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진 | 여성학 강사 영화 에는 여자 주인공의 스타킹이 찢어져 ‘뚱뚱한’ 엉덩이가 노출되는 장면이 나온다. 직장 동료들 앞에서 민망한 사고를 당한 ‘노처녀’는 창피해서 제정신이 아니다. 하지만 그녀는 이를 악물고 현장이 녹화된 비디오를 반복해서 보고 또 본다. 나름 끔찍했던 사건에 대한 그녀의 치유 방식이다. 회피와 직면 사이에서 대개 사람들은 회피를 선택한다. 공포의 근원은 현실 직면의 두려움에 있기 때문이다. 부인, 합리화, 망각…. 수많은 자기 방어가 생존을 가능케 한다. 그러나 회피는 결국 자신에 대한 거짓말이기 때문에 언젠가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지나친 경우 자아 경계가 흐트러지는 ‘사이코’가 될 수도 있다. 인간은 자기 발화(發話)를 통해 형성되는 존재여서 방어만 하다보면 내가 누구인지, ..
정희진 | 여성학 강사 김성주 새누리당 중앙선대위 공동위원장의 정체성(?), ‘재벌 좌파’는 인상적인 자기 소개였다. 애초 그녀의 문제의식은 김용철 변호사와 비슷했던 것 같다. 김 변호사의 지적대로, 대선 후보들의 ‘경제민주화’ 공약은 난센스다. 기업이 세금 내고 법을 지키는 것은 기본이지 그게 무슨 민주화, 심지어 선거 공약이란 말인가? 이 나라는 자본주의도 이상(理想)이 된 이상한 사회다. ‘인삼 쿠키’도 여성의 사회 참여에 대한 그녀 나름의 상식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여론은 ‘영계’만큼이나 부정적이었다. 이 땅의 아이 엄마들은 재벌가 출신의 전문 경영인이자 유력 후보의 선거 ‘대책’위원장으로부터 게으름, 창의력 없음, 수동적이라는 요지의 훈계를 들었다. 한편, 적지 않은 남성들은 우리 사회가 여성 ..
정희진 여성학 강사 노동 개념에 관한 글을 쓸 일이 있어 영화 을 봤다. 영화평론가 듀나의 지적대로, 주인공의 직업은 현실에서는 드물지만 영화에서는 빈번히 등장하는 킬러다. ‘살인청부회사 영업2과장’(이런 직종은 회사보다는 프리랜서로 일하는 것이 더 효율적일 것 같은데…). ‘살인주식회사’까지는 몰라도 청부 폭력은 일반인에게도 아주 생소한 분야가 아니다. 내게 흥미로웠던 점은 영화에서 반복되는 대사, “이건 일일 뿐이야”였다. 미국 범죄 드라마의 등장인물들도 합법, 불법, 비합법적인 업무에 상관없이 잘못을 저지를 때마다 똑같이 말한다. “내가 할 일(job)을 했을 뿐” 혹은 “가족 때문에”. 언제부터 노동이 이렇게 신성해졌을까. 비꼬는 말이 아니다. 다 먹고살기 위함이니, 일의 귀천도 잘잘못도 따질 때..
정희진 | 여성학 강사 박근혜 후보의 선거 키워드 ‘대통합’은 매우 적절한 전략인 것 같다. 문재인 후보의 ‘일자리’나 안철수 후보의 ‘혁신 경제’는 이미 국민통합을 전제로 한 것이어서 따로 강조할 필요가 없다. 박 후보에게만 통합이라는 시대적 과제와 요구가 있는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한동안 흔들림 없는 대세론의 주인공이었으며 지지자 숫자가 가장 많은 후보가 ‘많은 사람을 보듬는다(?)’는 통합을 내세웠다는 사실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녀는 옛날 옛적, 한반도 남동쪽 일부 고을을 장악한 영주의 딸, 공주 출신이기 때문이다. 그 영주의 공덕에 대해서는 지면상 생략하고, 아버지가 측근에 의해 살해된 후 평소 그의 유지(지역 차별)를 지나치게 계승한 아버지 후배들이 다른 고을 사람들을 마구 죽인 후 새 영..
정희진 | 여성학 강사 성범죄 가해자에 대한 독특한 시선이 있다. 다른 범죄는 처벌하면 그만인데, 이들에 대해서는 상담·치료 등 ‘다양한’ 대책이 제시된다(절도나 폭력 사범에게 ‘심리 상담’을 운운하지는 않는다). 새누리당은 아동 성범죄와 ‘변태’ 성욕에 국한했던 성충동 약물치료, 이른바 ‘화학적 거세’를 강화하는 요지의 법 개정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7월 관련법 시행 즈음, 효과와 인권 침해 여부를 놓고 여러 차례 논쟁이 있었다. 2~6%에 불과한 성폭력 신고율, 신고와 기소 과정에서 피해자가 겪는 고통, 낮은 신고율만큼이나 낮은 기소율과 더 낮은 유죄 판결률을 고려할 때, 성범죄를 막기 위한 대책이 ‘주사(注射)요법’이라니, 그다지 설득적이진 않다. 어쨌든 성범죄의 규모와 실태가 워낙 심각하기에..
정희진 | 여성학 강사 ‘애국’과 거리가 먼 사람이지만 마음이 조마조마해 한국이나 북한 선수들의 경기를 못 보겠다. 박태환 선수를 생각하면 감동의 물결 정도가 아니라 감동의 몸살을 앓을 지경이다. 사소한 일에도 일희일비하는 내게 그는 현실의 영웅이라기보다 외계에서 다른 삶을 살아내는 사람 같다. 사는 게 아니라 살아내는 것이다. 존경과 경탄은 당연하지만 ‘안쓰러운’ 마음 역시 감출 수 없다. 판정 번복 사태 때 매스컴은 그가 “천국과 지옥을 오갔다”고 했지만, 그 상황이 천국(기쁨?)과 지옥(절망?)일 것 같지 않다. 감각의 제국은 살아 있음이고 그 반대는 세포가 작동하지 않는 상태, 감각의 마비가 아닐까. 이른바 ‘멘붕’ 말이다. 엘리트 스포츠의 결정판, 올림픽은 국가주의를 생산했지만 요즘엔 이와 더불..
정희진 여성학 강사 한국전쟁 후 소설가 김동리는 ‘젊은 美國의 기빨’이라는 제목의 시를 발표했다. “(중략)이번에 韓國을 도와준 偉大한 恩人들맥아더 릿쥬웨이 트르맨 아이젠하워 等수많은 이름을 내 맘은 기리 잊지 못할 것입니다.드러나 당신처럼 내 맘에 고동을 주고 내목에 흐느낌을 일으킨 이는 많지 않을 것입니다 (중략) 어느 義人이 또한 나의 首都를 당신같이아끼며 사랑하며 지켜주었겠습니까일찌기 韓國의 어느 港口에 들어왔던 外人의 船舶에서도당신의 아드님을 비롯한 많은 部下들이이 고장에 뿌려주신 鮮血에 比하여 더 高貴한빠이블과 十字架를 우리는 그 속에서 본 적이 없었습니다.”(원문 그대로 표기) 지면상 더 생략하려 했으나 손댈 곳이 없다. 순수문학의 대가답게 ‘순수의 결정(結晶)’을 보여준다. 마음이 아프다...
정희진 | 여성학 강사 1995년 쓰레기종량제가 실시되었을 때 종량제가 친숙한 용어였던 사람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종량((從量). 쓰레기 배출량에 따라 요금을 차등 부과하고 수수료의 기준은 양에 따른다(從)는 것이다. 무게나 크기가 아니라 양이 기준이다. 이를 측정하는 가장 합리적인 방법은 부피이며, 봉투는 ℓ 단위로 판매되고 있다. 부피가 유일한 척도이기에 사회적 합의가 쉽다. 쓰레기의 용도와 수분 함유량이라는 변수를 보완하기 위해 음식 쓰레기봉투는 따로 판다. 이처럼 종량제에서 ‘따를 종’의 의미는 분명하다. 종북(從北), 종미(從美). 요즘 뉴스를 뒤덮는 이 언설에 나는 두려움을 느낀다. 우리 사회는 후퇴했다. 친미, 반미, 반북…. 예전에는 언어가 양순했다. “친근감을 느끼거나 반대함”에서 “최..