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자활센터에서 강의를 요청했다. 자활근로에 참여하는 분들에게 인권교육을 해달라는 거다. 좋은 취지다. 인권교육은 인권 당사자나 피해자에게 더욱 절실하다. 비장애인보다 장애인, 남성보다 여성, 부자보다는 가난한 사람, 국민보다는 비국민에게 더 필요하다. 처음 해보는 일도 아니었다. 그 센터에서만 벌써 몇 년째 했던 일이다. 그런데 강의는 순조롭지 않았다. 첫머리부터 한 분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도대체 인권 같은 걸 배워 어디다 써먹느냐고 했다. 있을 수 있는 투정쯤으로 여기고 넘기려 했는데, 그 분을 시작으로 곳곳에서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다. 새해부터 자활근로 참여자들의 수급비가 엄청 깎였다고 했다. 대개 매월 20만원씩 줄었단다. 한 푼이라도 더 벌겠다고 나섰는데 오히려 손해를 봤단다. 일을 하는 게..
1984년 4월2일. 강원도 7사단 일반전초(GOP). 허원근 일병이 숨진 채 발견됐다. 내무반에서 50m쯤 떨어진 폐유류 창고 뒤였다. 사건 직후 7사단 헌병대는 허 일병이 군복무 염증으로 자살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중대장의 구타와 가혹행위를 견디기 어려워 자살했다는 거였다. M16 소총으로 오른쪽 가슴에 쐈지만 치명상을 입지 않아서 다시 왼쪽 가슴에 두 번째로 쐈으나, 역시 치명상을 입지 않았다는 거다. 그래서 총구를 오른쪽 눈썹 위에 대고 세 번째 총탄을 쐈고, 두개골 파열로 사망했다는 거다. 아무리 엄혹한 군인세상이라 해도, 이런 수사를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가족은 당연히 의문을 제기했다. 첫 휴가를 하루 앞둔 날이었다. 무엇보다 1m짜리 소총으로 스스로 가슴에 2발, 머리에 1발을 쏘고 자살했..
김씨의 직장은 경찰서다. 그렇지만 경찰공무원은 아니다. 전엔 비정규직이었는데,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겠다는 정부 시책에 따라 무기계약직이 되었다. 그동안 따로 부를 명칭이 없다고 미스 김이니 아줌마니 하며 제 맘대로 불렀지만, 이젠 주무관이란 어엿한 이름도 찾았다. 정규직이 되어 정년도 보장된다지만, 그저 듣기 좋은 소리에 불과하다. 쉬운 해고 때문이다. 경찰청이 정한 기준이 그렇다. 해고 기준은 모호하고 사유는 너무 광범위하다. 이를테면 업무 수행 능력이 부족하거나 업무를 태만히 했다는 주관적인 판단만으로도 해고된다. 박근혜 정부의 쉬운 해고는 진작부터 시행되고 있었다. 업무량 변화나 예산이 줄어도 해고될 수 있다. “신체 또는 정신상의 이상으로 업무 수행이 곤란하게 된 때”도 그렇다. 사람을 소모품처럼..
다들 스마트폰으로 일정을 챙기는데, 나는 여전히 수첩을 쓴다. 처음엔 연필로 적어두고, 확정되면 여러 가지 색깔의 볼펜을 쓴다. 강의는 파란색, 꼭 지켜야 할 중요한 약속은 빨간색, 가족 모임은 노란색 하는 식이다. 수첩에는 일정만 적어 놓는 게 아니라, 써야 할 원고나 활동계획을 적기도 하고, 읽은 책이나 사람들과의 만남을 적어두기도 한다. 어차피 기억은 한계가 있으니 갈수록 수첩에 의존하는 일이 많아진다. 수첩이 나를 챙겨주고, 때론 나를 이끌어주기도 한다. 내 수첩에는 여러 사람이 등장한다. 오늘은 군에서 어이없이 목숨을 잃은 노우빈의 어머니가 찾아왔다. 노우빈 훈련병은 2011년 육군훈련소에서 뇌수막염에 걸렸는데도 해열제 두 알 처방만 받고 방치돼 목숨을 잃었다. 아들의 죽음 이후, 어머니는 인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