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말이 그 말일 수 있다. 피의자가 ‘진술을 거부’하거나 ‘진술거부권을 행사’했거나 검찰의 신문에 답하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다. 그러나 표현이 주는 뉘앙스는 차이가 있다. 진술을 거부했다는 표현은 ‘거부’를 부각시켜 수사에 협조하지 않았다거나 수사태도가 불성실했다는 부정적 의미를 떠올리게 만든다. 진술거부권을 행사했다고 말하면 보장된 권리를 행사한 것이어서 당연한 일을 한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여 8시간 내내 진술을 거부하고 묵비권을 행사했다는 언론의 보도태도가 이처럼 양 갈래다. 부정적인 면에 초점을 맞춰 여론을 형성해 보려는 입장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려는 입장이 대조적이다. ‘권력자의 갑질’이라는 표현을 제목으로 뽑거나 ‘검찰 수사에 성실히 응하기 바..
“검찰이 누구누구를 사법처리할 방침이다”라는 표현이 언론에 자주 등장한다. 검찰이 수사결과를 브리핑하면서 ‘사법처리’라는 용어를 사용하니까 언론도 따라 쓴다. 여기서 사법처리란 수사를 해서 기소했다는 뜻이다. 공소장 제출로 법원에 재판을 청구했다는 의미다. 그러나 굳이 ‘사법’처리라고 표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통상 ‘사법(司法)’이란 무엇이 법인지를 말한다는 의미로 사법부가 하는 업무다. 그만큼 행정부에 속하는 검찰의 사무가 사법부의 일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사법처리했다고 말하는 것이다. 검사들은 자신들이 법관과 비슷한 일을 하고 있다고 인식하면서 법관과의 동일성을 드러내고 싶어 한다. 검사의 직무와 권한은 사법권과 밀접한 관련을 맺으면서 형사절차에서 중추적 기능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런 태도가 이해..
검찰은 그렇게도 애지중지하는 피의자 신문조서도 없이 조국 법무부 장관의 부인 정경심 교수를 사문서위조 혐의로 기소했다. 공소시효 만료 직전 전격적이었다. 압수수색도 전방위로 행해졌다. 대상과 장소가 다소 포괄적이고 특정되지도 않았다. 일부 기관은 압수수색이 아니라 자료제출을 요청해야 할 곳도 있었다. 피의자도 피고발인도 아닌데 압수수색을 당해 마치 피의자인 것처럼 비치고, 엄청난 범죄를 저지른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 수사정보가 언론에 노출되기도 했다. 언론의 도움으로 자신들의 일방적 주장을 ‘기정사실’로 만듦으로써 피의자를 압박하고 재판에서 유죄를 이끌어내려는 전략을 펴는 것 같은 인상을 주기도 했다. 언론은 동조라도 하듯 최소한의 사실 확인도 거른 채 검찰이 흘리는 조각정보를 짜 맞추어 ..
청문절차에서 국민정서법의 파고를 넘어서야 적격보고서가 채택될 것이고 임명권자가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할 수 있다. 지금 분위기는 부정적이다. 인사검증 기준에 따른 위법과 탈법은 없지만 왠지 석연치 않다는 기류다. 당시 있던 법과 제도를 잘 알고 활용했다고 하더라도 특권층이 아니면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박탈감과 후보자의 평소 소신에 배치되는 것 아니냐는 실망감이 빚어낸 국민정서법이 그렇다. 거기에는 그동안 보여준 공적인 행동과 사회적 발언으로 형성된 후보자의 이미지에 실망한 지지자의 배신감도 자리하고 있다. ‘평등한 기회, 공정한 과정, 정의로운 결과’라는 문재인 정부의 국정철학에 부합하는 인물인가에 대한 회의가 숨어 있기도 하다. 후보자의 날카로운 발언에 폐부가 찔려본 사람이나 상처를 받은 사람들의 분노와 ..
지금 여의도 정가를 잘 표현하는 단어는 ‘내로남불’이다. 정치인의 뼛속에는 ‘그때그때 달라요’ DNA가 숨어 있다. 자신과 당의 유불리에 따라 과거를 싹 잊어버리고 대응하는 조변석개(朝變夕改)의 ‘말’ 정치가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의 줄임말인 ‘내로남불’을 유행어로 만들었다. 여당에서 야당, 야당에서 여당으로 공수가 교대되면서 되풀이되다 보니 악순환의 정치문화로 뿌리내렸다. 상황에 따라 변신해 과격하고 거친 언사를 쏟아내는 반응은 히스테리 증상처럼 보인다. 그러니 정치의 불신은 당연한 결과다. 공인인 정치인이나 정당의 말이 때에 따라 달라진다면 신뢰받기 어렵다. 민정수석의 법무부 장관 입각설을 둘러싼 여야의 날선 대립도 ‘내로남불’로 비난받고 있다. 야당 시절에는 극단의 표현으로 혹평을 ..
분쟁에서 상대방을 꼼짝 못하게 하는 방법은 증거 내밀기다. 발뺌하거나 다그치면 “증거 있어? 증거 대 봐”라고 방어하거나 공격한다. 증거가 없을 거라는 자신감에 찬 오리발이지만 막상 증거를 내밀면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다. 법정다툼에서도 마찬가지다. 사실관계를 확정하려면 물증도 필요하고 증인도 불러 신문해야 한다. 모든 분쟁은 증거싸움이다. 아무리 진실이라도 증거로 증명하지 못하면 그 진실은 인정받지 못한다. 범죄혐의가 있다고 하더라도 증거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무죄판결이 난다. 그래서 모든 수단과 방법으로 증거 수집에 열을 올린다. 때로는 증거를 인멸하기도 한다. 미행하거나 몰래 엿듣기도 하고 흥신소의 도움도 받는다. 불법으로 도·감청하고 몰래카메라를 설치하거나 위치추적기를 달기도 한다. 증거를 시멘트 ..
4차 산업혁명과 혁신성장에 따라다니는 단어가 ‘규제’다. 여기에 신산업·신기술 관련 이해당사자 간의 ‘갈등’도 더해진다. 규제와 갈등으로 선진국에 한참 뒤처졌다고 아우성이다. 핀테크, 공유경제, 바이오헬스, 블록체인, 빅데이터, AI 등 신산업발전에 규제 족쇄가 장애물이라는 주장이다. 규제 없는 나라에서 유니콘 기업으로 성장한 혁신 스타트업이나 규제 없는 목장에 방목했더니 쑥쑥 성장했다는 외국 공유경제를 예로 든다. 한국 기업은 첩첩산중의 규제 속에서 전전긍긍하다가 세계시장을 앞서갈 기회를 잃고 있다고 불만을 터트린다. 지난달 문재인 대통령은 바이오헬스 국가비전을 선포하면서 바이오헬스산업 육성을 위한 범정부 차원의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포기할 수 없는 미래 산업을 ‘사람중심 혁신성장’의 동력으로 삼..
국회의원은 국회에서 행한 직무상 발언과 표결에 관하여 국회 외에서 책임을 지지 아니한다. 국회의원의 면책특권이다. 불체포특권도 있다. 국회의원은 현행범인 경우를 제외하고 회기 중 국회의 동의 없이 체포 또는 구금되지 아니하고, 회기 전에 체포·구금됐을 때에도 국회의 요구가 있으면 회기 중 석방될 수 있는 권리다. 소신껏 발언하고 표결하라는 면책특권은 그러나 때로는 방탄복으로 변질되고, 불체포특권은 제 식구 보호용 우산으로 전락한다. 이처럼 국회는 함부로 침범할 수 없는 성역이고 국회의원은 건드릴 수 없는 특권을 누린다. 그야말로 치외법권의 성역이다.그런 곳에서 패스트트랙을 두고 물리적 폭력이 발생했다. 국회 패스트트랙 처리 과정에서 회의를 방해할 목적으로 회의장이나 그 부근에서 불법적인 몸싸움이 벌어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