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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언 | 서울대 교수·정신분석


안타까운 일들이 반복되고 있다. 자살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누구보다도 이해하는 입장에서 느끼는 허탈감과 무력감이 내 어깨에 걸려 무게를 더한다.
그러나 이런저런 이유로 세상을 스스로 등지려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는 하지만 그들의 선택에 동의할 수는 없다. 자살이 가진 허상의 위험은 자살을 마치 자신의 의지의 선택인 것같이 보이게 하는 것이다. 자살의 실상은 스스로의 선택이 아니라 무의식의 선택에 자아가 굴복하는 것이다.

세상은 살아내기가 만만하지 않다. 순탄한 삶보다는 암초에 부딪히고 마음과 몸에서 피를 흘리는 경험이 더 흔하다. 사람이 그렇게 살다보면 차라리 죽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는 유혹이 마음에 차오른다. 그 유혹이 임계점을 넘으면 자살이라는 행동으로 이어진다. 자살은 자기를 자기가 직접 파괴하는 행위다.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은 자신이 자신을 위해서 죽는다고 하지만 그것은 논리적 모순이자 자기변명이다. 진정 내가 나를 위한다면 이유가 어떻든 살아남아야 한다. 살아남아서 차라리 죽는 것과 살아남는 것의 장단점을 평생 세밀하게 따져보는 것이 인간적이다.

죽을 수 있다면 살 수 있다. 그러니 자기파괴적인 충동에 무릎을 꿇기 전에 생각을 해보아야 한다. 첫째, 내가 죽고자 하는 일이 죽을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인가? 둘째, 내가 죽음으로써 그에게, 세상에 복수할 수 있는가?

이 세상에 과연 죽음으로써 해결해야 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 남을 위해서, 높은 가치를 위해서, 국가와 사회를 위해서 죽는 것이라면 가치가 있을지 모른다. 이들을 우리는 의사, 열사, 순교자 또는 애국자라는 아름다운 이름으로 부른다.
이러한 죽음조차도 심리학적 관점에서 엄격하게 보면 자살이고 자기파괴 행위다. 그 죽음에 사회적 가치를 부여했을 뿐이다. 남을 위해 죽는 경우도 그러하니 그냥 개인적인 이유로 자신이 자신의 목숨을 거두는 행위는 가치가 있는 일이 될 수 없다.

사람들은 흔히 죽음으로써 복수한다고 한다. 과연 내가 죽음으로써 그에게, 세상에 복수할 수 있는가? 결론은 명백하다. 복수는 가능하지 않다. 내가 죽어도 그는, 세상은 나를 너무나 쉽게 잊을 것이다. 산 사람은 어떻게든 산다는 말이 있다. 그러니 죽음을 통한 복수는 가능하지 않다. 복수하려면 살아서 해야 한다. 물론 자기파괴가 없는 순이익 100%의 복수는 가능하지 않지만.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이 그러한 결정을 쉽게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것이 신중한, 균형 잡힌 결정이었을까? 자살을 자아심리학의 입장에서 보면 다음과 같은 설명이 가능하다. 자기파괴적 충동이 지나치게 강하게 의식의 세계로 올라오는 것을 자아가 막지 못해서 자살이라는 방법으로 자기를 파괴했거나, 초자아의 비판과 질책이 너무 거세 자아가 우울증에서 벗어날 수 없다가 그 결과로 자살을 했거나, 자아의 힘이 너무 약해 무의식의 충동도, 초자아의 압력도, 현실 세계의 거센 바람도 다 막아내기 힘들어 자살이라는 방법으로 그 압력들을 해소시킬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자살 풍조의 거센 바람을 순풍으로 바꾸어 사람들이 되돌아올 수 없는 길을 가지 않도록 도와주는 사회가 되려면 자살이라는 사회적 현상에 대한 심층 진단과 예방적·치료적 행동이 필요하다. 어떤 특정 조직만의 문제로 여기고 제도 몇 가지를 바꾸어서는 효과를 보기가 어려울 것이다.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고 포기해 버리는 인간 심성의 취약점을 고쳐내는 국가적인 처방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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