을 겪는 일로 이어졌다. 1991년엔 유서대필 조작사건의 진상을 파헤치다, 1996년엔 인권영화제에서 제주 4·3항쟁을 다룬 영화를..
사인은 질식사였다. 폭발이 있었지만 한동안 숨을 쉴 수 있었다. 안전장구만 제대로 갖췄거나 안전요원이 배치되어 피할 곳을 찾을 수 있었다면 노동자들은 그렇게 어이없게 죽지 않았을 게다. 지난 일요일, 경남 창원 진해의 STX조선해양에서 건조 중인 화물운반선에서 도장 작업을 하던 하청업체 비정규 노동자 네 명의 죽음은 얼마든지 막을 수 있었다. 인명은 재천이란다. 가끔 허망한 죽음을 보면 그리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사람 목숨이 하늘에 달려 있다는 말은 반쯤만 맞는 말이다. 요즘 평균 수명은 남성 79세, 여성 85세지만, 1980년 평균 수명은 남성 62세, 여성 70세였다. 평균 수명이 늘어난 것은 하늘이 아닌 사람의 몫이었다. 의학의 발전, 양질의 영양공급, 결국 생명을 유지하고 연장하는 데 쓸 수..
경찰개혁위원회 위원으로 참여했다. 노무현 정권 때의 경찰혁신위원회에 이어 두 번째다. 이번엔 경찰개혁 작업을 꼭 이뤄야 한다는 절박한 마음으로 참여했다. 아무리 이명박-박근혜 정권을 거쳤다 해도, 그래도 십여 년이 지났으니 경찰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있을 줄 알았다. 막연한 기대와 달리 현실은 녹록지 않다는 것을 경찰개혁위원회 발족식에서부터 확인할 수 있었다. 발족식에는 경찰청장을 비롯해 40여명의 경찰관들이 참석했는데, 전부 남성이었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여성은 한 명도 없었다. ‘경찰의 별’이라는 경무관 이상은 물론, 실무자들 중에도 여성은 없었다. 그래도 여성 경찰관 숫자가 꾸준히 늘어서 전체 경찰관의 10%가 되었다지만, 경찰청의 주요 행사에선 단 한 명도 찾아볼 수 없었다. 장관도 30% 이상..
벌써부터 폭염이다. 유월 내내 더웠다. 아직 석 달이나 남은 여름을 어떻게 견딜지 걱정이다. 주로 실내 공간에 머무는데도 힘든데, 이 폭염에 쉼 없이 뛰어다녀야 하는 택배노동자들은 도대체 어떻게 버티는지 모르겠다. 먹고살기 위해서라지만 위태로워 보인다. 두렵다. 택배노동자들의 하루는 길다. 아침 7시부터 분류작업을 시작한다. 분류는 택배회사가 해야 하지만, 당신들이 배송할 화물은 직접 골라가라는 거다. 분류에만 보통 대여섯 시간이 걸리는데, 대가 없는 공짜 노동이다. 분류작업을 하는 터미널은 허허벌판인 경우가 많아 더위나 추위를 피할 수 없다. 냉방 또는 난방 장치는 전혀 없고, 휴게실은 물론 화장실마저 없는 곳도 많다. 점심 무렵 분류작업이 끝나면 배송을 나가야 하는데 시간을 조금이라도 아끼려 점심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