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언|서울대 교수·정신분석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피해자’라고 주장한다. 억울하다고 한다. 가해자만 없으면 자신의 삶이 훨씬 평안하고 행복하며 장래성이 있다고 호소한다. 사람들이 피해자를 연민 어린 눈으로 보고 동정한다. 그러니 피해자를 혹시 비난하는 듯 들리는 말을 꺼내는 것은 큰 용기를 필요로 한다. 정말 본격적으로 비판하면 근거가 있어도 다중의 비난이 돌아올 것이다. 그래서 진실을 추구하는 것은 어렵다. 하지만 의문은 남는다. 자신을 피해자라고 하는 주장은 무조건 받아들여야 할 정도로 늘 옳은가? 피해자와 달리 가해자를 비난하는 것은 안전하다. 그렇다면 가해자는 100% 그른가? 예를 들어 술을 먹고 주정을 부리다가 시비 끝에 다른 사람에게 맞아 상처를 입은 사람이 있다면 이 사람은 피해자인가, ..
정도언 | 서울대 교수·정신분석 아이를 키우는 것은 쉽지 않다. 먹이고 씻기고 입히는 일이 힘들다. 집에만 주로 머물던 아이가 학교를 가면 부모가 할 일이 더 많아진다. 아이의 새 세상에는 다른 아이들, 선생님들, 친구의 엄마 아빠들은 물론이고 거리의 낯선 사람들도 있다. 사람들로 넘치는 학교 가는 길을 아이는 부지런히 갔다가 집으로 다시 온다. 오가는 길에서 아이는 집에서 경험하지 못한 일들을 조금씩 겪어가며 생각이 크고 감정이 풍부해진다. 아이가 학교를 간다는 것은 부모가 전적으로 맡아 키우는 아이에서 세상이 키우는 아이가 되었다는 뜻이다. 사춘기를 맞으면 아이는 부모가 키우는 아이에서 자기가 자기를 키우는 새로운 차원의 아이가 된다. 당연히 거기에 맞추어 부모도 달라져야 한다. 사람이 달라진다는 것..
정도언 | 서울대 교수·정신분석 어려서 낯가림을 하는 것은 심리적으로 불안하기 때문이다. 낯선 사람이 아기에게 불쑥 얼굴을 내밀면 아기는 자지러지게 놀라 엄마 품으로 파고든다. 어린아이에게 낯가림은 생존을 위한 본능적인 반응이다. 나이가 든다고 어릴 적 낯가림하던 버릇이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지만 사회적으로 성숙되고 경험이 쌓이면 대개는 무난하게 넘어간다. 그러면서 누구에게나 싫은 사람과 좋은 사람이 생기기 마련이다. 왜 싫을까, 왜 좋을까. 막상 물어보면 대답이 궁하다. 그저 그렇게 느낀다고 한다. 뚜렷한 이유 없이 싫어하거나 좋아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반드시 그렇지만도 않으니 묘하다. ‘먹여서 싫다는 사람 없다’고 사람은 자기를 챙겨주는 사람을 좋아하기 마련이다. 그러니 가까이에서 경험하면 싫어하던 사..
정도언 | 서울대 교수·정신분석 안타까운 일들이 반복되고 있다. 자살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누구보다도 이해하는 입장에서 느끼는 허탈감과 무력감이 내 어깨에 걸려 무게를 더한다. 그러나 이런저런 이유로 세상을 스스로 등지려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는 하지만 그들의 선택에 동의할 수는 없다. 자살이 가진 허상의 위험은 자살을 마치 자신의 의지의 선택인 것같이 보이게 하는 것이다. 자살의 실상은 스스로의 선택이 아니라 무의식의 선택에 자아가 굴복하는 것이다. 세상은 살아내기가 만만하지 않다. 순탄한 삶보다는 암초에 부딪히고 마음과 몸에서 피를 흘리는 경험이 더 흔하다. 사람이 그렇게 살다보면 차라리 죽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는 유혹이 마음에 차오른다. 그 유혹이 임계점을 넘으면 자살이라는 행동으로 이어진다. 자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