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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언 | 서울대 교수·정신분석
어려서 낯가림을 하는 것은 심리적으로 불안하기 때문이다. 낯선 사람이 아기에게 불쑥 얼굴을 내밀면 아기는 자지러지게 놀라 엄마 품으로 파고든다. 어린아이에게 낯가림은 생존을 위한 본능적인 반응이다.
나이가 든다고 어릴 적 낯가림하던 버릇이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지만 사회적으로 성숙되고 경험이 쌓이면 대개는 무난하게 넘어간다. 그러면서 누구에게나 싫은 사람과 좋은 사람이 생기기 마련이다. 왜 싫을까, 왜 좋을까. 막상 물어보면 대답이 궁하다. 그저 그렇게 느낀다고 한다. 뚜렷한 이유 없이 싫어하거나 좋아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반드시 그렇지만도 않으니 묘하다. ‘먹여서 싫다는 사람 없다’고 사람은 자기를 챙겨주는 사람을 좋아하기 마련이다. 그러니 가까이에서 경험하면 싫어하던 사람도 좋아진다. 그래서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를 풀고 두려움을 걷어내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함께 어울리며 옆에서 그 사람을 겪어보는 것이다. 물론 위험이 따르기는 하지만 멀리서는 그 사람을 알 수 없다는 말이다.
진보와 보수단체 대표들이 10일 새해모임에 참석, 담소를 나누고 있다. I 출처:경향DB
낯가림이 꼭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에만 한정되지는 않는다. 종교, 사상, 이념, 취미, 음식 등에도 널리 적용된다. 따지고 보면 진보와 보수라는 틀도 그렇다. 소수의 사람들이 주도해서 다수의 사람들이 반대편을 낯가림하도록 장벽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절대로 넘어가서는 안되는 선도 아닌 것을 마치 그런 것처럼 만들어 놓은 것이다.
이런 경우는 보수, 저런 경우는 진보로 대처한다고 해서 세상이 뒤집어지는 것도 아닌데, 보수는 평생 보수, 진보는 평생 진보로 행세한다. 어떤 음식은 절대로 못 먹는다고 우기는 것, 국한문 병용과 한글 전용 사이의 갈등, 특정 종교를 믿는 사람과 안 믿는 사람 사이의 다툼 역시 일종의 낯가림이다.
세계화 시대에 한국인과 외국인을 자꾸 나누는 것도 결국 낯가림을 하라고 부추기는 것이다. 내 이야기를 하면 나는 그저 내게 잘해주는 사람이 좋지 그 사람이 꼭 한국인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사람이 문제이지 태어난 나라가 문제가 아닌 것을 시시비비하는 것은 두려움이나 시기심의 표현일 뿐이다.
누가 나를 싫어한다면 기분 좋은 일은 아니지만, 그 사람에게 잘 보이려 애써도 효과가 있다는 보장은 없다. 싫고 좋은 것은 이성이 아닌 감정의 영역이므로. 어차피 세상에는 나를 좋아하는 사람도, 싫어하는 사람도, 관심 없는 사람도 다 있다고 받아들이자.
누가 나를 계속 싫어한다면 쾌감을 느끼기 때문일지 모른다. 그러니 쾌감에 젖으려고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냥 무시하는 것이 좋다. 그가 나를 좋아하도록 내가 애쓰는 모습은 그에게 더 큰 즐거움을 주게 된다. 그는 증폭되는 쾌감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서도 나를 끈질기게 싫어할 것이다.
만약 그를 내 편으로 만들고 싶다면 내가 하는 일을 통해 나도 좋아할 만한 사람임을 보여주면 된다. 그렇게 보여주었는데도 믿지 않으면 그런 사람은 가까이할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 아니다. 요약하면, 가학적인 사람들을 반대로 괴롭히는 최상의 방법은 그들에게 기쁨의 원천을 주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내가 평안함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가 내게 퍼붓는 비난과 욕설은 사실 그의 마음에 쌓인,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것들이 순간적으로 밖으로 나오는 것이다. 그러한 행위는 마치 집안의 쓰레기를 집 밖에 버리면서 자기 집은 깨끗하다고 우기는 것과 같으니 그 사람의 문제일 뿐이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에게 신경 쓸 시간에 차라리 나를 좋아할 사람들을 더 많이 사귀는 것이 낫다. 세상에는 작은 친절에도 감동해서 좋은 친구로 꾸준히 남을 수 있는 사람들도 많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사람들은 복통을 오래 앓도록 그냥 내버려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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